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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춤으로 삶의 묵직한 메시지 전달했다
인간공장으로 압박하는 사회현상 제동 건 리펍아트컴퍼니

 

대구애서 시리즈 7 - 리펍아트컴퍼니 '인간공장'

2023년 7월 9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김리윤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어릴 때 프레스 공장에 가본 적 있다. 윙윙 소리에 맞춰 기계가 거침없이 도는 곳. ‘Press’ 단어에 걸맞게 엄청난 압박에 눌려 똑같이 찍혀 나오던 물건이 참으로 신기했다. 공정은 한 치의 오차를 느끼지 못하도록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다가도 삐걱거렸는지 아주 드물게 일그러진 모양이 있었다. 그것은 인정사정없이 재가공 바구니로 던져졌다. 


리펍아트컴퍼니의 정기공연에서 ‘인간공장’을 만나면서 그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반듯하게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았는데도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못난이들. 어린 마음에도 내팽개쳐진 처지가 안타까웠을까. 왠지 아쉽고 짠했다. 춤을 보면서 그 감정이 애잔하게 올라왔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개성 있는 삶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시간이 덧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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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7월 9일 오후 6시 대구 퍼팩토리소극장 무대. ‘The Human Factory’는 공연 전 손에 쥔 팜플릿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로그램 소개에 人間工場(인간공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人間은 언어를 사용하고 사고를 전제로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 고등 동물이고, 工場은 일정한 기계를 이용하여 원료나 재료를 가공해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이 둘을 결합시킨다고?  프로그램 설명을 빌면 이렇다. 


‘사회는 소수의 행동 양식을 좇는다. 타인과 집단을 의식한 표면적 자아는 불완전한 나를 사회에 던진다. 군중심리에 이끌려 집단에 동화되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저 편승할 뿐이다.’. 


수긍이 간다. 사회 열차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애환, 누구도 진정 자유로울 수 없는 조명이다, 어쩌면 이 시대는 AI와 같이 완벽에 가까운 인간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입력되지 않은 자신만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공허한 시선으로 한 방향으로 이유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겉은 고요하나 안은 처참한 인간군상. 


한기태 리펍아트컴퍼니 대표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 것도 공연 주제가 주는 묵직함에 있다. ㈜온스테이지무브먼트 대표이사, 본아트컴퍼니 수석무용수, 제30회 SCF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민 낯’ 안무, 제6회 세종무용제 ‘10COLOR FULL’ 우수연기상 수상, 제29회 전국무용제 세종특별자치시 ‘BURN-OUT’ 주역무용수, 신나는 예술여행 선정작 창작매직컬 ‘명화배달부’ 안무감독 등등 화려한 이력이 아니더라도 그가 이 작품을 펼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짐작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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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이날 공연은 3장으로 진행되었다. 1장 파동(波動), 2장 좇다(從), 3장 잠식(蠶食)으로 꾸며졌다. 주제에 걸맞게 조목조목 의미가 있었다. 예술감독, 주무용수로 뛴 한 대표와 무용수 강태훈, 김동주, 김재연, 김형우, 박상수, 박정은, 최은조가 흠뻑 적신 땀으로 그 뜻을 풀어냈다.


한편 리펍아트컴퍼니는 2020년 창단했다. 순수무용과 실용무용 등 신체를 활용한 모든 움직임을 결합, 장르 간 간극을 좁혀 장르 경계를 초월한 움직임으로 소통하려고 세웠다. 목적은 현시대의 사회 현상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동시대적 고민을 탐구하고 고찰하는 것이다. 인간 내면 형태와 무의식을 동작으로 기록, 표현하는 것을 추구한다. 


지난 3년의 족적은 그런대로 활발하다. 2021년 ‘민 낯’으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고품질을 지향하는 공연은 언제 어느 때든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춤 생활 문화화에 앞장선다는 점이다. 관악구 청년문화존과 예술치유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움직임으로 지역민들의 힐링 호흡을 돕고 있는 것. 또한 2022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선정되어 예술인 맞춤형 교육 및 공정거래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같이’하는 테두리를 넓혀가는 중이다. 예술가와 대중들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무용 환경 확대를 위해 고민하는 리펍아트컴퍼니, 작품으로서 다양한 가치가 상생하는, 건강한 문화 형성을 이루겠다는 리펍아트컴퍼니의 10년 후 발자취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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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나비 날개 그 바람 어느새 내게까지
집단 움직이는 거대한 파동


시작은 파동이다. 신경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규칙적인 차임벨이 무대를 자극한다. 거기에 거친 음이 더해진다. 그래도 어두운 공간. 무용수가 나올 법한 곳을 응시한다. 때를 맞춰 남자가 리듬을 타고 불빛 아래 선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얼룩 바지에 검은 망사 티셔츠를 입고 검은 재킷을 걸친 모습이 강하다. 


불빛 아래 선 춤꾼은 발을 바닥에 고정한 채 팔을 부드럽게 휘젓는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추는 바람 인형을 닮았다. 힘을 적절하게 안배하면서 멀리 혹은 가까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소리의 음역대와 속도가 높고 빨라진다. 기계음과 같은 타악기의 부닥침이 치열해지면서 무용수의 몸짓이 커진다. 주파수가 뻗어가는 길을 터주기라도 하는 듯 틀을 벗어나 무대를 넓게 누빈다. 움직이는 흐름이 확대될 즈음 동작에 잔뜩 숨을 죽인다. 멈춤은 더 큰 파장을 위해 필연적인 것. 예상이 맞았다. 재킷을 걸친, 혹은 망사만 입은 6명의 무용수가 잇따라 합세한다. 춤바람이 거세다. 홀로 출 때가 폭풍전야라면 이제는 폭풍 속에 있는 느낌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만들어 낸 작은 바람이 어느새 너른 바다를 건너 내게로 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자아의 요구와 다른 사회의 흐름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슴아슴 전해진다. 파동은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이 퍼져 주위에 그 힘이 미치는 일이다. 안무가가 기획한 파동도 다르지 않다. 


‘심리적 충동이나 움직임으로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집단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작은 파동은 이내 곧 집단을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원이 된다’는 것. 문제는 이것이 곧 진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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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게 하는 힘
알맹이 없이 좇는 허망한 나

 
크든 작든, 느리든 빠르든 집단의 움직임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하나의 불빛은 미약하나 그 불빛이 여러 개 모이면 여수 밤바다의 풍경을 만든다. 꼭 긍정적인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같은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어떤 흐름을 바꿔놓는 것은 질이 아니라 양이다. 몸집이 커지면 흡수력이 커지고 그 힘은 군중심리를 흔들기 쉽다. 그 중심에 양질의 가치가 심지처럼 굳건히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주 슬픈 일이다. 너와 나, 우리 중 누군가는 암담한 현실에 놓일 수 있으므로.


의식을 잠시 내려놓는 동안 혼돈의 음악이 자취를 감춘다. 즈음하여 무대는 군무에서 수석무용수의 독무로 채워진다. 그가 자신의 오른손과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온 힘을 주고 있어도 끝내 앞으로 뻗어나가는 손. 바닥에 몸을 부딪치며 멈춰보려 하지만 감히 그치지 않는다. 꺾으려는 그의 의지, 무언가를 좇아가려는 오른손의 맹목적인 야망이 끈질기다. 혼신을 다한 움직임이 한동안 되풀이된다. 제어키 어려운 상황을 탈피하라는 신호처럼 거기에 어울리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다시 흐른다. 여기에 추종 세력이 더해진다. 둘 또는 셋, 그 이상의 무용수들이 좇는 상징이 된 손을 필두로 섬세하고, 힘이 넘치는 몸놀림을 보여준다. 이들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거듭하면서도 맹목적인 동작을 계속한다. 이어 사이비종교를 믿는 광신도처럼 절을 해댄다.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좇는. 

    
그제야 인간공장이 말하는 좇다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축에 편승하여 군중 속 고요한 파동을 좇은 나는 겉치레에 빠져 어떠한 알맹이조차 남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혹여라도 각자의 속을 어디에 두고 껍데기로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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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깨달아야 해 헛된 것 좇아가는 삶
아뿔싸! 서서히 잠식당하는 우리

 

잠식(蠶食). 누에가 뽕잎을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것처럼 점차 침입하거나 차지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어느새 뽕잎이 자취를 감추는 어이없는 위력, 대체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큰 제방이 아주 작은 구멍에 무너지는 것과 같이. 


작금에 옳고 그름, 흑백논리, 선악 등의 판단 없이 군중심리를 좇아가는 현대인이 적지 않다. 무심코 취한 진통제 펜타닐에 중독되어 살아있는 시체 좀비가 되고, 유혹을 못 이겨 음용한 마약으로 황폐한 삶도 모자라 철창 신체를 지는 사례만 봐도 그렇다. 헛된 욕망과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 그 끝을 무용수들은 온몸을 쓰며 처절하게 움직인다.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어떤 힘에 의해 잠식당하는 모양을 스스로에게 인위적인 힘을 가하면서 표현한다. 이미 계획되었지만 그러하지 않은 것처럼 의도된 흐름에 나약하게 빠지는 인간. 절대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허망한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8명의 춤꾼들이 대오를 그리면서 펼쳐나간다. 일사분란하게, 또는 분리되어 잠식되어 쓰러지는 가엾은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공장에서 영혼을 부여하지 않고 빚어낸 인간처럼 잠식의 어두운 리더에 굴복하여 결코 각성하지 못하는 분통을 관절 하나하나를 꺾는 놀림으로 보여준다.


‘그저 그 힘에 이끌려 휩쓸릴 뿐이다. 헛된 것을 좇아가는 삶으로 불완전한 인류는 서서히 잠식당할 것’. 아뿔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혜를 발현하지 않는다면 영혼이 있다 한들 그 영혼을 팔지 않고 살 거라는 걸 장담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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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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