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에서 발견하는 우리시대 미(美)에 대한 발칙한 소고 ‘제8회 세계안무축제 - 해외 안무가전’
- 오프닝 공연 '금호강 강물처럼 살자’
- 해외 안무가전 SOL Dance Company ‘TOML : Time of My Life’
제8회 세계안무축제
2022년 9월 27일, 29일 / 아양아트센터
- 주최/주관 :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회
- 공동기획 : 아양아트센터
- 글 : 서경혜
-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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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안무가들이 참가한 제8회 세계안무축제가 지난 9월 27, 29일 양일간 해외 안무가전과 국내 안무가전으로 나뉘어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열렸다.
세계안무축제는 한국 근대 무용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대구 지역에서 꽃 피웠던 현대무용의 정신을 기리고 전통을 이어가고자,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회가 2015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는 행사이다. 위원회는 박현옥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 김기전 대구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를 비롯한 지역 출신의 원로 및 중견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축제는 대구 출신의 1세대 남성 현대무용가인 故 김상규 선생과 무용평론가 故 정막 선생을 기리기 위한 김상규무용상과 정막예술상을 제정하여, 그동안 국내외 많은 안무가들에게 수여해왔다. 금년에는, 현대무용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에얄 다돈(Eyal Dadon)의 작품 'TOML : Time of My Life'가 정막예술상을 수상해 27일 '해외 안무가전에' 올랐다. 이어 29일에는 안무가 권혁의 작품 'ZERO', 이준욱의 작품 'APOCALYPSE', 한창호의 작품 'Warm body', 김보라의 작품 'Somoo'가 김상규무용상을 공동 수상하여 국내 안무가전에 올랐다.
이보다 앞선 25일에는 '대구 춤의 정신, 한국 현대무용의 발상지'라는 주제로 포럼이 개최되어, 지역 현대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프닝 공연 '금호강 강물처럼 살자' 공공의 즉흥춤축제 열려
한편, 27일 본 공연이 열리기에 앞서 아양아트센터 야외광장에서는 <파워풀 광장의 춤>이라는 타이틀로 오프닝 공연이 열렸다.
김태연무용단, 대구시티발레단, 엄선민소울무용단, 정진우무용단, 쇼타임프로젝트, 박진미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원, 드림댄스컴퍼니 등 8개 팀이 참가해, 원따나라의 아프리카 음악 즉흥연주에 맞추어 다양한 장르의 춤을 선보이며 축제의 분위기를 달구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푸른 하늘'을 말하자 무용수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과 같은 몸짓을 한다. '시원하고 자유로움'을 말하자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나뭇가지, 가을날의 일탈 등을 연상시키는 동작들로 즉흥춤을 이어나간다.
중장년층의 무용수, 젊은 무용수들이 번갈아가며 현대무용, 발레뿐만 아니라 현대적으로 해석된 한국무용, 스트리트댄스 등 다양한 춤을 선보였다. 후반부에는 연주자들의 퍼포먼스까지 가미되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고, 마지막에는 남녀노소 관객들과 각계각층에서 초청된 내빈들까지 무대에 합세하여 그야말로 '축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열광과 환희의 일대 춤판이 벌어졌다.
자, 이제 본 공연의 감상 일면을 들추어 본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해외안무가전
TOML : Time of My Life - SOL Dance Company / 안무 Eyal Dadon
밝은색의 캐주얼한 재킷과 팬츠 차림을 한 남녀 무용수가 하나의 조명을 들고 나타난다. 조명은 얼핏 보면 손전등인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투명한 플라스틱 펌프용기에 야광물질이 들어있어 빛이 나는 것이다. 꽤나 독특한 조명이다.
그것을 들고 있던 무용수는 조명을 내려놓고 맞은편의 무용수를 향해 100미터 달리기의 준비자세를 열심히 지어 보이더니, 갑자기 일어나 그저 터벅터벅 걸어서 무대 뒤로 퇴장한다. 이를 보던 맞은편 무용수의 얼굴은 황당한 표정이다.
100미터 달리기의 준비자세를 한 뒤에는 반드시 뛰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상식과 고정관념의 지배 하에서는 이 공연을 즐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지를 이 첫 장면을 통해 성공적으로 전한 셈이다. 다시 말해, 춤이 반드시 고난이도를 갖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화두이기도 했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두 명의 무용수가 더 합세하여 단순한 스텝을 선보인다. 무얼 하려는 걸까? 싶다가도, 평이하게 반복되는 동작을 보고 있자니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날 보란 듯이 소리를 질러 평이한 흐름을 깨뜨린다. 이렇게 무대의 초입은, 특별한 개연성도 없어 보이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듯 보였지만, 별 것을 별 것 아니게 만들고, 별 것 아닌 것을 공감하게 만드는 기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본 작에서 돋보였던 춤이라면, 문워크를 연상시키는 스무드 스텝으로 무용수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주를 시작한 장면이라 할 것이다. 두 사람이 종대로 스텝을 밟으며, 서로 지지 않으려고 상대를 의식하면서 스텝에 가속을 붙인다. 부드러운 발걸음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가 보는 이에게 관람의 묘미를 물씬 불어넣는 가운데, 서로 맞서고 다투면서 경쟁의 어울림을 모색하는 듯하더니, 어느새 경쟁심은 점차 누그러지고 급기야 애정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듯 보인다. 자신의 입술을 쥐어뜯고 눈과 코를 뭉개고, 얼굴을 왜곡시킴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이미지 또한 선명한 심상을 남긴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적으로 만났지만 싸움 끝에 죽음도 불사하는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는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신화처럼, 짧은 시간 안에 춤으로써 긴 서사를 담아내는 연출력이 상당히 돋보였던 장면이다.
덧붙이자면, 이것이 남성간의 스토리라는 측면에서, ‘육체적 사랑의 대상은 반드시 이성이어야 하는가?’라는 측면으로 질문은 확대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민족적 스피리추얼리티(spirituality)를 고려해본다면, 'TOML'이 던진 메시지는 가히 파격이라 할 것이다.
그들의 춤은 느림과 빠름이 교차하고 조화와 불화가 공존하면서, 감정과 기분조차도 하나의 춤일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여섯 무용수가 의미 없는 허밍을 읊조리기도 하고, 노래 두 곡을 섞어 부르며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들이 불렀던 노래는 New Look의 곡 'You & I'와 영화 '더티 댄싱'에 삽입되었던 'The Time of My Life'의 후렴구를 연결한 형태였는데, 두 노래의 가사가 교차되다 보면 '당신과 내가 함께 한다면 맹세코 내 인생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정도의, 상당히 감동적인 의미로 들리게 된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그런데, 그들은 노래 구절을 반복할수록 조화롭게 잘 부르려 노력하기보다 저마다 자기 목청껏 불러 소리는 점점 어글리해지고, 결국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소리를 지르는 형국이 되고 만다.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한 심오한 함의를 담은 노랫말을 화가 난 듯한 큰 소리로 질러댔을 때, 그 소리에 공감하고 함의를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희한한 점은 무용수들의 불협화음 끝에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내 가슴이 확 뚫리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었기에 객석에서도 박수가 쏟아졌다.
'추함이 주는 어떤 미(美)적 예술적 쾌감'이라는 역설을 마주하고 나면, 춤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잘 단련하는 과정이기보다, 몸 안에 있는 것까지, 이를테면 감정이나 생각, 사상과 같은 추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몸 안의 여러 장기들에서 나는 소리, 뼈와 근육, 체액의 꿈틀거리는 감각, 생체신호 등 신체(身體)의 본질을 모두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박수 직후에는 갑작스런 침묵과 부동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관객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예측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그들. 이 무대에선 예측이란 불필요하고, 관념은 투명한 펌프용기 안에 든 액체물질처럼 규정되지 않은 형태로 이리저리 튈 수 있어야 한다. 도입부의 독특한 조명! 푸시를 하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마음줄기와 같은 야광조명처럼 말이다.
SOL Dance Company _TOML_ 안무 Eyal Dadon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엔딩씬, 하나였던 야광조명은 어느덧 무용수의 수만큼인 여섯 개로 확장되고, 도입부에서처럼 100미터 달리기를 향한 도약의 출발점들이 된다. 무대에는 어디로 쏘일지 모르는 조명만이 남고 무용수들은 뒷걸음으로 등장하며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뒤집어 입는다. 뒤집어 입은 재킷은 무지가 아닌 화려하고 복잡한 패턴으로 뒤덮여 있어, 각자의 마음의 색깔을 예고하며 아직 다 풀어놓지 못한 춤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듯 보인다.
그리고, 소리 없이 중얼거리는 과장된 입 모양, 그들은 아직도 ‘Time of My Life’를 계속해서 부르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또 다른 노래일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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