권효원&크리에이터스의 여덟 번째 무대 - 착한 사람들의 꿈꾸기 '노동무'와 '나의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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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권효원&CREATORS의 두 작품 <노둥무>와 <나의 히어로>가 공연되었다. 간만에 희망을 응시할 수 있었던 시간들, 디스토피아를 탐닉하는 동시대 춤들의 성향에서 비껴선 말갛고 순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 지금이야말로 위로가 필요한 시절 아닌가.
증폭하는 물음 하나가 있다. 무용예술은 왜 동류의 공연예술에 비해 흥행력을 확보하지 못하는가? 우리에게는 왜 여직 티켓파워를 가진 작가군과 레퍼토리들이 없는가? 고대로부터 춤은 제의, 전쟁, 노동, 구애, 구도 등등 삶의 모든 행태를 수행해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춤은 생의 주요한 형식들이다. 교육물로써 치유수단으로써 여흥물로써, 삶의 현장 곳곳에서 '춤추기'는 다양한 목적으로 기능한다. 몸으로 존재하는 한 인간에게 춤추기(dancing)를 거두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정작 춤작품(dance)들은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쉽게는 춤의 언어적 추상성을 변명할 수 있으리라. 춤은 본디가 추상적인 데다가 서사(narrative)로부터 탈구하는 것이 동시대 무용예술의 동향이다 보니, 춤작품들은 독해와 감정이입이 용이하지 않은 '난해한 무엇'으로 선뜻 선택받질 못한다. 몰입이 불가능한 극장의 시간은 그 얼마나 길게 휘어지던가.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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