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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내면의 무궁한 자유 엿보기 'NEW MODERN PEOPLE' The 3rd. 정진우무용단

 

제33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정진우무용단의 New Modern People'

2022년 12월 19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현대'라는 시대성의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이라면, 무엇보다 전통적인 것으로부터의 거부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일 것이다. 현대무용 역시도 기존의 발레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춤을 추구하게 되면서 생겨난 것이라 하지 않는가. 

 

늘 그래왔던 것으로부터의 탈피란 이상(異常)하기 마련이고 때로는 파격을 몰고 온다. 그래서 '현대'라는 말이 붙은 예술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관객 각자의 식견(識見)과 감수성, 감상환경 등이 관여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 표현하는 사람마다, 경험하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현대예술을 감상하는 묘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새로운 현대인(NEW MODERN PEOPLE)'이라는 기치를 내 건 무용인들이 있다. 모던(MODERN)으로는 부족해 NEW, NEO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의 춤은, 나에게 어떤 명료함으로 다가올지, 난해함으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지난 12월 19일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린 정진우무용단의 뉴모던피플 세 번째 공연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의 기록이다. '질주', '나에게로 가는 길', '더 깊은 곳, 침묵', 'dating abuse episode', 네 작품이 선보인 이번 무대는 대구문화창작소와 스테이지줌이 공동 주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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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 안무 조동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질주 / 안무 조동혁

 

벌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서늘한 나무그늘 아래 있는 기분. 무대 위엔 두 팔과 무릎으로 바닥에 엎딘 무리가 있다. 무리는 한쪽 팔과 대각선 다리를 바닥에 붙인 채 느리게 움직인다. 움직임 끝에 하나씩 몸을 떨다 바닥에 얼굴을 묻는다. 그 모습은 마치 벌레가 알을 낳는 모습 같기도 하고,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뭇 벌레 중에서도 매미가 떠오른다. 나무 위에서 태어났지만 6~7년이라는 긴 세월을 땅속에서 자라, 다시 나무 위에서 우화(羽化)한다는 매미. 무용수들의 춤은 어둠 속에서 1년, 2년, 3년... 나무뿌리의 즙을 빨아 먹으며 성장하는 유충의 모습을 연기하는 듯 기고, 걷고, 뛰기 시작한다. 

 

땅속에서는 오로지 땅 위로 나가기 위해 성장에 매진하고, 땅 위로 나와서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그러나 어렵사리 성충이 된 매미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종족번식을 위해 단 2주 동안 우는 것뿐. 일생의 짝을 찾기 위해 도시의 소음보다 더 크게, 필사적으로 울어야 한다. 암컷을 꾀기 위한 매력보다는 차라리 처절함을 담은 매미의 노래처럼, 마지막 남은 무용수는 숨죽여 엎딘 무리 사이를 헤집으며 분주히 몸부림친다.

 

뉴모던피플의 '질주'.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하는 짧고 강렬한 생에의 질주처럼, 마음대로 폭발하고 싶다가도 문득문득 정돈된 이성이 드러나는 듯 멈추고 고민한다. 여섯이 삼삼오오 동작을 나누며 추는 군무가, 매미의 치열한 한살이 질주를 빗댄 듯, 생의 여운을 데자뷰처럼 연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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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가는 길' 안무 백선화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나에게로 가는 길 / 안무 백선화

 

바닥을 짚은 손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무대 중앙에 다다르자 발아래서 어렵사리 두 손을 빼내더니 야무지게 훑어낸다. 내 발자국을 온전치 못하게 하는 손은, 곧 뭇 사람들의 시선의 결집체 같다. 

 

이따금씩, 군중 속에서 유유히 섞여 살아가는 내 모습에 회의가 들기 시작할 때, 우리는 타성에 젖은 시선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무용수 역시 가짜 같은 내 모습을 벗어나고픈 욕구가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인 듯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고 떨어낸다. 감정을 읽어내는 움직임이 철저히 계산된 것처럼 동작의 이어짐과 맺고 끊음이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 길은 소원하고, 이것이 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결국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환한 빛을 마주하게 되니, 그제서야 내 뒤에는 키보다 큰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진다. 음악의 분위기도 전환되면서 묘한 긴장감을 풍긴다. 나를 비춘 빛은 사람들의 시선인가, 내 안의 목소리인가! 

 

그 어떤 발자국이나 그림자도 거부하고 싶었던 나. 몸에서 빛을 떼어내려 하지만, 빛을 마주한 후의 무용수의 움직임은 한결 가벼워진 듯 발이 허공을 그린다. 다시금 손에서 무언가를 벗겨내고, 손을 빠르게 조수고, 또다시 양 손바닥 위로 발걸음을 옮기며 세상에 섞인다. 마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내 모습 역시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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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 침묵' 안무 남희경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더 깊은 곳, 침묵 / 안무 남희경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선율이 흐른다. 바닥에 앉은 두 무용수가 팔로 다리로 춤춰 보이는 동작은,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피곤한 일상을 연상시킨다. 느림과 빠름이 교차되는 춤이 주는 시각적 심상은, 음악의 차분한 화려함이 주는 청각적 심상과 조화를 이룬다. 

 

도시의 속도는 소음을 낳고, 소음은 공해가 된다. 도시의 공해를 끊임없이 가중시키는 내 목소리와 주변의 목소리. 그 소리 안에는 인간의 욕심이 도사린다. 그렇지만 때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최고의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듯, 두 무용수는 서로를 부둥키고 손을 들어 심장의 박동을 연기한다.

 

오차가 없는 자동인형의 춤을 보는 듯한 2인무는,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고, 티격태격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완벽한 호흡을 선보인다. 


음악이 멈추고, 내 속에 살아 숨쉬는 심장의 박동은 고요함 속에서 더 커진다.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침묵은 퇴보이고 도태됨을 의미할 수 있지만, 고요함 이후의 두 무용수의 춤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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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ing abuse episode' 안무 박수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dating abuse episode / 안무 박수열

 

현을 뜯는 사운드에 사연이 담긴 듯하다. 누워있는 남자무용수 위로 여자무용수가 쓰러지며 한데 엉킨다. 엉킨 사이로 빠져나오려 하는 여자의 몸짓이 마치 성폭행을 당하는 이의 절박한 외침처럼 보인다.

 

폭력은 갈등과 불화를 낳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이에게 폭력이 되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dating abuse). 남자에게 끌려가는 여자, 여자에게 휘둘리는 남자, 여성의 페로몬(pheromone)이란 그 자체로 남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 남자는 저항을 받으며 바닥을 기고 구른다. 여자의 꽁무니를 향해서.

 

남자와 여자. 그들의 사랑은 무엇을 향하는 것일까? 서로가 사랑을 하지만, 이면에는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달라 보인다. 그러기에 여자와 남자는 은연중에 의도치 않은 폭력을 서로에게 행사한다. 휘둘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나 오랜 갈등은 서로를 지치게 하고, 급기야 누군가에게서는 사랑의 감정이 죽어간다. 그녀를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심폐소생을 시도해보지만 연인 사이에는 죽음의 냄새가 자욱하다. 

 

사소한 밀당의 관계를 넘어 극단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데이트 폭력을 소재로 한 춤에서는, 남녀 각자의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각적인 동작과, 관계에 대한 고찰이 상당히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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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및 관계자 단체사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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