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빚어낸 도약의 무대 '제54회 경북예고무용제'
제54회 경북예술고등학교 정기무용발표회
2024년 9월 25일 (수) 오후 7시 / 수성아트피아 대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9월 25일, 한창 뜨거웠던 열기가 가시고 조금씩 가을이 다가오던 날에 수성아트피아는 학생들의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땀 흘렸던 지난날이 무대 위로 천천히 나열되었다.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까지 총 세 개의 무대로 이루어진 공연은 대구 무용계의 미래를 표방했다. '학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열정을 녹여내어 만든 작품들은 흔히 보기 어려워, 공연장은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한창 소란스럽던 객석이 어두워지고, 소음이 줄어들자, 사회자가 나와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제54회 경북예고무용제'의 막이 올랐다.
발레
환상의 경계, 9월의 성탄절 '발레 - 호두까기 인형'
이 무대는 도입부터 관객을 동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쓰러진 아이를 마법사가 일으켜 세우며, 관객은 그 둘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어진 장면의 장난감들은 캐릭터성이 짙은 의상을 입고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으로 놀이공원의 퍼레이드를 연상케 한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인상을 던져놓고, 이야기는 주역들의 사랑을 조명한다.
달콤하고 꿈같은 감정선이 그려지지만, 그 만남은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무대 위에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한다. 푸른 조명의 반사로 인해 얼어붙은 호수 같아진 스테이지 위를 미끄러지는 그들은,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듯 시린 분위기 또한 조성해 낸다.
복선을 따라가듯, 행복하기만 했던 사랑은 두 인물이 가진 특성과 다른 성향을 각자의 독무로 표현하며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자석처럼 서로에게 이끌리고,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완전한 기쁨에 도취한다.
20분으로 재편집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부가적인 설명 없이도 이 작품의 메인 테마를 알아차릴 수 있게 주제 의식이 확고했다. 빠르고 간결한 장면전환으로, 현실에서 환상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첫 부분에 삽입하여 관객들의 의식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그로 인해 작품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
무대 뒤편에 위치한 큰 트리, 아치에 나무모형, 눈 내리는 영상 효과 등으로 때 이른 성탄절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시각적 재미 요소로도 작동했다. 9월 말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학생들이 전하는 사랑과 행복을 가득 담은 채 마무리되었다.
현대무용
조명, 무대, 놀이, 춤 '현대무용 - PLAY GROUND'
떠들썩하고 산만한 학창 시절의 쉬는 시간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무질서하고 혼란하지만, 그 자체로 신나고 우정과 갈등이 반복되는 장소였다. 각자의 놀이는 진행될수록 집단에서는 무언의 약속처럼 규칙이 쌓인다. 그것은 학생들을 방목하면서 적정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본분을 다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놀던 개인이 하나의 놀이로 합쳐지는 순간에 단체 행위가 시작된다. 아주 익숙한 추억의 놀이는 무대 위에서 예술적 행위로 변모하고 정적과 움직임이 매 순간 반복된다. 술래가 정해지고, 집단은 해산된다. 술래는 무대에 남아 자신에게 배정된 놀이를 시작한다.
객관적인 '놀이'의 틀에서 벗어나 전진하는 때에 음악과 함께 분위기가 급변한다. 천진난만하고 엉뚱하던 무대가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장르성을 띤다. 상황극처럼 흘러가는 분위기는 아까보다 더 정교해진다. 그에 따라 움직임의 밀도는 더 높아지고, 무채색이었던 무대는 패턴의 색을 입어 역동성을 띤다. 위와 아래가 다르고,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따라 평평했던 무대가 난파된 배처럼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제자리를 찾아간다. 한 구심점을 따라 미친 듯이 달려가고 쓰러지는 모습은 하나의 명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놀면서도 '사람'처럼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무대 위에 올라 '놀이'를 구현해 낸 얼굴들은 'PLAY GROUND'라는 타이틀을 따라 즐기는 듯이, 각자의 얼굴이 즐거운 성취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열정과 노력에 더해, 정말 자기 일이자 선택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매일을 지탱할 원동력을 느낀다. 삶을 이어 나가는 원동력은 모두가 다르다. 공연에서 춤을 즐기고 사랑하는 모습은 각자가 짊어진 '선택'의 무게를 덜어주고 도약을 선보인다. 학생들의 놀이터가 녹슨 철 냄새와 건조한 모래가 가득한 일상의 공터가 아닌, 조명이 빛나는 무대 위인 것처럼. 우리의 놀이터가 팍팍한 회색 건물 속 의자 하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한국무용
탄생부터 죽음까지 타오르는 걸음 '한국무용 - 디딤의 미학'
작은 것에서부터 서서히 커진다. 움직임의 패턴은 일정하지만 다른 동작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공연은 '전형적임'을 벗어던졌다. 하이얀 고깔과 기다란 철릭은 '한복'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에서 탈피한다.
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전반적으로 의식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이 가진 뜨거운 생명을 불태우며 하늘에, 신에게 염원을 빈다. 발바닥의 모든 면이 땅을 딛고, 힘껏 박찬다. 군집 된 사람들이 일제히 선보이는 움직임은 무거운 압도로 다가와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개인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작은 발걸음으로 유희를 즐길 수도 있고, 갈대로 분해 마음껏 흔들릴 수도 있다. 얇은 줄기에 뻗어 나온 뿌리는 나부끼는 바람에도 머리를 흔들기만 할 뿐, 고집스럽게 흙을 움켜쥔다. 자로 잰 듯한 타이밍에 그들이 고수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위해 무대의 밀도를 정교하게 조절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듯이, 단체로 움직이며 뿌리를 강조하는 모습은 '인간'이라는 집단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더 빠르게, 미친 듯이, 역동적인 움직임에서 힘이 터져 나온다. 한순간에 타오르는 에너지가 시원한 해방을 맞이했을 때, 관객들은 박수를 참지 않는다. 박수 소리, 환호성, 아직 여운이 남은 잔향 소리가 극장을 메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규칙을 지키며 생명의 탄생과 그를 머금고 있는 대지에 대해 말한다. 시작과 끝, 중간을 연결해 주는 디딤으로 포용의 땅을 이야기한다. 무리 지은 대열의 반복되는 재배열은 광활한 대지를 떠오르게 하며, '압도'라는 단어를 관객의 앞에 드러낸다.
거대한 에너지가 시각적으로 보이며 머리가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감각들이 먼저 반응한다. 무용수들은 신명에 다다르고, 관객들은 그 신명에 동화된다. 미약한 태동에서 죽음까지 끊임없이 발을 구른다. 한 행위의 힘과 방향으로 만물의 시작과 끝을 드러내고자 한 것, 이 무대에서 말하고자 하는 '디딤의 미학'이다.
세 무대는 저마다 인고한 연마의 시간을 더불어 발산한 무대였다. 20-30명이 20분가량의 무대를 가꾸고 꾸리는 만큼, 갈등과 수용의 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10대는 부딪히며 성장한다. 자신의 의견을 내뱉고, 그것이 깨지든 받아들여지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찾아간다.
하나의 스토리를 각색하여, 창조하여 선보인 이번 공연이 사회로 나가는 데 있어 도약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 오래도록 명맥을 이어온 경북예고 무용제가 또 한 번 학생들의 성과를 내보였고, 그 아래서 반짝이는 얼굴들이 환히 미소 지었다. 긴장으로 시작되었던 공연은 해방과 성취로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