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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세계 0순위 공용어로 소통하는 시간, 2023 대구국제무용제 (1일차)

 

제25회 대구국제무용제

2023년 9월 2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수학, 과학, 음악, 미술 등 모든 학문이 결국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살아감을 이행하는 주체인 몸의 짓, 즉 움직임을 연구하는 춤이야말로 철학적 논리의 최전선에 위치한 학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저런 춤을 보고 있으면, 과거에 그들이 어떻게 생각해왔고, 오늘날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그 살아감의 순간 순간을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언어가 달라도,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도, 혹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이해되는 0순위 세계 공용어, 춤.


가장 살아있는 학문의 진가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난 9월 2일과 3일 양일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마련되었다. 제25회 대구국제무용제. (사)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주최하고 대구광역시, (사)한국예총대구광역시연합회, (사)대한무용협회 등이 후원한 금년 행사에는 한국, 프랑스, 대만 등 7개국 9개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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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현무 ⓒ사진 이재봉

 

 

육현무/ 구미시립무용단 - 한국 (김현태 재구성)


두둥! 두둥! 태고(太古)의 소리가 울린다. 북가죽의 떨림에는, 오랜 시간을 견디어 온 무(無)로부터 태동하기 시작하는 유기체의 꿈틀거림이 녹아있다. 그 신비로움을 한 번의 두드림에 담고, 근원적 호흡을 두 번의 두드림에 담아 보이는 백경우의 북소리. 힘주어 내뱉는 "으아!"하는 구음이 북놀음을 알리는 경적처럼 북소리에 스며든다.


높은 곳에서 그렇게 공연의 서막을 알린 하나의 북소리는 순간, 하나처럼 울리는 54개의 북소리로 청각적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동시에, 진분홍 저고리에 진초록의 치맛자락을 야무지게 틀어올린 열두 명의 무용수들이 제각기 여섯 개의 북에 둘러싸인 장관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개개인의 무용수는 마치, 언제든지 대지의 소리를 울려낼 준비가 된 꽃의 정령처럼 청아한 자태로 미소를 머금었다. 실상 그들은 사는 곳도, 좋아하는 음식도,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어도 육고(六鼓)의 가운데서 각자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은 한결같이 절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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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현무 ⓒ사진 이재봉

 


한 개의 북을 빠르게 연주하기도 쉽지가 않을 터인데, 여섯 개의 북을 좌우로 위아래로 물결치듯 넘나드는 소리가 마치 즐거운 급류에 휘말리는 듯이 빠져들게 한다. 북은 단지 거기 달려 있을 뿐인데, 팔을 뻗기에도 시원치 않을 좁은 공간에서 사방 육방으로 몸을 휙휙 돌리고, 풀쩍풀쩍 뛰기도 하는 그들의 북사위는 마치 복붙(복사하여 붙여넣기)을 한 듯이 흐트러짐이 없고 조직적이다. 어찌보면 해리포터 마법학교의 액자 속 인물들처럼, 갇혀진 공간에서 신비스러운 움직임으로 즐거운 환상을 소리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54개의 북이 삼고무에서보다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로 시야를 가득 메운 육현무. 두두둥! 만물의 에너지로 결집된 소리가 초반부터 빠르게 휘몰아쳐, 그야말로 서라운드적인 몰입감을 안겨준다. 그들의 연주와 춤을 보고 있으면, 자진모리, 휘모리, 이런 장단은 잊었어도 우리네 몸짓에 정신에 깃들어있는 흥은 여지없이 고개를 든다. 그 '신명'이라는 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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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for James B ⓒ사진 이재봉

 

 

Waiting for James B / 아르 무브 - 프랑스 (안무 Helene TADDEI-LAWSON)


Waiting for James B? 제임스 본드인가? 2층 객석에 앉아 작품을 기다리면서 든 생각이다. 아직 무대는 어둡고, 적막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아래쪽 객석에서 새어난다. 띠링 띠링 울리는 벨소리에 이어, 띠리리 띠리리 다른 벨소리까지 합세하니 관객들 미간에 주름이 질 판이다. 설상가상, 주위의 시선따위 아랑곳 않는 목소리. "Hellow! James? I love you!" 나이 꽤나 먹은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제임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당당하게 받아들었다. 1층 객석의 분위기가 미처 파악되지 않았던 나는, 이쯤이나 되어서야 퍼포먼스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통화의 끝에는 익숙한 보이스가 들려온다. 소울 가득한 샤우팅에 이어 "I feel good~"하는 노랫말이 펑키하게 울려퍼진다. 60년대를 풍미한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곡 "I Got You (I Feel Good)"이다. 'Jame B'는 아마도 제임스 브라운을 이름인가 보다. 무대로 전진하는 무용수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고, 다소는 어리둥절했던 관객들의 의문은 이내 환호와 박수로 바뀌어 공연장은 금새 축제 분위기다.


Cie Art Mouv(아르 무브)는 1999년 엘렌 타데이 로슨이 설립한 프랑스의 무용단이다. 중장년쯤의, 적잖은 연륜이 있어 보이는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베레모에 파스텔톤의 수트를 담백하게 차려 입고, 60년대의 그루브(groove)함을 소환한다. 브레이킹에 마임 분위기의 퍼포먼스도 곁들여진 그들의 춤은, 대단히 정교해 보이거나 딱딱 맞아 떨어지는 멋은 아니지만, 왕년에 즐겨 추었던 춤과 흥이 그들의 몸에 베여 있어 그저 한 번 출렁이는 다리에도 세련미가 깃들어 있다. 음악이 멈추어도, 멈출 줄 모르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몸짓에는 각자의 춤적 취향이 녹아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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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for James B ⓒ사진 이재봉

 


누군가 어둠 속에서 랩을 하는 동안, 객석에서는 어떤 제임스가 춤을 추고, 이어 건너편 객석에서, 무대에서, 한 명씩 춤의 릴레이를 펼친다. 안무자의 춤 끝에 비지스(Bee Gees)의 달콤한 발라드 "How Deep Is Your Love"가 흘러나오자 무용수와 관객들이 듀엣을 이루어 춤을 춘다.


중간 중간 불어로 주고받는 대화에서, 단호하게 "Absolutely(앱솔루틀리)!" 하고 입을 모으는 모양은, 소울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을 추억하는 건지, 혹은 어김없이 지각하는 친구 제임스를 흉보는 건지, 알길이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추억의 팝음악과 함께 그들이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확실히, 음악과 춤을 통해 공유했던 문화 공동체적 교감과 시대적 정서에의 공감이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우리를 하나 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B'는 제임스 본드일 수도 있었다.


엔딩을 장식한 음악은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무대를 오르는 계단 한 쪽에 무용수들이 모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모여 앉았다. 음악의 일렉트로닉함에 맞추어 로보틱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 마치 공간감을 잃은 로봇처럼 모퉁이에서만 맴돌자, 시간능력자 같은 이가 나타나 그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무대 가운데로 들어 옮긴다. 얼음!하고 멈추었던 시간을 지나 비로소 깨어난 사람들처럼, 중앙으로 옮겨진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더 커진다. 그러나,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노래하던 음악이 끝나자, 그들은 이내 "Black out!"이라고 외치며 손사래를 친다. 코미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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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Reality ⓒ사진 이재봉

 

 

Ultimate Reality / 飄流所표류소 - 대만 (안무 Kuo Yu Chen)


연기가 자욱하다. 아련하고 구슬픈 음악과 함께 다섯 무용수가 연기와 공기와 바람과 같은 춤을 춘다. 연기와 공기와 바람, 사라져 없어지는 것들 아닌가. 그들은 손을 팔을 휘젓고 둥글리며 어딘가로 하염 없이 향한다. 어떤이는 무언가를 찾아 뛰어다니고, 어떤이는 몸짓에 갈망을 잔뜩 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손을 위 아래로 반복해서 뒤집다가 몸을 돌리고 마는 모습은, 풀리지 않는 생각의 실마리에 좌절 함인가. 없어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한 갈망. 연기같은 그들의 춤은 이제 조명에 의해 그림자로 연출되고, 어떤 흔적처럼 보는 이의 시선에 각인된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음악이 멈추고 비소리에 습한 기운이 감돈다. 비구름을 몰고 다니며 언제고 뇌성을 지를 준비가 된 하늘 아래, 땅 위의 무용수들은 조심히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방향이 다른 한 사람은, 넷이 멈추거나 다른 동작을 하는 사이, 그들 사이를 휘저으며 춤을 춘다. 무용수가 뛰어 가니 서성이듯 커지는 그림자는 마치 다급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이 느껴진다. 불안정한 그들 내면의 모습이 위기감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찾는 것은 확실히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한한 우주 속에 무관심해 보이는 존재의 공허함과 무의미함 따위가 그들을 괴롭혀 온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허공을 향해 있다. 그러나 공허함이란 어떤 측면에서, 모든 것이 관계로 얽혀 있고 상호 의존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러한 맥락에서 결국 공허함을 받아 들인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나, 만일 자신의 행동이나 노력, 존재가 계속해서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절망과 우울함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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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imate Reality ⓒ사진 이재봉

 


공허함 속에서, 한 줄기 광명과 같은 조명이 무대 중앙에 내리 비추인다. 다섯 무용수는 빛이 그리는 스폿(spot)을 에워싸고 빙글빙글 돈다. 스폿은 점점 커져 사라지고, 공허함을 받아들인 자들은 안정을 찾은 듯이 보인다.


장면은 전환되어, 다섯은 이제 입고 있던 옷을 벗어내며 양 손으로 머릴 쥐고 괴로워한다. 그 중 한 명의 무용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우리에겐 영화의 ost로 더 익숙한 "Gloomy Sunday"가 슬픈 떨림을 가진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원곡자인 셰레시 레죄(Seress Rezső)가 1930년대에 곡을 발표한 당시, 암울했던 헝가리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썰이 전해지는 곡.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일요일은 우울하고 잠조차 들 수가 없네)' 두 남녀 무용수가 서로 등을 지고 서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손을 들어 뻗는다.


엔딩 장면. 이전의 의상과는 사뭇 다르게 잘 차려 입은 무용수들의 모습이 마치 고위층의 사교파티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중 한 명의 무용수는 토끼탈을 쓴 채 의자에 앉고, 다른 넷은 양손을 들어 올린다. 토끼. 그래!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숨을 굴을 판다고 했던가. 작품 "Ultimate Reality(궁극의 진실)"은 결국 공허함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음을, 그러한 인간의 잠재력을 돌아볼 것을, 토끼의 은유로 춤추어 보이면서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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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ero ⓒ사진 이재봉

 

 

Bolero / 김용걸댄스씨어터 - 한국 (안무 김용걸)


아직 무대가 밝아지기 전이건만, 시야에 백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이미지가 느껴진다. 우뚝 우뚝 솟은 산등성이의 곡선이 첩첩 포개어진 모습. 하늘 높은 줄 모른채 솟아있는 대자연의 풍경이 자아내는 경외스러움이랄까. 이어, 여러 개의 모래 알갱이가 동시에 톡톡 튀는 듯한, 확실히 날카로운 질감이지만 조심스럽게 투박한 북가죽의 울림이, 상당히 익숙한 리듬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지만,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그 소리. 라벨(Maurice Joseph Ravel)의 "볼레로(Bolero)" 도입부다. 김용걸댄스씨어터의 "볼레로"는 라벨의 볼레로 곡이 가진 음악적 기운을 발레 춤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무대는 아직 어둡고, 19쌍의 손이 무대의 바닥에서 솟아 올라 춤을 춘다. 손의 춤은 백스크린에 그려진 장중한 산맥의 그림 앞에서, 마치 작은 산중 토끼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처럼 보인다. 산토끼들이 사라지고, 무대는 이제 일곱 발레리노의 발동작을 보여준다. 음악은 아직까지 도입부의 북소리만이 반복되고 있고, 검은 막에 가려진채 춤추는 다리는 마치 북가죽을 두드리는 북채의 움직임처럼 예술적이다.


드디어 막이 오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발레리노일줄 알았던 그들은 검은 팬츠 위에 하얀 튜튜를 입고 있다. 멋스럽던 발레 동작들이 막춤처럼 일그러지고 관객들로 하여금 놀라움의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춤은 발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탭 댄스의 경쾌한 소리가 잠시 볼레로의 북을 멈춘다. 멈추지 않을 것같은 탭 소리, 점점 가속을 붙여가던 탭 소리는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낼 찰나에 스텝이 꼬여버리고 만다. 그 와중에도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그를 향해 "우윳빛깔 아무개!"를 외친다. 축제라는 의미에 걸맞게, 재미와 소통이라는 양념이 그들의 춤 전반에 깃들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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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ero ⓒ사진 이재봉

 


상의를 탈의한 솔리스트가 양 손에 수건을 쥔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다소 촐싹대는 느낌의 춤으로 무겁지 않은 재미와 화려한 춤을 적절하게 섞어낸다. 이런 저런 관악기들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악기의 음색이, 음의 장단과 고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볼레로 곡의 매력을 풍성하게 울려낸다. 그와 함께 삼십여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집단무는 마치 발레 무도장과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검은 재킷 안에 스리슬쩍 들썩이는 붉은 안감의 색 대비도 강렬하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서 있는 것 같았지만 어느덧 일렬로 육렬로 종대를 이루며 발레 파도를 탄다. 집단이 조직적으로 그려내는 여러 가지 대형만으로도 작품은 예술적인 조형미를 가득 담아낸다.


시나브로 증가하는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세게)의 음악적 상승은 어느덧 카타르시스를 자아내고, 후반으로 갈수록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더욱 비장해진다. 재킷을 벗어 던진 솔리스트의 드러난 상체에서는, 가쁜 숨을 견디어내는 근육들의 아우성이 뱃가죽 아래에서 요동을 친다. 삼십 명에게 들어 올려지고 회전하면서, 일제히 함성과 함께 붉은 재킷을 던지며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장관이 첫째날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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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출연자 기념촬영 ⓒ사진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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