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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주어 잃은 용서, 무감각해진 단어 'FORGIVENESS DANCE in FILM'

 

수성아트피아 상주단체 기획공연 2

카이로스 창작무용 'FORGIVENESS DANCE in FILM'

2023년 10월 26일 / 수성아트피아 대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현시대는 폭력과 혐오가 만연하다. 동시에 그 행위에서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모든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우리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매일 용서를 구한다. 용서를 바라는 것에 주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길 잃은 용서를 매일 같이 빌며 하루를 살아나고 있다.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현시대에서 용서란 얼마나 어렵고 무감각해진 행위인가. 

 

10월 26일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된 이야기는 일상에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등 수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용서를 구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라는 질문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고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다만, 이 용서는 말로만 하는 용서가 포함되는가. 한 대상을 용서한다고 말로만 하는 건 쉬울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한마디에 우리의 마음과 진심이 전부 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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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 두 질문을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노트북을 한 손에 들고 맨발로 무대 위에 서 있는 무용수의 의상은 새하얗다. 그렇기에 '용서'에 대한 답을 찾는 그의 모습은 예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도 같다. CHAT GPT는 입력된 질문에 최선의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무용수는 그 답을 다 보지도 않은 채 노트북을 꺼 버린다. 감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A.I에게 용서를 갈구해봤자 그것은 검은 활자에 담긴 무미건조하고 상식적인 답변일 뿐,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진리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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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무대 맞은편에서 손전등을 든 무용수가 들어온다. 조명이 꺼진 무대 위, 두 명의 무용수는 서로의 손에 쥐어진 손전등만을 의지하며 움직인다. 분명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격하다. 다만 조명이 매우 한정적이고 그 한정적인 영역마저 좁아 조명이 쉴  새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빛이 가려진 세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나지만, 우리의 눈으로는 좀체 그것을 자세히 볼 수 없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나 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진 행위를 볼 수 없는데 우리는 그 찰나에서 폭력의 주체를 구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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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 사이에서 하얀 고깔을 쓴 무용수가 등장한다. 무용수는 하얀 고깔을 뒤집어쓴 채로 검은 옷을 입고 무대 위를 서성거리는 무용수들을 뒤쫓다, 장삼을 걸쳐 입고는 허공으로 팔을 휘두른다. 조명은 무대 위에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가는 무용수의 손끝에서부터 길게 늘어뜨려진 장삼은 작은 손짓에도 공기를 가볍게 훑는다. 바람의 결을 따라 하늘하늘하게 움직이는 장삼이지만, 그를 가누는 무용수의 손짓은 애처롭다. 자신이 쫓던 검은 옷의 사람들을 잊으려는 듯, 갈수록 격렬해진다. 자신의 과오와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한 것처럼, 그 움직임은 오래도록 잦아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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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탈을 쓴 무용수가 무대 가운데 서 있다. 이어 발레리나 옷을 입은 무용수가 다가와 사자탈과 대치한다. 그 단편적인 모습과 외향으로만 봐서는 영락없이 사자탈이 가해자이고 발레리나가 피해자이다. 그 순간, 발레리나가 사자탈을 벗기며 그의 등에 빨간 물감을 칠한다. 마치 상처가 터진 것처럼, 무용수의 등에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한 빨간 자국이 생겼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얼굴을 드러낸 무용수의 머리 위로 많은 양의 꽃가루가 쏟아져 내린다. 발레리나가 바구니에 든 꽃가루를 무용수의 머리 위로 부어버린 것이다. 꽃가루는 환희, 축복, 축하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반면, 과도하게 쏟아져 버린 긍정의 감정은 무용수에게 버거워 보였다. 무용수는 가벼운 그 종이의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힌다. 무자비하고 강압적인 폭력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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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여러 곳에서 세 쌍의 남녀가 바구니를 차지하려 노력하고, 싸우고, 화해한다. 번갈아 가며 바구니를 쓰는 행위는 시야를 차단하여 현재를 외면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현재를 외면하였기에 미래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영원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신분을 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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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편으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구절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여자는 남자를 찌르고, 책망했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남자는 그 행위를 무시한 채 다른 무용수를 품으로 끌어당겼고,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자신을 책망하는 눈길을 거부한 채 남자는 그녀를 등진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에 처절한 폭력의 장면이 더해져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평화로운 하늘 아래 이 땅에서는 어떤 무자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루를 힘겹게 살아낸 우리들의 눈은 폭력이 낭자한 세상을 보려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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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과 달리 황금빛 조명이 쏟아지며 무용수들은 반복되는 동작을 취한다.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특정 리듬을 기점으로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한다. 모든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해방의 몸부림처럼 정열적이고도 격렬하다. 그 뒤로 깔리는 건반의 그루브가 그들의 동작을 더 생동감 있어 보이게 한다. 황금빛의 찬란한 격정이 잦아들면 무대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는다.

 

이 무대에서 유일하게 가해자 포지션이었던 발레리나가 와이어에 묶인 채 등장한다. 그녀가 용서하지 못했던, 용서할 수 없었기에 저질렀던 폭력이 낡아버린 과거가 되어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 없어 쌓아뒀던 곯은 감정과 시간이 그녀를 잡아먹기 시작한다. 먼지 쌓인 시간에 머물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사람의 최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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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에서 판결을 앞둔 많은 가해자는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에게 정말 죄송하고...' 정작 그 용서는 피해자를 향한 것이 아닌 재판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다. 이 이상한 주어의 용서는 오랜 시간 변하지 않았다 용서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는 용서에 어떤 마음을 담아야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남을 용서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용서하는 것부터가 현재의 시작이다.

 

말뿐인 용서와 진심이 담긴 용서,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하기 위해 아주 많은 용서를 받고, 구해야 한다. 이 공연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는 불분명하다. 모두가 서로를 압박하며 가해자의 위치를 자처하지만, 모두가 가해자이기에 모두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이들은 대체 누구에게 용서받고, 구해야 하는지 의문을 남긴 채 공연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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