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대구무용제, 비슷한 듯 다른 현대인의 내면 들여다보기
제34회 대구무용제
2023년 5월 25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34회 대구무용제가 지난 5월 25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개최되었다. 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주최하는 대구무용제는, 매년 전국무용제에 대구 지역 대표로 참가할 작품을 선발하는 무용제로, 대구광역시, 대한무용협회, 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이 후원하는 연중 행사다.
정효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원과, 엄선민 소울무용단의 화려한 축하공연으로 시작된 이번 무용제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분야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개 팀이 참가해, 전국무용제 출전권을 두고 열띤 경쟁을 펼쳤다. 이번 경연작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인간 본래의 모습에 대한 탐구적 시선이 돋보였다.
척프로젝트 '교집합 - 스치듯 물들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교집합 - 스치듯 물들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 척프로젝트 / 안무 최재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건강, 학업, 직업, 재산, 인간관계... 심지어 성격마저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엄지 손가락을 하도 빨아서 퉁퉁 부르튼 아이가 유치원을 가면서부터 더 이상 손가락을 빨지 않는다면, 분명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두려워 손가락을 입에 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순간, 모든 환경으로부터 길들여지고, 학습된 자아로서 존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할 때, '원래 이런' 것이란 결코 온전한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척프로젝트 '교집합 - 스치듯 물들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척프로젝트의 작품 '교집합'은 "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갓 태어났을 때의 순수함은 세상의 먼지로 인해 점차 오염되어 간다고 작품은 말한다. 그렇게 묵고 묵어 지워지지 않는 오염은 어느 순간 내 모습이 되어 있다고 말이다.
아방가르드한 현의 소리에 반응하는 몸. 무대 뒤편에서 사운드와 빛을 향해 꿈틀거리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있다. 그 몸짓은 심장의 박동 소리에 눈을 뜨는 태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발을 한껏 높이 들어올리며 조심스레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빠르지 않은 발걸음은 전진을 하다 되돌아 짚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무대 앞쪽에도 무용수들이 대여섯 무리를 지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엎디어 발끝을 꼼지락거리다가 다리를 쭈욱 뻗는다. 그들도 나아가 삼삼오오 떼 지은 춤을 추어 보인다. 마치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를 표현하는 듯 비슷하게 행동하고 비슷하게 말하는 모습이다. 회색 옷을 입은 뒤쪽의 무용수도 점차 이들의 모습에 휩쓸린다.
척프로젝트 '교집합 - 스치듯 물들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문득, "나는 왜 이런 모습이 되었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순간, 무용수들은 허공에서 내려온 막대구조물을 잡으려 애쓴다. 그렇게 손을 뻗던 무용수들은 하나 둘 퇴장하고 회색 옷의 무용수만이 남는다. 한 발 한 발 크게 자신있게 발걸음을 옮긴 그는 마치 굿을 하는 느낌으로 절정을 춤춘다. 그 춤 안에는 끝내 지켜내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보여지지 못했음에 욕심이 담겨 있고, 나란 사람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갈구함과, 뜻대로 되지 않음에 회한이 어리어 있다.
한바탕 신나게 놀아난 무용수는 처량한 멜로디 소리에 절름 절름 굴신하며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 못한다. 본래라는 것에 대한 탐구. 분명 현재의 나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한 것일 터인데,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나란 사람의 모습. 그러나 이 또한 바로 나이며, 우리들의 모습임에 서글퍼하기만 할 겨를이란 없다. 가공할 타악과 함께 무용수들이 일렬로 굴신하며 나아온다. 흰 시스루 상의에 밤색바지. 마치 흙에서 나온 자연의 존재들 위에, 회색 옷을 입고 연기한 무용수는 떠도는 먼지처럼, 혹은 오랜 시간 세파에 굳세어진 바위처럼 대비를 이룬다.
척프로젝트 '교집합 - 스치듯 물들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대단원의 자유롭고 힘찬 군무 속에서 비로소 활짝 웃는 회색 옷의 미소가 관객 각자의 마음 속으로 위안의 향기를 불어 넣는다. 춤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지만 음악이 멈추고, 다시금 가까워진 막대구조물 사이로 회색 옷의 멈추지 않는 춤과 거친 숨소리만이 남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작품은 금년 대구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엠.에프.엘 '다이빙'
다이빙
- 엠.에프.엘 / 안무 이재진
사회생활을 하면서 입에 붙은 말 한 문장이 있다. "사람들이 다 나같지 않아!" 잘 해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뜻이 아닌데 오해를 받을 때, 내 상식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때... 무언가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다 나같지 않다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의 반복은 일종에 세상과의 타협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적응의 한 과정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쉽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 어려울 수 있는.
작품 '다이빙'은 후자의 수고로움을 들여다 본다. 타협이란 것이 잘 되지 않는. 나아가 자신의 상식, 기호 안에 갇혀 세상 속에 섞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세상 안에서나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아집일까? 강박일까? 혹은 연약함일까?...
엠.에프.엘 '다이빙'
후드 티셔츠를 머리 위로 푹 뒤집어 쓴 누군가 새장인지 어항인지 모를 케이지 안으로 모이를 넣듯이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어찌 보면 상당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고, 어찌 보면 정신을 놓고 피안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과는 상반되게, 기둥처럼 정지해 있던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들의 차림새는 다양하다. 양복을 입은 사람, 큰 숫자가 적힌 운동복 차림에 무릎 보호대를 한 사람, 오버롤즈가 발랄한 사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같은 춤을 추면서 허공에 손을 들어 껌벅인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아우성이 소리 없이 무대에 가득 드리운다. 경기를 일으키듯 분절하며 온 몸을 떨어내는 그들의 춤. 현대인들은 모두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특히 강박장애가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많이 생긴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역시 타협이 잘 되지 않는 나이다.
엠.에프.엘 '다이빙'
곧 그들 사이로, 온통 검은 옷차림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외발전동휠을 타고 들어온다. 바퀴만이 알록달록 빛을 발한다. 그는 그림자 같지만 더 격정적으로 춤을 춘다. 분절과 떨림은 찾아볼 수 없고 마음껏 즐기는 춤. 문득 검은 망원경을 들여다 보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다. 애처로이 나아가다 엎어지고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하는 사이, 무대 뒤쪽 또 다른 공간에서는 방독면을 쓴 사람이 테이블 위에 올라 서 도끼와 의자방패를 마구 휘두른다...
방독면과 외발휠. 어쩌면 두 무용수는 하나의 존재를 춤 추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에서는 그림자처럼 침묵으로 표류하면서, 가상의 세계, 그만의 세계에선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영웅으로 존재하는. 그는 이제 횃불을 놓고 쓰러진 적들 위에서 방독면을 벗고 심호흡 한다. 마지막 악당을 무찌른 영웅에겐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조명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며 평화가 찾아온다.
엠.에프.엘 '다이빙'
레퀴엠 속에 깨어난 존재들. 방독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춤.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종용하는 음악과 함께 희망에의 춤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집이라고도 연약함이라고도 치부하지 말자며 그들을 격려한다. 성서의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독려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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