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곳에서 마주하며 깨닫는 ‘그 무엇’ <제2회 대한민국 안무대전>
제2회 대한민국안무대전
2025년 7월 27일 (일) 오후 18:30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7월 27일, 달성예술극장에서는 제2회 ‘대한민국 안무대전’이 개최되었다. 더운 여름 연습실에서 쏟아내던 땀이 무대에 닿는 순간, 그곳은 무용인들이 소리 낼 수 있는 터가 되고, 신체로 풀어놓는 메시지를 포용하는 너른 평야가 된다.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탐구하고 사회의 문제와 인간으로서 가진 본질을 지적한다. 그것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창작물로 탄생하는 것 또한 이들의 몫이다. 작은 고민으로 지나지 않고 그것을 잡아 몸으로 표현해 보는 무대, 그 첫 번째 장이 6시를 알리는 초침 소리와 함께 넘어갔다.
기계음에 빼앗긴 개인의 기록
- ‘cell_박현운’
휴대전화가 신체를 훑으면, 모스부호가 삑-하고 울린다. 이후 들리는 것은 차가운 기계 목소리가 읊는 개인의 기록이다. 휴대폰은 마치 바코드 스캐너처럼 사람을 읽어내며 그들의 일상과 취미를 투시한다. 그러다 움직이며 모스부호를 만들어낸 이들이 이내 모스부호의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기계음과 움직임의 연속에 무엇이 우선이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팔과 팔을 맞대어 마치 끊임없이 자신을 스캔하는 것 같은 행위는 외부로부터의 시선에서, 계속되는 기계의 사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모스부호는 다시 시작된다. 삑- 삐익- 길고 짧은 기계 소리를 따라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모스부호는 단순히 언어가 아닌 사람의 기록으로 통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손짓 하나, 상대와 대화할 때 하는 무심한 행동까지도 소리가 된다. 삑- 하는 단순한 소리에 정보가 어디까지 담기는지는 알 수 없다. 종지에는 사람이 움직임으로써 모스부호가 발생하는 것인지, 모스부호에 의해 사람이 조종당하는 것인지 모호하게 느껴진다. 단절된 흐름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기계음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을 말한다.
나를 둘러싼 여러 개의 사회
- ‘layer_한기태’
한 사람의 어깨에 지탱하듯 매달린 사람은 이내 그의 다리로 내려온다. 마치 애벌레가 변태하는 것처럼 보인 실루엣은 두 사람의 결합으로 다시 이어진다. 일방적으로 조종하는 것 같지만 이어지는 행위는 한 사람의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의지가 뒤섞여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그저 평등한 위치에서.
이들이 상의를 벗어내고 바닥에 노출된 맨살을 맞대 사회로부터 덮어 쓰인 ‘나’의 가면을 벗어내려 한다. 그들은 마치 투우 혹은 소싸움을 하듯 서로의 머리를 들이받고, 달려오는 몸을 있는 힘껏 받아낸다. ‘옷’이라는 사회를 벗어낸 이들은 더 육체적으로 투쟁한다. 이들의 싸움은 있는 그대로의 육체적인 경쟁이자 야생으로 느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동일했던 위치는 바뀌기 마련이며 절대성을 가지고자 하는 의미도 불분명하다. 계속된 경쟁의 끝에, 한 사람을 짓밟고 일어선 사람이 전진한다. 이것이 온전한 승리일까. 알 수 없다.
layer, 쌓다. 혹은 여러 개의 겹. 사람의 삶은 출생부터 계속해서 쌓인다. 해소되는 것은 없다. 이름, 나이, 신분 모든 것이 쌓여 ‘내’가 된다. 높고 낮은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고 느껴질 뿐이다. 사회는 이 잡히지 않는 계층의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인은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원한다. ‘옷’이라는 사회적 인격을 상징하는 막을 벗어낸 이들은 날 것으로 드러난 자신을 찾아내는데 피력을 다 한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에서
- ‘그곳엔 바다가 있었다_이예은’
어두운 심해를 표방하는 듯한 파란색 조명이 떨어지며, 수면 아래의 웅웅대는 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깊은 바다에는 빛이 들지 않고, 그사이에 몸짓이 아주 느린 생명체가 움직이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손전등으로, 어두운 곳을 빛낼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쥐어졌다. 아귀의 불빛과 같은 손전등은 물고기를 꾀어내며, 빛이 새어들기 시작한 심해의 생명체들은 환한 한 줄기의 빛으로 향하려 몸부림친다. 수면에 가까워질수록 배의 기적 소리와 수면 근처에서 들을 수 있는 파도 소리가 맺힌다. 바다의 바깥, 모래사장으로 쏟아지는 사람들은 땅과 바다를 오간다. 빛은 눈먼 자들이 느낄 수 있는 시야에 관한 유일한 것이다. 밝음과 어둠, 그것을 만들어낸 존재는 ‘신’이라고 여겨진다. 인간은 늘 언제나 시험대 위에 있고 감정에 치우친다. 어둠 속에서 주어졌던 빛에 이끌린다. 그 끝이 죽음일지, 또 다른 삶일지는 두렵지 않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심해 생물이 연상된다. 그들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빛을 마주 볼 수 없다. 그러나 빛은 따스히 그들을 감싸고 어둠을 뭍으로 끌어올린다.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눈뜨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들은 양지에서 충동적이고 자극에 반응하도록 변이한다. 그러다 보이지 않음에도 온전히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깊은 수면 아래에 잠기기를 희망한다. 다시 돌아온 깊은 바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다시 한 번의 빛. 그림자 진 물결 너머를 바라본다. 그곳엔, 바다가 있었다.
행위의 연속, 신체의 결합, 감정의 구속
- ‘ephoche 신솜이’
사람들의 얽힌 육체는 환상보다 현실에 가깝지만, 이 현실이 적나라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보이게끔 편집되고 관객이 그것을 믿을 수 있게끔, ‘리얼리즘’을 부가한 것이다. 타자를 휘두르고, 외부의 힘에 흔들리는 대신 이들은 조화를 택했다. 혼자서는 조형물 일부분을 차지했을 몸짓이 함께이기에 할 수 있는, 함께여서 더 아름다운 동작으로 이어진다. 팔로 만들어낸 연속된 선과 다리로 그려놓은 단절된 선형은 위아래로 융합되어 있다.
무대를 가득 채운 빛 앞에서 개인의 행동과 그림자를 숨길 수 있다는 의지는 무력하게 느껴진다. 각각 이어져 있던 실루엣의 사이로 하얀빛이 드리우면, 이들의 행위도 빛 속으로 삼켜진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때문에 ‘구원’이라는 상징의 의미로도 함께 사용된다. 이들은 처음 빛이 주는 희망을 살며시 그러쥐었으나, 그 손은 점차 형체 없는 빛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그림자는 빛을 외면하려 해도 그 틈새를 막을 방법이 없다. 조화를 이룬 육체는 밝음을 끌어당긴다. 그것을 통해 신체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빛으로 물들이려 한다. 무대 전체가 환하게 밝혀지고 무용수들은 빛 아래 완전히 노출된다. 차마 가려지지 못한 마음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멈추었다.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빛 속에 남은 건 그들의 가려지지 못한 마음이었다.
초록색 반원이라는 환상의 경계
- ‘선 품다 장예림’
기이한 팔의 겹침은 한 마리의 거대한 거미처럼 보인다. 초록색의 반원을 잡고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홀로 우뚝 선 생명체는 양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린다.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날갯짓 대신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뻐끔거리는 손과 절망에 찬 이미지는 완전하게 동일시되지 않아 더욱 부드럽고 괴이한 느낌을 준다. 서로를 분리하고 있던 경계가 사라지고, 두 사람이 하나의 존재로 합쳐진다. 각진 음악과 경계를 넘나드는 두 사람은 뒤집어져 있던 반원을 바닥과 연결 지어 다시 터널로 만들어낸다. 온전치 않은 원을 굴려 한 사람이었던 존재를 다시 둘로 나누어버린다. 반쪽짜리 원은 다시 경계로 자리한다. 그러나 그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다. ’나‘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바꾸어낸 것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한다. 이내 원이 뒤집히고 완전히 하나로 자리 잡는다. 경계가 허물어진다.
작은 초록색의 반원은 거울과도 같은 경계이다. 그것을 넘어갈 수 있지만 그 경계 너머에는 한 사람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겉과 안을 오가는 것이 수십 번, 이내 어디가 밖이고 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경계는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손에 의해 뒤집히고 굴러다닌다. 경계 너머의 상대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다 한 발, 경계를 넘어 마주하고 닿아본다. 그 또한 ‘나’임을 깨달았다.
소리 없는 악기에서 흐르는 박자
- ‘조율 김민수’
곧게 서 있던 신체는 종소리에 허물어진다.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다리와 팔은 계산적인 동작이 아닌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실루엣으로 존재하는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신체뿐, 그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에 가깝다. 반짝이는 신체의 윤곽선을 따라 혼자만의 리듬을,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박자를 공유한다. 경건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이 움직임을 종교적인, 의식적인 움직임으로도 인식하게 한다. 이들의 몸짓은 조심스럽고 대담하다. 한껏 빛을 향해 치솟은 손은 서커스처럼 보인다. 일정한 박자 위에서 같은 것으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뿐이다.
신체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자율성을 지닌다. 악기는 인간의 손에서 연주되며 외부의 자극 없이는 소리 내지 못한다. 그러나 내부에서 리듬과 선율을 만들어 내는 악기는 간단하고 반복적인 소리로 공백을 메운다. 발을 구르고 몸을 부딪친다.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들리는 소리는 절정을 향해 간다. 이 행위는 다음 연주를 위한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다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뿐이다. 일정하지 않았던 리듬을 균일하게 만들고, 그것을 다듬듯이.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준비 단계처럼.
탄생에서 결합, 그리고 다시 탄생의 순환
- ‘지붕 밑 애 김지우’
까드득- 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굴러들어 온 두 존재는 세상에 갓 나온 아이이다. 그 무엇도 갖춰 입지 않았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모른다.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며 자신의 움직임만을 고집한다. 시간이 흘러 이 아이들은 옷걸이에서 바깥세상의 껍데기인 옷을 갖춰 입고서는 사회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무엇도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어엿한 사회인이자 자신의 감정과 몸을 컨트롤할 줄 아는 어른으로 분한다. 혼자였던 탄생에서 이들은 서로를 만나 세상에 둘이 전부인 가정을 꾸린다. 사랑의 결실은 또다시 돌아가 두 사람의 아이가 탄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아이는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요람을 밀어주고, 아이의 첫걸음도 격려를 북돋으며 아이를 진심으로 아껴준다. 탄생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탄생을 겪고 그 과정에 온전한 사랑만 존재하지는 않았기에 그것 또한 성장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한 지붕 아래에서 느낄 수 있는 가족으로써의 사랑이 포착되었다.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강하게 박힌 드라마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랑에 빠지고, 다시 탄생. 인간의 반복되는 삶, 순환되는 인생,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빠질 수 없는 가족, 정, 사랑을 옷걸이와 옷만으로 표현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두 사람은 이성 간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이에 아이가 생김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의 종류는 무한하고 그 형태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사랑은 세 사람을 다시 묶어놓는다. 집에 꼭 필요한 지붕, 그리고 그 아래 愛(애). 무엇보다 강한 결속력 중 하나에 인간은 사로잡힌다.
<제2회 대한민국 안무대전>은 총 7개의 본선 진출 무대로 막을 내렸다. 대구문화창작소 오중섭, 이재봉 대표는 ‘젊은 예술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기성세대의 역할’이며 대한민국 안무대전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설명하였다. (사)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 강정선 또한 ‘26살 이상 선배들의 건의에 따라 뒤늦게 시작한 대한민국 안무대전이 더 많은 예술인이 기억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격려의 말을 덧붙였다.
작품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은 ‘Lucas Crew <조율> / 안무 김민수’가 수상하였으며, 우수작품상은 ‘somArt <EPHOCHE> / 안무 신솜이’가 차지하였다. Dalstar Grand Prix는 별도의 수상을 하지 않았으며, ‘Arttacca Collective <지붕 밑 애> / 안무 김지우’의 작품이 특별상을 가져갔다. 이어 무용수 부문에서는 ‘Lucas Crew’의 Ayane Nakamure가 최우수무용수상을 차지하였으며, ‘Ripup Art Company’의 장원우와 ‘somArt’의 신솜이가 우수무용수상을 차지하였다. 종합적으로는 ‘Arttacca Collective / 안무 김지우’가 영예를 차지하였으며, 이어 금상에 ‘Lucas Crew / 안무 김민수’, 은상 ‘Ripup Art Company / 안무 한기태’, ‘숨무용단 / 안무 이예은’, ‘somArt / 안무 신솜이’, 동상 ‘몸기억연구소 / 안무 박현운’, ‘호음 / 안무 장예림’이 뒤를 이으며 2025년 <제2회 대한민국 안무대전>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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