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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써내려간 발상(發想)의 즐거움 '제2회 전국홀춤창작대전'

 

제2회 전국홀춤창작대전

2023년 6월 11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2회 전국홀춤창작대전'이 지난 6월 11일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개최되었다. 대전은 만 19~34세의 젊은 무용인들에게 안무의 기회를 제공하고 독려하기 위해 대한국민예술협회와 대구문화창작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다.

 

예선을 거쳐 총 8개 작품이 본선에 진출했으며, 주최측은 10명의 심사위원이 공정한 심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심사가 끝날 때까지 출연자 및 심사위원 정보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금년 대전에서는 출연자들의 아이디어와 재치가 빛나는 이색적(異色的)이고 혁신적(革新的)인 색채의 작품들이 다수 선보여, 무용계를 이끌어갈 신진 무용인들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흔한듯 다른 느낌, 평범한 것에 아이디어를 입히는 젊은 춤꾼들의 짤막한 단편극장같았던 춤들이 다시금 감은눈 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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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연 '비밀의 상자' ⓒ이재봉

 

비밀의 상자 / 안무 문소연

 

어두운 무대 중앙에 붉은 스툴이 비추인다. 예쁘고 반듯한 모양. 그 안엔 무엇이 들었을까? 호기심 어린 무용수의 몸짓에 내 마음을 이입해 본다.

 

작품은 판도라의 상자를 모티프로, 진실과 그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춤춘 작품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미지(未知) 혹은 무지(無知)함이 주는 두려움에 떨게된다. 갓난아기의 울음이 그렇고, 다른 행성, 다른 종(種)에 대한 끊임없는 탐험과 연구 또한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일 것이다.

 

'알지못함'으로 경계하고 머뭇거리고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 상대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아내야만 비로소 나의 안전을 꾀할 수 있는 절실한 필요성은, 호기심에서 나아가 알아내고야 마는 점령하고야 마는 목적의식을 야기시킨다. 

 

즉, 잘 알지못하는 것을 좇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고, 지금까지의 나 자신, 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 어쩌면 상대의 모든 것까지 파괴할 수도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용수는 '진실을 알아내는 것이 꼭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비밀의 상자' 속에 숨긴 듯하다. 

 

결국 그 탐스럽고 예쁜 상자의 뚜껑을 열어본 무용수가, 예상치 못한 표정으로 이내 뚜껑을 닫아버리고 마는 엔딩신. 나는 프로스트의 싯구가 떠올랐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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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승 'Last 12' ⓒ이재봉


Last 12 / 안무 이후승

 

무릎을 꿇은 무용수가 양 손을 모은채 서서히 고개를 든다. 간절함이 담긴 기도의 끝에는 이런저런 번민과 혼란스러움이 존재를 방황케 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프로그램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의 성서구절을 들어 작품의 내용을 소개한다. 때는 곧 예수가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 두려움에 동요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신(神)의 내면을 연기한 작품이다.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청해보지만 우레와 같은 사운드에 무용수는 쓰러진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신의 사명을 끝내 저버리지 않았기에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일한 신(GOD)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존재.

 

점점 빨라지는 이국적 색채의 배경음악과 절규하듯 '이머전시(emergency)'를 반복해서 외치는 사운드가 존재의 초조한 내면을 십분 그려낸다. 이것은 영광을 위해 잠시 지나가는 시련일 뿐이려니 태연해보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두려움을 숨기지 않은 신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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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예은 '목자' ⓒ이재봉


목자(牧者) / 안무 양예은

 

무릎을 꿇고 웅크린 무용수의 뒷모습이 서서히 상체를 일으킨다. 두 눈은 검은 띠에 가리워졌다. 바닥을 뒹굴며 사지를 들어 허우적대는 모습. 모르긴 해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임은 분명하다. 

 

성장의 과정에서, 조직생활의 가운데서 무언가 뜻하는대로 잘 되지를 않고 마음처럼 되지를 않을 때 우리는 앎에 목마르고 역부족임에 한탄한다. 누군가 나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주었으면, 확실한 노하우를 좀 알려주었으면 싶은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당신은 어떻게 풀어내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연약한 동물인 양에겐 보살펴 줄 목자가 필요하다고 프로그램은 작품내용을 설명하지만, 눈을 가린 띠를 걷어내고 의식적인 사운드에 몰입하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는게 좋을까?' 오히려 '나 이정도야!' 하고 한바탕 자신하는 모양새다. 신명의 타악이 부추기는 분위기에 어느새 내 어깨도 덩달아 들썩인다.

 

정말 잘 하고 싶은데 능력밖이라는 생각이 들 때,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는 주술을 거는 듯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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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혁 '아수라' ⓒ이재봉


아수라 / 안무 조동혁

 

어하 어하 어하! 어하 어하 어하! 암흑 속에서 보이스가 들린다. 심연의 곳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숨을 머금은 소리. 그 소리에 마음이 반응을 하고, 어떤 순간엔 근육이 움직인다. 어떤 때엔 두개골이, 팔꿈치가, 기분이 술렁인다. 소매틱(somatic) 움직임의 연속에서 언뜻언뜻 무용수의 감정이 엿보인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인체조각상같은 춤. 조금은 조급한 날숨의 느낌으로 사운드가 전환되자, 알싸한 기분 한 잔 들이킨 양 즉흥적으로 몸을 출렁이는 움직임이 재미있다. 내 안에 이드(id)가 춤을 춘다.

 

작품명 '아수라'는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神) 가운데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귀신.

조명이 차가운 흰빛으로 바뀌자, 움직임을 주시하던 내 시선이 덩달아 표독해진다. 무용수의 창백해진 내면에 식은땀이 묻어나는 듯 보인다. 어쩔 줄을 모르고 경련하는 몸. 그러나 곧 따뜻한 빛과 함께 차분한 허밍음이 흘러나와 그의 심신을 어루만진다. 욕망하는 이드(id)와 벗어나고픈 에고(ego)가 서로를 쫓다가 뒷덜미가 잡힌 듯이 자꾸만 넘어진다. 두 개의 내면이 부딪히는 즉흥적인 연기가 사이코(psyco)적이다. 

 

끝내 웃통을 벗고 나선 무용수. 과연 두 개의 자아는 하나로 의기투합할 수 있을까? 무용수의 발가락 마디마디에 맺힌 붉은 상처자욱이 오랜 전쟁의 폐허처럼 잔상을 남긴다. 

이 작품은 이번 경연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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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피터에게' ⓒ이재봉


피터에게 / 안무 박지현 

 

양 손이 흐느적거리는 자신의 몸을 훑어내린다. 순간적으로 분절하는 몸이 기댈 곳을 찾듯이 바닥으로 미끄러진다. 몸이 그려내는 유연하면서 연속적인 선의 곳곳에, 관절의 꺾임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연결되어 있다. 

 

제목에서 피터는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불편한 세포'를 이름한 것. 

 

매일같이 마시는 커피컵, 배달음식용기를 통해 섭취되는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이 내 몸 내 머릿 속에 쌓이고, 그것이 결국 내 몸을 야금야금 갉아먹지 않았을까? 몸에 손을 얹고 가만 느껴보니 가슴팍 깊은 곳에서 썩은 냄새가 스믈스믈한다. 스스로 내 몸에 몹쓸짓을 한 것 같아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 손끝 발끝 머리털끝까지 전력을 다해 털어본다. 아니, 난 아무렇지 않다고 짐짓 다독여본다. 

 

변이된 혹은 손상된 세포 또한 내 몸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 불편해 떼내버리고 싶지만, 한편으론 측은지심이 들어 얼러주고 더이상은 엇나지 않게 다루어야 할 것 같은 내 몸 속 피터와의 신경전. 손으로 피부로 머리로 마음으로 움직임으로, 제3의 언어로 내 몸과 나누는 6분 남짓의 대화. 작품은 마치 몸으로 써내려간 한 편의 시처럼 공감각(共感覺)적인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이번 경연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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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콕' ⓒ이재봉


콕 / 안무 박준영

 

바닥에 셔틀콕 하나가 떨어져있다. 배드민턴 채를 쥔 무용수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심히 다가와 채로 공을 건드려본다. 코르크에 깃털이 삐죽삐죽 박힌 모양새. 무용수는 공을 자신의 머리 위에 가만 올려 놓는다. 이상할 것 없는 배드민턴 공이지만, 왜 이렇게 생겼을까 가만 뜯어보다 보니, 내 어떤 모습과 닮아 있는 듯도 한 것이다.

 

작품의 타이틀 '콕'은 셔틀콕의 '콕'이면서, 타인의 머릿 속에 '콕' 박힌 나의 첫인상 또는 선입견을 상징하는 중의를 품었다. 라켓은 마치 타인의 시선인 것처럼 내 주위를 배회하고 셔틀콕을 톡톡 친다. 라켓이 콕을 날리는 방향에 따라 나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쓸려다닌다. 그것을 보고있던 나도 마치 채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으로 어수선하다. 

 

라켓의 헤드를 기타현 삼아 셔틀콕으로 튕겨 본다. 채와 콕이 이토록 조화롭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좋을텐데, 대체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대로 끌려다니기만 할텐가? 이번엔 라켓을 발로 툭툭 차고 지근지근 밟아도 본다. 그러나 콕이 채를 거부해도 코트 안으로 다시 끌려들고 마는 룰(rule).

 

드디어 무용수는 셔틀콕의 깃털을 꺾어 세우고 라켓을 던져버린다. 라켓이 쳐내는 낮고 높고 길고 짧은 다양한 포물선의 모양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자유로운 몸의 짓이, 비로소 채를 던져낸 무용수의 내면에서 갇혀있다 탈출한 듯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입견이라는 평이한 소재를 표현함에 있어 재치있는 오브제를 이용한 아이디어가 상당히 기발한 작품. 연극적 이미지가 짙은 작품으로 초반 전개가 다소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배드민턴 채와 공을 이용한 참신한 표현력에 유머러스함까지 가미하여 보는이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하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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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정 '별탈북춤' ⓒ이재봉


별탈북춤 / 안무 류현정

 

쇠소리가 리듬을 타며 울리자, 신파적인 분위기를 잔뜩 머금은 재지(jazzy) 음악이 신나게 울려펴진다. 어둠의 모퉁이에서, 색색의 화려한 롱재킷을 걸쳤지만 늘어진 얼굴의 추한 탈을 쓴 곱사등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겸연쩍다. 문둥손에 절룩거리는 다리, 어렵사리 무대 중앙으로 걸음을 옮긴 곱사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는 자신의 모습이 그만 한(恨)스러워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덜덜 떨리는 손과 다리, 겨우겨우 다시 일어선 곱사등이는 젖먹던 힘을 다해 팔을 펼치고 발을 뻗으며 춤을 춰 보이지만 마음대로 몸이 움직일 리 없다. 절망은 나의 힘. 좌절 끝에 일어서고 일어서는 곱사등이는 타악기의 빠른 장단을 타며 얼쑤절쑤 몸을 흔든다. 

작품은 오광대 중 문둥이춤을 안무자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현대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춤으로 해소해보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곱사등을 만들었던 북이 무용수의 등을 흘러내리자, 곧장 허리가 펴지고 움직임이 자유로워진다. 옳다구나! 손으로 발로 둥둥 북을 치고, 현란한 발디딤새로 장단을 탄다. 문둥이 내 손에서 언제 이런 우렁찬 북소리를 들어보았을까! 개구진 불협화음처럼 멋대로 북을 쳐대는 모습이 보는이의 격려와 공감을 부추긴다. 몸은 그렇게 북소리와 함께 하늘을 날고, 마음 속 시름도 잊혀진다. 

 

북을 치켜들고 탈을 벗어낸 무용수의 마지막 뒷모습에서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통쾌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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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아현 'allbet' ⓒ이재봉


allbet / 안무 문아현

 

'ALLBET BALLET ALLBET' 타이틀이 적힌 백스크린 앞에 무용수가 서있다. 타이틀이 사라지자 화면 가운데에 정육면체 도형이 공간을 형성하고, '기록을 시작합니다'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상기록이 시작된다. 때는 무려 300년 후, 2323년의 발레기록으로 보인다. 

 

무용수의 양 팔이 크게 펄럭펄럭 날갯짓을 몇 번 하더니 한 편의 콩트처럼 움직임을 급마무리한다. '백조의 호수' 작품이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돈키호테 중 포인' 기록이 시작된다. 키트리를 연기하는 듯 보이는 무용수의 춤에서 사뿐한 포인(pointe) 스텝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쿵쿵 바닥에 발딪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무용수는 발가락끝을 한껏 구부린 채 발바닥이 그리는 아치모양을 손으로 가리킨다. 폭소가 튀어나올 뻔한 순간이다.

 

더이상 지젤의 의상도, 파키타 음악도 없는 미래의 발레가 계속해서 기록된다. 어찌보면 발레 보이콧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은, 오늘날의 발레 원형을 탈피하여 그저 '춤추다'라는 의미를 가진 '발레(ballet)'라는 장르를 안무자의 고민으로 재탄생시킨다. 

 

치켜든 턱선이 아래로 떨어지고 앙아방(en avant)을 그리던 팔은 밖으로 밀린다. 종잡을 수 없는 심경을 읽어내리는 듯한 배경음악이 비로소 흘러들자, 무용수는 자신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허리를 몸을 옥죄던 튜튜를 벗어던진 그녀의 발레. 미래의 앙오(en haut) 알라스콩(a la second) 플렉스(flex) 앙바(en bas)가 2배속으로 기록된다. 

 

상당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기세로 이번 경연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 우리 시대 젊은 무용인들의 진취적인 사고 일면이 압축된 알집파일같은 작품이랄까! 마지막에 그녀가 발가락 끝으로 바닥에 쓰고 지운 그것을, 언젠가는 압축해제하여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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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를 겸한 여덟 출연자의 '제2회 전국홀춤창작대전' 기념촬영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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