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의 복판에서 느끼는 감각들의 사유 ‘제7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제7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2026년 3월 8일 (일) 18:00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5세 이하의 젊은 안무가들이 자기 생각과 감각을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는 무대, ‘전국 안무드래프트전’. 어김없이 올해 3월에도, 달성예술극장에서 그 막이 올랐다. 총 10개의 팀, 120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된 이번 대회에서는 청년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감정, 자아, 사회, 시선이 움직임으로 창조되어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한다. 객석이 가득 메워져 서늘했던 공연장이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한 공기를 품기 시작하는 순간, 불이 꺼지고 떠들썩하던 소음 또한 사그라들었다. 이제 이 공간에는 말이 아닌 행동의 언어로 소통이 시작된다.


올라가기 위해 감추어야 하는 것, 그 이후 ‘정상의 정상’
- 안무 배은채
무대 한가운데 밝게 떨어지는 빛, 정상이다. 그곳을 향해 기어가는 몸짓은 느리고, 사람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기엔 목표를 향한 욕망이 느껴진다.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은 그의 얼굴에서 비틀어질지언정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올랐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아무것도 내 보이지 않은 채, 정상으로. 무대 위에는 다수의 사람이 자리하고, 넓게 분포된 그들은 가면을 탈착하며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욕심을 풀어낸다. 이내 가면을 완전히 벗어낸 이들이 다시 한번 도약한다. 욕구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현장은 축제처럼 보이기도 하고, 정상을 향한 욕망만을 뭉쳐놓은 듯 계산적이기보다도 욕망을 의식화한 움직임에 가깝게 느껴진다. 정상을 놓고 다수의 욕망이 충돌한다. 그러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단 한 사람, 두 발로 딛고 우뚝 섰다. 그 순간, 다시 위협이 시작된다. 정상을 향한 치열한 대립이.
‘정상’이란 사실 관념적인 개념에 가깝다. 눈으로 보이고 숫자로 매겨지는 1등이 아닌 이상 최고에 다다랐다는 것은 타인의 인정을 요구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머리 위에 군림하기를 희망한다. 비겁하고 때로는 치사하게, 정상에 존재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하여. 그러나 그 위에 오르는 순간 깨닫는다. 가장 취약하고 불안한 자리였음을.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은 이전과 다르지 않음을.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 끊이지 않는 관계 ‘느슨한 유대’
- 안무 박상현
실루엣만 겨우 보이는 포그가 자욱한 무대 위에는 한 사람만이 움직인다. 괴로워하고, 충격을 삼키며, 바닥을 헤집는다. 손끝까지 저릿한 괴로움이 그의 전신을 지배한 순간, 다수의 사람이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불규칙하게 흘러가는 가상 세계를 보여주듯이, 멈추었다 전진하기를 반복하며. 이들의 관계는 강압적이지 않다. 행동을 저지하고 앞길을 막아서지만, 그것은 방해의 행위가 아닌 앞으로 끌어주기 위함이다. 서로 얽힌 팔은 쉽게 풀어지면서도 그들 간의 감정적 유대가 드러난다. 충돌하지 않았던 그들의 관계는 속도가 격렬하게 변모하며 충동적이고 빠른 시계의 진자처럼 변한다. 고조된 템포와 격렬해지는 그들의 움직임은 개인의 행동에서 다수의 행동이 되고, 이내 찾아온 정지의 순간에 주저앉으며 영원한 휴지를 맞이한다.
‘느슨한 유대’는 SNS와 인터넷에 과도하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출발한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상대와 순식간에 연결되고, 관계를 맺지만 이렇게 연결된 인연은 대다수의 경우에 깊게 이어지지 못한다. 말 그대로 느슨한 인간관계로 유지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을 시간 단위로 알게 되고, 뭘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를 접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단 1초, SNS에 올린 사진을 통해서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유대는 일방적이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한, 이것은 더 이상 끈끈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이 무대는 묻는다. 당신이 맺은 관계들의 밀도는 어떠한가?


유쾌함으로 가려진 소유와 무감각 ‘닿기 전까지’
- 안무 김승욱
백화점에서 들릴법한 귀에 익은 클래식과 함께 초록, 빨강, 노란색의 장바구니가 등장한다. 세 무용수는 마치 관심을 갈구하는 물건이 된 것처럼 그 장바구니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뒤집어쓰기도 하며 ‘상품’이 될 만반의 준비를 거친다. 바구니는 모두를 포용하는 그릇이 될 수도, 상품 가치를 구분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붉은 장바구니를 든 소비자는 노란색도, 초록색도 거부한다. 원래 한 쌍이었던 것처럼, 빨간색 장바구니만을 받아들이고 그를 선택해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러나 가지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자, 그 가치는 땅에 떨어진 듯 등한시된다. 그의 앞에 마치 마트의 식품 코너처럼 색색의 장바구니가 나열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상품을 선택한다. 유치하고 가벼운 몸싸움 같기도 하고, 왈츠의 한 동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상품에도 질린 순간, 빨간 장바구니 안에 담긴 채 혼자 남은 소비자는 자신이 가지려 했던 모든 것을 잃었다.
물건과 상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상품은 ‘아직 팔리기 전,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온갖 포장이 된 물체’이고 물건은 ‘그 상품을 사고 난 직후, 온전히 소비자의 소유가 된 것’을 말한다. 이 무대에서 사람은 일정한, 팔릴만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버려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이유는 잘못도, 훼손도 아니다. 싫증이다. 한순간에 너무나 익숙해져 눈앞의 물건이 아닌 다른 상품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무감각해지는 순간, 주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인은 그곳에서조차 염증을 느낄 것이다. 혼자인 자신에게 곧 질려버릴 것이기에.


공동체에 결속된 움직임, 다수와의 연결 ‘REACHU’
- 안무 이지원
서로의 팔과 다리가 엉켜들고, 육감에 의해 꿈틀댄다. 정지된 순간은 하나의 명화로 그려지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동물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 같다. 무덤, 모두의 몸이 겹쳐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장면은 생동감이 없다. 그렇기에 죽은 자의 보금자리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서 홀로 탄생하는 것은, 생명을 발판 삼아 다시 태어난 인간 이외의 생물이다. 세상에 갓 나온 생명의 주변으로 다른 이들의 움직임이 깨어나고, 서로가 연결되어 한 사람씩 자기 자신의 구속에서 해방된다. 이는 생명의 신비처럼 보이기도 하고, 갓 태어난 세상으로의 호기심으로 비치기도 한다. 혼자서는 살아 나갈 수 없다. 공동체와 연결, 다수와의 공명을 통해 다시 한 발, 세상을 향해 내디딘다.
타인과의 접촉으로 시작된 움직임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반응한다. 오롯이 ‘나’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머물지 않고 다수와의 연결로 인해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간다. 혼자였으면 도달하지 못했을 곳을 향해 서로의 몸을 밟고 도약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하나의 덩어리로 남지는 않는다. 그들이 움직임으로써 서로에게 얽히고 살이 맞닿는 것일 뿐, 그것은 구속의 매개로 남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압이 아닌 서로의 존중 속에서 상대의 감각을 맛본다. 자신을 붙든 손에 의지하고, 그들만이 가진 감각을 사유하며 미지를 찾아 떠난다. 혼자가 아니기에, 멈추지 않고.


새벽공기를 닮은 발걸음으로 ‘마실’
- 안무 박준영
세상에 권태를 느끼는 듯, 윗옷을 벗어 던진 남자와 하의를 입지 않은 여자가 있다. 그들의 모습은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애처로워 보이기도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기조차 불분명하다. 그러나 다시 살아보려는 듯, 옷을 꿰어 입고, 신발을 신는다. 탁탁, 신발을 고쳐 신으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된 그들은 걸어 나간다. 이리저리 치이며,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흔들리며. 두 사람이 마주치면 다른 척력 의한 듯 튕겨 나간다. 타인과 같은 모습을 하고는 다가갈 수 없기에, 그들은 신발을 벗어놓는다. 그들의 범위 밖으로. 계속해서 빗나가던 그들의 접촉은 자석을 붙여놓은 것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리와인드 된 음악은 그들을 과거로 되돌려 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느릿하게 재생되는 소리와 융합되어 앞으로 나아가지도, 뒷걸음치지도 못하는 상태를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믿음, 의지, 신뢰가 더해져 현재의 삶이 마냥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발이라는 매개체는 사회에 발을 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리한다. 다수의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내가 아닌 남의 속도에 맞추어 빠르게 달려야만 하는 보편적인 사회는 이 두 사람의 세계가 되어주지 못한다. 평면인 무대임에도 어딘가 기울어진 듯, 빠르게 평행을 맞춰야 하는 사람처럼 달려 나간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사회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순간을 찾아낸다. 맨발로 서 있어도 비뚤어지지 않은 곳, 느린 움직임으로 서로에게 기대어도 그저 온기만이 느껴지는 세상.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나의 속도대로 천천히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무대는 축축한 새벽, 슬리퍼 하나 신고 집 밖을 나선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검은 무대 너머, 그들의 이야기와 같이.


낯선 소리의 침범, 잠식당한 나의 세계 ‘온앤온’
- 안무 정채빈
똑, 똑. 바닥을 두드린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연속된 리듬으로 쿠당탕-하는 갑작스러운 소음이 난입한다. 그 정체는 주황색 고깔이다. 타인의 소리를 내 귀에 무작정 가져다 대고, 나의 소리를 바깥으로 표출할 수 없게 만드는. 겹겹이 쌓인 주황색의 고깔은 계속해서 소음을 유발한다. 나팔처럼 인간의 소리를 전방위적으로 펼쳐 보이기도 하고, 탁탁- 쌓이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더니 이내 쏟아지며 산만하고 날카롭게 공간을 장악한다. 원- 투- 쓰리- 포- 반복되는 소리에 움직임 또한 그와 궤를 같이한다. 익숙해질 법하면 바뀌는 동작은 어디로 갈지 한 치 앞도 예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툭툭 튀어나오는 컴퓨터 에러 소리 속에서도 그 움직임과 숫자를 세는 소리는 여전하다. 마치 음악처럼, 반복되는 소음은 사람의 정신을 단순하게 만들고, 각자 소음의 주체가 되도록 한다. 소리를 듣게도, 만들게도 해주는 뾰족한 오브제는 볼링핀처럼 쌓아지더니 한순간 박살 나며 모든 소음이 멈춘다. 그 옆에서도, 그 행위가 반복하여 일어난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한순간에.
고깔은 청각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꽤나 큰 폭력을 행사했다. 조용한 무대 위에서 고깔이 쌓이고, 붕괴되고, 고깔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날카롭고 둔탁했기에 음향과 사람의 움직임 속에서 이질감이 들었다. 이 감각은 소리가 겹치고, 멈추고, 갑자기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과 기대를 하게 하는 장치로 자리하게 한다.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새로움을 찾으려 다른 소리를 집어넣는다. 비록 기껏 찾은 새로움의 끝은 붕괴일지라도.


역할도, 움직임도, 소리도, 일정하지 않은 순간들 ‘들쭉날쭉한 측면’
- 안무 황창대
조명이 켜지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거꾸로 매달린 인간의 형체였다. 정체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마치 기이한 괴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인영은 두 사람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 하나의 생명체였다가 분리된 두 사람과 그 뒤로 등장하는 한 명의 제사장으로 인해 이 역동적인 움직임들은 모두 하나의 의식으로 둔갑한다. 사람을 하대하는 듯하다가도, 동시에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고 낫을 든 사신이었다가 구원을 전파하러 온 천사로 변한다. 이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정체 또한 시시각각, 알 수 없게 변한다. 이 공연의 제목처럼 ‘들쭉날쭉’하다. 움직임은 마냥 ‘멋’을 강조하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움직임을 그들의 색으로 잘 풀어내어 즐거움을 주고 암전이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들리는 숨과 발소리가 그들의 의식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들이 나타내는 높낮이도, 사회적인 지위도, 움직임도, 발걸음도. 모두 일정하지 않다. 제목처럼 ‘들쭉날쭉’하다. 이 무대에서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불규칙함이 공연의 밀도를 만들어내며, 순간의 이야기를 창조해 낸다. 비닐 옷을 입고, 하얀 바지를 입은 그들의 정형화하지 않았으면서 통일된 의상은 이 무대의 일정하지 않은 요소를 부각해 준다. 모두가 매끈하고, 티끌 하나 없는 것을 선호할 때 이들은 울퉁불퉁한 무대를 선보이며 ‘무엇이 결점을 구분 짓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행위에 대한 새로운 정의 ‘너를 마시는 법’
- 안무 손은성, 최은서
후드에 달린 하얀 모자는 무당의 하얀 고깔처럼 보인다. 발끝부터 목까지 연결된 분홍색과 주황색의 굵은 선은 쌍둥이처럼 입은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발목과 발목으로 연결 지점을 만들고 상대를 끌어당긴다. 떨어져 있다가도 다시 서로에게 이끌려 ‘우리’가 된다. 제법 격렬하게 다투면서도 기대어 있다. 하얀 고깔을 쓰고 있던 두 머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망을 뒤집어쓴다. 세상의 시선을 차단한 그들의 움직임은 조금 더 격렬해지고, 닮은 점이 많아진다. 눈으로 보지 않고 감각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니, 오로지 손과 몸에 닿는 온기만으로 상대를 받아들인다. 비슷해지는 두 사람은 각자의 움직임에서 여백을 남겨놓는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주어가 정해진 빈 공간을. 두 사람이 발견한 ‘너를 마시는 법’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천천히, 아무도 다치지 않게.
‘마신다.’라는 행위는 보편적으로 잔에 액체를 따라 입을 통해 삼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그 행위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상대의 모든 것을 천천히 알아가겠다는 것처럼, 가까이에서 향과, 시선과, 몸짓과, 온기를 온전히 받아내며 자신의 정체성이 옅어지지 않게, 그러나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감각을 공유한다. 이는 천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천천히 서로를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자극과 접촉하여 나의 세계가 넓어지게, 그러므로 당신을 더 많이 받아들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들은 서로를 계속해서 마실 것이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Nostalgia’
- 안무 김원준
해적선 같기도 하고, 모험의 선두가 되어야 할 법한 이곳은 ‘꿈’의 한복판이다. 노란색 조명이 포그 속에서 아스라이 비치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꿈이 만들어진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1인칭으로 그려지는 시선과 풍경. 장면은 뚜렷하지 않기에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비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현재에 진행되는지, 과거에서의 역행인지 모호하게 구분되도록 초침 소리가 반복되고 장면을 찍어내는 액자 틀이 등장한다. 조명과 함께 의자 곁에 놓여있던 틀은 사람들의 몸을 통과하고, 그들을 가두기도 하며 의식을 억제하는 장치가 된다. 누군가의 무의식으로 자리한 이곳은 순간의 연속으로 만들어져 조각보처럼 시간이 기워진다. 노랗고 하얀빛의 바느질로 연결된 장면들은 누구의 환상으로 자리할까. 보이지 않는 이 꿈의 뒷면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누군가의 꿈속, 이 무의식의 향연은 단 하나의 면만을 보여준다. 조명이 닿는 곳, 그 뒤에서 어떠한 작당 모의가 펼쳐져도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액자의 틀에 갇혀, 순간을 포착당하며 기억의 파편 덩어리로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세계를 부유한다. 이 장면들은 꿈을 꾸는 사람의 과거에서 흘러나온다. 감정보다 이미지가 우선시되어 그 위에 소리와 감각이 덧대어진다.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은 온전할 수 없다. 현재의 경험과 사유가 더해져 그것은 온전히 그 순간의 기억으로 남을 수 없다. ‘꿈’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착안했다. 현실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과연 온전한 기억인가. 그것 또한 현재에 남겨진 부산물이 아닌가.


상대를 위하기에 자신을 해친 언어 ‘삼킨 말들’
- 안무 김조은
입 밖으로 칼을 빙자한 말들이 튀어나올까, 그들의 입은 자기 손으로 계속해서 가로막힌다. 상처를 입힐까, 갈등이 원인이 될까 조심스럽기만 한 이 대화는 불편한 긴장을 가진 채로 말끝을 겨우 붙잡는 이 대화는 극도로 조심스럽기에 다가가기 힘들다. 거울과도 같은 움직임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그들이 삼킨 말은 물과 같이 몸에 스며든다. 그럼에도 하지 못한 말이 더 많다. 그런 말이 각자의 몸을 가득 채우자, 그들은 가까워지지 못한다. 아무리 포옹하려 해도, 만지려 해도, 부풀어버린 염증과도 같은 마음에 가로막혀 닿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통은 변환점을 맞이한다. 내뱉지 못했던 말이 얽히고 호기심을 자극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가지게 한다. 나를 가두고 있던 겉껍질과 함께 속에 있는 모든 말을 벗어던졌을 때, 삼켰던 말들을 모두 버리고 숨을 내뱉었을 때, 그들의 관계는 비로소 새로운 내일을 향해 도약한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을 삼키는 순간, 그 말은 식도를 타고 내려가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고통 주는 상황, 이것은 올바른 의사소통의 현장인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을 때, 혹시라도 이 말 한마디로 인해 상대와의 관계가 끊길까 봐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명치께에 걸려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다. 그렇게 쌓인 말은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그 말들로 인해 둘러진 보호막과 같은 것이 무슨 말을 꺼내려 하든 멈칫거리게 만든다. 그러다 터져 나온 말들은, 예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시원한 마음만 들 뿐, 그들에게 말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제7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의 결과는 강정선, 김영남, 박재근, 이경희, 이정연, 차종현 심사위원들의 평가와 시청자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본선 다음날 발표되었다. 종합 부문에서는 대상 ‘Project SAI <온앤온> - 안무 정채빈’, 금상 ‘01Project <느슨한 유대> - 안무 박상현’, 은상 ‘김원준댄스프로젝트 <Nostalgia> - 안무 김원준’, ‘Project Moov - <삼킨 만들> - 안무 김조은’, ‘Until Great Collective <마실> - 안무 박준영’, 동상 ‘황창대무용단 <들쭉날쭉한 측면> - 안무 황창대’, ‘EBB Dance Project <REACHU> - 안무 이지원’, ‘Wook Danc Company <닿기 전까지> - 안무 김승욱’, ‘Project Group Ar.t <정상의 정상> - 안무 배은채’, ‘쌍쌍바프로젝트 <너를 마시는 법> - 안무 손은성, 최은서’이 각자의 자리에서 영예를 차지했다.
이어 작품 부문에서는 최우수작품상에 ‘Project SAI <온앤온> - 안무 정채빈’이, 우수작품상에 ‘01Project <느슨한 유대> - 안무 박상현’, ‘김원준댄스프로젝트 <Nostalgia> - 안무 김원준’, 달스타그랑프리에 ‘EBB Dance Project <REACHU> - 안무 이지원’, 특별상에 ‘Project Moov - <삼킨 만들> - 안무 김조은’이 자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무용수부문에서는 최우수무용상에 김혜현(01Project <느슨한 유대>), 우수무용수 상에 이다빈(Project SAI <온앤온>, 정인하(Until Great Collective <마실>), 이가영(EBB Dance Project <REACHU>)가 선정되어 영광을 누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