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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다채로운 주제로 이어진 몸짓들의 심오한 제전(祭典), ‘제8회 세계안무축제 - 국내 안무가전’

- 시나브로가슴에, 도도무브댄스시어터, 온앤오프무용단, 아트프로젝트보라
- 국내 무용단 네 단체의 현대무용 작품으로 채운 120분의 무대

 

제8회 세계안무축제

2022년 9월 27일, 29일 / 아양아트센터

 

- 주최/주관 :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회

- 공동기획 : 아양아트센터

- 글 : 서경혜

-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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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6081

 

 

9월 27일 해외 안무가전에 이어, 제8회 세계안무축제의 본 공연으로 29일에는 국내 안무가전이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정막예술상을 수상한 시나브로가슴에, 도도무브댄스시어터, 온앤오프무용단, 아트프로젝트보라 등 네 개 팀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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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가슴에 _Zero_ 안무 권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ZERO - 시나브로가슴에 / 안무 권혁 

 

상의를 탈의하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은 네 명의 무용수가 고개를 떨군 채 등을 보이며 제자리에서 점프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가볍게 워밍업을 위한 움직임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털어내려는 몸짓 같기도 하고, 굿을 여는 무당의 몸놀림 같기도 하다. 

 

네 명은 세 명이 되고 두 명이 되고 한 명이 되어, 같은 움직임을 유지하며 그저 뒷모습을 보일 뿐이다. 한 사람의 움직임은 감상보다는 관찰을 하게 만든다. 두 발은 마치 땅에 닿을 수 없는 룰에 갇힌 듯이 반사적으로 공중으로 튀어 오르고, 팔과 손은 앞뒤 좌우로 너울 파도처럼 출렁인다. 

 

무엇을 위한 움직임일까? 무용수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은 마치 바닥에 기초하여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히 도전이었다. 한 사람의 점프는 다시 여섯 명의 점프로 확대된다. 제자리에서 뛰는 듯하지만 무리는 종대 횡대 V대형 등 다양한 모양을 그리면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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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가슴에 _Zero_ 안무 권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정말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그저 떨어뜨린 저들의 머릿속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안이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무용수들의 팔이 그리는 모양은 훨씬 더 역동성을 띄어가고, 심지어 새의 날갯짓마냥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는다. 음악이 더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움직임에 속도감이 붙어가고, 다리는 바닥에서 더 높아진다. 이쯤 되면 팔과 손은 그들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중력의 영향으로 흔들릴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한참만에야 겨우 몸을 약간 숙이거나, 방향을 측면으로 살짝 틀거나, 바닥에 미끄러지듯 살짝 굴렀다가 계속해서 점프를 이어간다. 그렇지만 잠시 잠깐씩 점프를 벗어난 그들의 춤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하게 조화롭고 멋지기만 하다. 

 

한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마빡이 캐릭터를 떠올려 보라. 특정한 신체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몸은 기진맥진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기는 하지만, 동작과 정신력은 점점 흐트러질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양새의 군무가 가능이나 할까? 

 

<ZERO>의 놀라움은 춤의 후반부에서 더 두드러진다. 두 명의 무용수가 마치 하나의 몸인 양 앞뒤로 서서 하나의 시계추처럼 똑같이 좌우로 몸을 흔들더니, 자연스럽게 서로 방향을 교차하여 두 개의 시계추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움직이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연출해낸다. 게다가 바닥에서 발을 끌어 네 다리를 서로 교차시키는 동작에서도 고도의 정교함과 민첩성을 보여주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기진맥진할 몸으로 말이다. 

 

가끔 생의 지리멸렬함이 우리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가는 그런 때, 오히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작품. 장장 27분에 달한 시간 동안, 조직적인 점프를 반복해내는 여섯 무용수의 촉촉한 등 바닥에서 크고 작은 뼛조각들이 피부 표면을 힘겹게 밀어올릴 때마다, 우리는 해내고야 만다는 희열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나브로가슴에 춤은,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고 느낄 때 다시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믿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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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무브댄스시어터 _Apocalypse_ 안무 이준욱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APOCALYPSE - 도도무브댄스시어터 / 안무 이준욱 

 

원시인으로 분한 세 무용수가 생황 연주자의 연주 소리에 이끌려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다가간다. 소리는 구슬픈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아름다움이란 곧 권력이 되어 땅 위의 생명체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법. 최초의 인간 원형의 욕구 호기심 불안, 이런 심상들을 담은 듯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마치 유인원의 모습과 같은 상상력으로 무대를 연출해냈고, 그것은 태초의 마임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유인원들은 삼삼오오 소리 주변으로 모여들지만, 선뜻 소리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주저한다. 진화함으로써 그들의 외모는 변해가지만 내면의 근본적 욕구는 고스란히 이어진다. 공을 던져 주고받으며 범접하기 어려운 소리를 향한 대리만족을 해보려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어쩌면 욕심이 과하다 싶어 마음속에 틀어박힌 욕구와 이기심을 송두리째 꺼내 던지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소리는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속, 머릿속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소리에의 욕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이 소리에의 열병을 한 바탕 치른다. 

 

소리, 그것은 비단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권력과 부, 자신감 등 일종의 집착(obsession)의 대상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렇게 열병 끝에 정신을 차린 무용수들은 홀연 냉소적인 눈빛으로 객석을 천천히 둘러본다. 마치 너희 속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언지의 시그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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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무브댄스시어터 _Apocalypse_ 안무 이준욱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무용수들은 몸에 둘렀던 띠를 터번 두르듯이 머리에 동인다. 시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소리에 집착하는 사람들, 소리로부터 떨어지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몸의 움직임이란 마음의 움직임에 지배를 받는 법. 결국 소리는 멀어지고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다시 음악 소리가 커지자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종알종알 주절주절 시시콜콜... 알아들을 수 없이 무대를 난도질하는 사람들의 소리 <APOCALYPSE>는, 낙원보다는 파멸로 치닫는 길이 쉬운, 공공연한 인류의 세상살이에 대한 섬뜩한 경고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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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앤오프무용단 _Warm body_ 안무 한창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Warm body / 온앤오프무용단 안무 한창호 

 

차가운 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들 마른 풀잎들이 저희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스산한 바람소리가 함께 어우러진 을씨년스런 소리. 어두운 무대에는 검은 복장을 한 세 무용수가 나타난다. 좌우로 흐느적거리는 그들의 몸짓은 느린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긴 듯하다. 

조명은 그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밝아진다. 무대를 열었던 건조하고 거칠고 차가운 청각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무용수들의 팔과 몸이 그리는 곡선은 부드러운 따스함을 품고 있다. 그 동작은 매우 유연하고 몸의 어디 한 군데라도 직선으로 쭉 뻗거나 각지게 꺾인 데가 없어, 보는 이의 시야에 부드러움이라는 셀로판지를 씌워 놓은 듯했다. 

 

인간의 마음속 생태계, <Warm Body>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의 생태는 일종에 마음을 단련하는 작업과도 같아 보였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은 몸대로, 끊임없이 몸을 굴리고 곡선을 그려낸다. 빠르거나 격렬하지 않지만 긴장감과 흔들림이 끊임없이 느껴지는 움직임,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을 상쇄시켜내는 움직임, 마음의 모를 깎아내는 작업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몸이 만들어내는 곡선에 탐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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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앤오프무용단 _Warm body_ 안무 한창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두 무용수가 퇴장하고 1인무에서 보여준 손목과 팔의 움직임은 한층 더 화려하고 우아한 모양새로 내 수정체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했다. 이후 본 작의 안무자이기도 한 무용수 한창호의 상대적으로 우람한 몸이 그려내는 곡선은 한층 더 파워풀하고 고차원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느림의 차분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은 마음의 단련 과정. 강인함이 표현하는 부드러움이란 색다른 멋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신체의 움직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부드러움과 곡선의 형태,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어디까지일지를 다 보여준 무대였다고 할까. 

후반부에 남녀 두 무용수가 대각선 방향에서 서로 걸어서 만날 때, 처음으로 쭉 뻗은 직선의 몸이 나타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난 후에는 다시 자연스레 몸이 구부러지면서, 저마다의 유연함으로 세상을 마주하고자 하는 작품 의도가 전광석화와 같이 번뜩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엔딩씬에서는 다시 처음과 같이 어두워지는 조명 아래 세 사람이 모여 풀잎사귀처럼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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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로젝트보라 _Somoo_ 안무 김보라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Somoo - 아트프로젝트보라 / 안무 김보라 

 

모시 속곳을 허벅다리가 드러나도록 올려 입은 모양새의 무용수들이 소무로 분하여 한 명씩 한 명씩 줄지어 등장한다. 

 

소무들은 저마다의 굴레 속에 갇힌 듯이 다리에 손에 목에, 굴레 같은 고무줄을 감고 있어 제한된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고무줄 탄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허락이 되어, 몸은 구부정하고 동작은 고무줄 타래 안에서 배배 꼬인다. 바로 그 고무줄을 이용하여 앞서가는 여자를 뒤엣 여자가 잡아채기도 한다. 그렇게 여자들은 가시 범위에서 하나둘씩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새로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고무줄 안에 갇힌 손놀림 발놀림은 그저 궁색한 자유로움일 뿐이다. 굴레를 벗어나고픈 조심스런 바람으로 잡고 있던 고무줄을 무심한 듯 순간적으로 떨어뜨려 보지만, 그녀들은 스스로 떨어뜨렸던 고무줄을 이내 다시 부여잡는다. 과연 무엇이 그녀들을 똑바로 서지 못하게 하는가! 

 

전통사회에서 '소무'는 일반적으로 본처를 불행하게 하는 첩, 요부 등의 의미를 포함하는 여성상이다. 본 작 <Somoo>에서 바라보는 '소무'에 대한 시선은 남성 중심 사회가 빚어낸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상으로, 그러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한껏 냉소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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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프로젝트보라 _Somoo_ 안무 김보라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자칫 여성 스스로도 냉소할 수 있는 소무라는 캐릭터를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하여 재인식을 시도한 관점에 더하여, 고무줄이라는 평범한 소품을 통해 약자의 제한된 자유와 권리를 표현하려 한 점이 상당히 신선했던 작품. 

 

이곳저곳에 혼재한 소무들의 제각각이던 움직임은 어느덧 통일된 군무로 조직성을 보이면서 일종의 탈이데올로기적 시선을 외치는 듯하다. 


아트프로젝트보라의 <Somoo>는 강자에게 선택받으려 하는 약자로서의 여성의 모습보다는, 별로 우아하지도 않고 다소는 음탕하면서 그저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여성상을 춤추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차별 성역할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 Plateforme Danse Festival과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개막에 초청된 바 있다. 

 

 


이렇게 양일에 걸친 2022 세계안무축제에서는 각 팀마다 삶의 철학에 대한 개성 있는 주제를 춤추면서, 우리가 몸의 언어를 어떤 형태, 어떤 무게감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를 기발하면서도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시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들려주고, 사진작가들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금년 세계안무축제는 pre대구국제현대무용축제로, 지역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대구국제현대무용축제로 명칭이 변경,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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