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 놓다, 가리다, 보여주다 ‘루카스크루 <손>'
제40회 달스타2030예술극장
루카스크루 '손'
2024년 6월 29일 (토) 오후 6시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 주말, 장마의 초입에서 달성예술극장의 문이 열렸다. 6월 29일, 극장에서는 루카스크루의 세 번째 기획 공연 <손>이 상연되었다. 손은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사회는 꾸준히 변화해 왔지만, 지금까지도 손은 사회에서 연결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에 관해 현대무용 작품 <손>은 청년실업에 대한 개인의 문제와 원인, 이후에 발생하는 현상에 관해 논하고 있다.
이 공연은 '손'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뗏목', '10칸씩 올라 100층까지', '손을 봤다', '퇴보', '파란비', 'Anima'까지 총 6개의 작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에피소드를 연결하는 연결점은 분명하지만,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각자의 에피소드들이 뭉쳐 하나의 주제인 '손'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야기의 연결점에 무대가 비어있지 않아 각 이야기의 말미에는 늘 다음 이야기의 구성원이 존재하며 이전 이야기의 마무리에 함께 한다. 이로 하여금 각자 다른 6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이야기에 속해있다는 연속성을 암시한다.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하기 전, 음악 소리와 함께 루카스크루의 무대영상과 연습 영상을 편집한 하나의 동영상이 재생된다. 제 기량을 뽐내며 무대 위를 마음껏 누비는 사람들은, 연습실에서 끝도 없이 떨어지는 땀과 함께 완성된 작품이었다. 10분 정도의 영상이 상영되면 관객들은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영상을 응시한다. 그들의 땀과 노력,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본다. 영상이 꺼지면 동시에 객석 등도 꺼진다. 극장이 어둠으로 들이찬다. 그들의 열정을 두 눈으로 직접 느껴 볼 차례다.
# 뗏목
6명의 무용수가 육감적으로 움직인다. 동작이 크고 원시적인 느낌을 반복적으로 주어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인간의 이성이 아닌, 욕망을 좇아 원초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의 첫 스토리인 ‘뗏목’은 어디로든 향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 떠내려가기도 한다. 서로의 몸이 엉키는 동시에 배경으로 깔리는 소리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도 관객의 정신이 분산되지 않게 강렬한 자극을 준다. 혼잡하게 엉켜 드는 생각을 붙드는 건 무용수들의 반복되는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게 시선을 붙든다.
# 10칸씩 올라 100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세 사람은 경쟁하는 것처럼 서로 내치기를 반복하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는다. 위를 향하면서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세 사람의 앙상블은 기묘하게 조화롭다. 자칫하면 굴러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신뢰라는 무형의 연결이 서로를 붙들어 더 높이, 훌쩍 뛰어오른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뿐, 두 명의 무용수가 남은 한 사람의 등에 업힌 채 축 늘어진다. 두 사람을 등에 업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 길은, 내리막길이 아니다. 줄곧 바라왔던 정상을 향해, 두 사람을 업은 한 사람이 올라간다. 외로움 대신 벅찬 동행을 선택한 그의 100층엔, 무엇이 있을까.
# 손을 봤다
귀로 날카롭게 꽂히는 현악기 소리와 함께 몸이 께름칙하게 움직인다. 칼날같이 서늘하고 날 선 이미지가 연상되는 동작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길을 잃은 망망대해에서 시작된다. 무대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원초적이며 폭력적이다. 손바닥 안의 지도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길을 알려 주더라도, 그것은 운에 기반한 것이다. 조난된 사람의 머릿속을 표현한 것처럼 음악은 기계 소리를 포함하여 더욱 복잡해지고, 움직임은 갈수록 거리낌 없어지지만, 특유의 날카로움은 잃지 않은 채 진행된다. 나는, 당신은, 그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어지럽고 복잡한 생각처럼 그 어떤 방향도 알 수 없다. 물결이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길을 잃었다.
# 퇴보
무대 위 무용수가 자아 없이 고꾸라진다. 꼭 인형처럼 다른 사람의 조종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한다. 여러 가지 음향이 천천히 혼합되어 무대를 고조시킨다. 무대의 리듬감이 시시때때로 달라져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집중을 무용수들의 움직임으로 묶어둔다. 무용수는 남의 손에서 재조립된다. 그 과정에서 의지를 상실하고, 인간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인 생각하기를 미뤄둔다.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절로 움직인다. 그래서 나태해진다. 나태의 끝에 이를지라도 걱정은 없다. 나의 의지가 없어도 살아있을 수 있으니. 나태해진 무용수는 어느 순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 앞으로 나아갈 때, 계속 뒤에 머물러 있다. 생각하지 않기에, 전진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나태함은 ‘퇴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파란 비
푸른빛의 조명이 부드럽게 공간을 감싸고, 검은색의 바닥을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무용수들이 꼭 어린이로 분한 것처럼 동심이 마구 샘솟는다. 움직임은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이야기의 서사에 따라 유연하게 흘러간다. 푸른 조명과 푸른 끼가 섞인 백색의 조명을 사용하여 ‘푸른 비’라는 무대가 꼭 들어맞는다. 두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바다 너머의 세상을 확대해 보기도 하고, 피리를 불면서 낭만을 꿈꿔보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를 만끽한다. 빗속에서 춤을 추고, 시원한 물줄기를 온몸을 즐긴다. 그 때문에 방향이 없는 이 바다가 무섭지 않다. 그들은 현재의 위치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 Anima
온 시야를 가득 채우는 빛의 섬광, 그 아래에서 일으키는 거센 발작. 하얗고 커다란 꽃다발은 사람의 얼굴을 가리며 그 사람인 양 인격을 가진 것만 같다. 하얀 꽃은 격정적인 무대 위에 기이한 차분함을 가져다준다. 꽃은 조용하게 흔들리지만은 않는다. 흔들릴 때마다 온 사방으로 하얀 가루를 날리며 자신의 흔적을 아로새긴다. 치는 대로 치이고, 다시 온몸을 상대에게 부딪히며 사방으로 버티는 움직임은 꼭 진자운동을 닮았다. 꽃을 한 송이 물고 나오는 것도, 커다란 꽃 한 송이로 얼굴을 대신하는 것도 사회로부터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는 욕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거대한 사회에서 혼자로 존재할 수 있는가. 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쓰러진 남성을 부축한다.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비로소, 꽃에서 벗어난 얼굴은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간다.
루카스크루는 2021년 설립되어 형상화한 움직임에 안무자의 구조화와 무용수의 질감을 더해 움직임 언어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는 집단이다. 지난 3년간 3회의 기획 공연을 주관하였으며, <Mia Maria> 2024, <손을 봤다> 2023, <We need> 2022를 대표작으로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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