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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각자의 언어로 두드리는 축제의 문 '대구춤페스티벌 2024'

 

2024 대구춤페스티벌

2024년 9월 7일 (토) 오후 7시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9월 7일,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로비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팜플렛을 보며 기대되는 공연을 말하기도 하고, 지인의 얼굴을 찾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절기상 가을의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기는 날씨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의 긴장감, 관객들의 기대감으로 한껏 절정에 다다른 듯했다.

 

'대구춤페스티벌'은 춤의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고자 기획되어, 지난 31년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후 7시, 종이 울리고 객석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비로소 축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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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날개의 커다란 바람 '푸른 나비'  

- 안무 김나영

- 출연 박민우, 김나영


무대의 끝과 끝에서 슬며시 무대를 밟고 반대쪽으로 사라진다. 세상을 엿보고는, 비행을 준비한다. 우아한 날갯짓으로 무대를 누비는 두 사람은 조심조심 스테이지를 밟는다. 그들의 여행은 낭만과 희망으로 가득 차 여유롭게 무대를 누빈다. 가볍게 이는 바람을 타고 비행을 즐긴다. 가벼운 몸짓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둘의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자유분방하게 비행할 뿐이다. 날개를 자처하는 그들의 팔은 우아하게 날갯짓한다. 나풀거리는 푸른색의 치마폭과 소매를 각자의 의상에 나눠 담고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합쳐졌을 때의 시너지는 자유로운 나비 한 쌍을 보는 것 같다. 자유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고, 끊임없이 희망을 부른다. 꽃 대신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세상을 유람한다. 


나비의 날갯짓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생존의 수단이다. 그 얇은 날개에 목숨과 기쁨, 성장, 사랑이 존재한다. 한 쌍의 나비는 자유를 꿈꾼다. 함께 하는 여행으로 세상을 누비며 새로 경험을 깨닫고 낭만을 향유한다. 바람에 휘청이고 비가 오면 날지 못하지만, 나비의 여행은 언제나 희망찰 것이다. 김나영 발레단은 "자유를 찾아서!"라는 슬로건으로 작품 '푸른 나비'를 창작했다. 자유, 나비는 날씨와 환경에 구속받지 않은 한 날개가 닿는 곳까지 비행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나비의 생(生) 이기 때문이다. 푸른색은 '새로운 도전', '자유'를 의미하여 희망을 상징하는 색으로 쓰인다. 이들이 표현하고자 한 푸른 나비는 자유를 찾기 위한 일종의 심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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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그래프, 그리고 현재 '변곡의 시점'

- 안무 엄선민

- 출연 김신오, 김윤서, 박선영, 박소현, 이서현, 이혜인


느릿하게 열을 맞춰 걸어들어오는 무용수들은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면서도 질서정연하다. 이어 극의 진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가 펼쳐졌다. 조용하게 장단에 리듬을 씌운 소리에 맞춰 움직임이 생겨난다. 밖으로 방출되던 에너지가 다시 그들의 군무 안으로 스며들어 무대 안팎으로 고른 에너지가 분포된다. 장단이 사라지기 직전, 무대에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조명과 얕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가 거세진다. 동시에 무대는 황무지에서 물가로 변하고, 그 위에서 기도하고 몸을 정돈한다. 해녀가 바다에 나서기 전, 일종의 제사 의식처럼 느껴진다. 템포가 바뀌고, 조명이 바뀌고, 움직임의 규칙이 바뀐다. 질서정연하면서 여유를 만끽하던 무대는 자유롭고 날것의 느낌이 가득해졌다. 역동적이고 동작이 커진 움직임에 비로소 깨닫는다. 바로 여기가, 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변곡이다. 


이 무대를 보고 다시 곱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이다. 시끌벅적한 해운대의 바다도 아니고,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온전히 파도 소리만 감상할 수 있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쏟아붓지 않고 조금씩 차오르는 옅은 파도처럼 그들은 바뀐다. 무대의 그래프를 그리라고 한다면 명확히 바뀌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변곡의 시점'이다. 한 사람의 삶은 아직 삶의 끝에 다다르지 않은 우리의 시선에서 보기엔 너무 길어서 막연하게 줄을 그어본다. 과거에는 깊숙이 아래로 이어지다가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선이다. 그 사이엔 현재가 있다. 바닥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그 선의 중간에 지금이 있다. 삶을 멀찍이서 다시 바라본다. 커다란 그래프에서 눈에 띄는 단 한 지점, 변곡은 현재에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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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虛), 만(滿) '조각분의/1'

- 안무 최동현

- 출연 권준철, 정성준, 최동현


꼭 남자의 과거를 목도한 것만 같다. 과거의 모습을 회상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두 소년이 등장하며 남자의 회고는 막을 올린다. 조명으로 분리된 두 공간, 자켓을 벗어 떨어뜨리는 소년들의 옆에 거울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남자가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구현하는 듯, 둘은 격렬히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과거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두 소년을 보며 컵을 쌓던 남자의 모습처럼, 과거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하나의 서사가 완성된다. 완성된 과거를 지켜보던 남자는 이내 소년들과 위치를 뒤바꾼다. 같은 조명 아래, 사람만 달라졌는데도 활기 넘치던 공간이 쓸쓸함으로 가득 찼다. 남자는 자신의 머리 위로 빈 페트병을 쏟아붓는다. 페트병에 조명 빛이 부딪쳐 무대 가득 빛의 파편이 산란하고, 남자의 발에 채 더 산산이 부서진다. 과거의 장면을 깨부수려는 듯, 남자의 걸음은 고통과 아픔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 


이 무대에는 비어있는 것들이 많다. 비어있는 컵, 비어있는 페트병, 비어있는 의자, 비어있는 마음. 쌓아지고, 쏟아지고, 잠시 머무르고, 채워지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이 비어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불균형을 이루는 심신 사이에서 남자는 불안해진다. 공허한 마음은 과거의 잔상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에 머무를 뿐이다. 거울처럼 그들을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그들을 외면한다. 등을 돌리고, 고개를 숙인다. 또다시 평안에 이르지 못한다. 무엇이 그를 괴롭게 하는지 주어진 움직임을 가지고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남자가 다시 그 장면을 목도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는 천천히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거꾸로 쌓아진 컵, 빛만을 머금은 페트병, 여전히 비어있는 의자, 의지를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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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의 파랑, 물방울들의 환상 'Rhapsody in blue'

- 안무 이유선

- 출연 이유선, 김민선, 모지연, 오은빈, 신수민, 황지은


파란 조명으로 물든 푸른 무대 위로 파란색의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나열한다. 파란색의 스테이지가 물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아 싱크로나이즈드가 연상되기도 한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힘찬 동작들이 규칙적으로 이어지고, 중앙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동선들이 물방울 같기도 하다. 턴을 돌 때 파란색의 치맛자락이 휘날려 물결의 파랑이 일고, 사뿐사뿐 걸으며 푸른 수면 위를 돌아다니며 물을 희롱한다. 무대 가득 시원한 바다향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 때쯤, 무대는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우아한 독무에 이은 조명의 변화로 한껏 시원했던 무대가 하나의 환상을 꿈꾼다. 파란색으로 가득 찼던 공연장이 순식간에 다른 색을 입으며 한순간 환상으로 뒤바뀐다. 나른한 음악에 우아한 움직임이 더해져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공연은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다소 자유로운 형식을 갖춘 환상적이고 기교적인 악곡을 '광시곡', '랩소디'라고 한다. 이 무대의 제목인 <Rhapsody in blue>는 미국의 작곡가 조지거슈윈의 클래식 음악에 재즈의 요소가 포함된 광시곡으로, 공연은 제목에 아주 충실하게 창작되었다. 의상부터 조명까지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무대는 광시곡 개념의 키워드와 객관적인 색채까지 정확히 드러낸다. 자유와 환상, 그리고 푸른색의 키워드를 정확히 보여주어 선정한 음악과 무대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여타의 이야기 없이 순수하게 움직임의 미(美)에 집중할 수 있어 '발레'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을 직관적으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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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낙원, 생명의 갈구 '에덴 Ver2.'

- 안무, 춤, 춤작가 김정미

- 게스트 김현태, 천기랑 


무대 한가운데 한 송이 거대한 꽃이 있다. 꽃은 만개하려는 듯, 좌우로 움직이며 태동한다. 움찔거리는 한 송이 꽃 위로 천천히 길이 열리고, 아주 작은 틈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꽃은 길의 바깥을 향해 맹렬하게 움직인다. 마침내 피어난 꽃은 정적이면서도 생명에 대한 욕망이 크게 드러난다. 굶주린 맹수처럼 날쌔고, 본능에 사로잡힌 것처럼 모든 움직임에 힘을 쏟아붓는다.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자 하는 몸짓이 고집스럽게 느껴진다. 뒤에 꽃을 달고 생명에 대한 욕망을 한가득 풀어놓더니 종막에는 자신의 몸에서 '생명'의 상징을 떼어놓는다. 그러고는 높이 던져올려 자신의 품에 안아 더 높은 곳을 갈망한다. 자기 생이 탐스럽게 발아할 수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으로.


'에덴(Eden)'. 낙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자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김정미 무용수는 에덴이 기쁨, 아름다움, 쾌락이라고 칭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에덴이 다르듯이, 이 공연이 치닫고자 하는 에덴은 '춤'이다.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낙원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기 자신이 있다. 아름다움을 위해, 자유를 위해, 생명을 노래하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움직인다. 생명은 고유하다. 김정미의 춤 또한 고유하다. 정보를 담은 언어가 아닌 움직임이라는 소리 없는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세계, 글자로 가득한 삶에서 몸짓으로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다. 그녀의 노력은 '에덴'을 통해 발아하였고, 끊임없는 발전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녀가 표현하는 무언의 언어가 세상을 힘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각자의 에덴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 소통의 가장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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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경계의 선 '영원한 시간의 윤곽'

- 안무 김교열

- 출연 김교열, 최서아, 이태훈, 한소희, 권윤형, 김찬솔, 김초연, 도희주, 오가영


하늘에서 부유하는 여자의 곁으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시곗바늘들이 나타난다. 아무런 감정이 없음에도 공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움직임이 크고 적대적으로 느껴진다. 소파라는 상징물로 인해 이 공간은 '집'으로 분한다. 아늑함과 편안함을 제공해야 할 공간은 시간의 흐름과 유한한 인간의 생으로 인해 슬픔과 울분만이 남은 장소가 되었다. 시계의 탈을 쓰고 앉아 있는 남자는 하염없이 책장을 넘기고, 그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이 시각적으로 표현되고, 삶의 너머로 끌려간 여자 또한 껍데기만 남았다. 남자는 이미 껍데기뿐인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약간은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그녀가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영원한 안식을 제공한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은 그의 사랑을 전소시킨다. 아무런 감정 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것, 책을 넘기던 시계가 남자에게 자신과 같은 시계를 씌워준다. 사랑의 수명이 다한 남자는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개념으로써의 '시간'이 되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은 유한하다. 그러나 생명의 기한과 달리 남자의 사랑은 그들에게 할당된 시간을 넘어 존재한다. '영원'은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이 무대에서 보인 남자의 사랑처럼 말이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옆에서 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시간은 시계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형태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물의 수명으로, 계절의 변화로,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로 미세하게나마 그 윤곽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무대의 제목인 '영원한 시간'의 윤곽은 어디인가. 한 사람의 생명이 다하고 한 사람의 사랑이 그녀의 생명을 능가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영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는 시계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은 한 사람의 끝에서 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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