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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멋에 스민 명맥 슈룹 펼쳐지다
- 해학까지 살린 2022 대구전통춤의 밤

 

2022 대구 전통춤의 밤 '흥, 멋에 스미다'

2022년 12월 3일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김리윤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장르가 어떠하던 명맥을 잇는 자리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묵직한 존경심이 앞선다. 역사와 뒹굴며 날것을 실험하고 알짜배기를 솎아낸, 그리하여 어른이 되어 보여주는 익은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3일 저녁 7시 30분 열린 ‘2022 대구전통춤의 밤’ 또한 경외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존경심은 당연한 무장이고 여기에 두려움을 장착했다. 그것은 춤을 이을 초심자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망하며 참석한 까닭이다. 스승의 공연을 보기 위해 머리를 쪽으로 단정히 빗어 넘긴 10대들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긴 해도 그대들의 슈룹(우산)이 되어 주길 원하는 스승의 공연이 금빛처럼 빛나길 희망했을 것이다. 


“전통춤 속에 깃든 특유의 ‘흥’과 ‘멋’인 선조의 얼을 담고, 긴 세월 동안 어려운 전승 환경 속에서도 원형적 형태가 지속 유지될 수 있도록 그 명맥을 이어가고 춤의 정신으로 지켜내고 있는 대구춤꾼들의 춤을 기억해 달라.”

축제를 마련한 변인숙 (사)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장의 외침 또한 어려운 길이지만 기꺼이 걷고 있는 명무들의 장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들의 손을 잡는 전승자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깔려 있다.   


“전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까지 닿아있는 시간의 산물이다. 희로애락을 춤으로 달래고 즐겼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대변한 전통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창환 (사)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장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 전통춤 문화가 활성화되기를 바란 것. 

 

전승이니 만큼 이날 공연은 전통춤 류파전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7작품이 맥을 이어온 소중한 가치를 품고 한을 기반으로 기품과 절제된 화려함을 부채처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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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희 '한영숙-이애주류 승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서러운 삶의 큐빅 장삼으로 날리고
승무 한영숙-이애주류 주연희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 삶. 그 속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큐빅처럼 합성되어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명제 아래 허무의 서러움은 순간순간 찾아온다. 이를 아는 듯 춤꾼 주연희는 하얀 고깔을 쓰고 하얀 장삼을 허공에 훨훨 날리며 무대 위에 회한의 글을 써 내려간다. 

 

붓이 된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틈과 틈마저 허투루 두지 않고 봄꽃을 쓰고 가을 낙엽을 그린다. 장삼으로 찰나를 메우고 비워낸다. 몸짓과 몸짓 사이 팔정도의 깨달음이 녹아난다. 두두둥 북채의 연이은 휘두름에 극락왕생을 비는 심장 박동이 인다.

 

승무는 우리 민족 대대로 살아온 삶의 몸짓으로부터 골격을 세웠다. 장구한 역사 위에 만들어져 춤의 기본인 동시에 모든 춤사위가 융합된 우리춤의 중심이라 자부한다. 조선말에 독립된 민속춤으로 완전하게 정립되어 한성준이 체계화, 춤의 대표격이 되도록 집대성했다. 자연과 합일되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생명의 원리를 담았으며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영숙-이애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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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민 '박제홍제-최희선류 달구벌입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허허 옷자락에도 수다가 묻어나네
달구벌입춤 박지홍제 최희선류 이준민

 

춤에 온갖 수다가 난무한다. 손짓 하나에 서러운 시집살이가 조명되고 버선발에는 남편 수발 수년 아픔이 묻어난다. 숨죽인 소고의 두드림에는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가슴 끙끙거리며 살아낸 아낙네의 서러움이 북받친다. 

 

이준민의 춤에는 옷자락에도 수다가 담긴다. 보는 이들이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이끈다. 속박 속 자유를 갈구하는 여인을 만나게 하고 길쌈 매며 속풀이를 하는 여인도 보게 한다. 눈을 떴다 감으면 어느새 교태를 떠는 여인도 스치게 한다. 

 

마디마디 움직이는 손가락이 가락이 되고 무심하게 뿌리는 수건은 가사가 되어 눈을 홀린다. 몸으로 하는 언어가 이토록 강렬한 걸 실감케 한다.   

 

달구벌입춤은 일명 ‘수건춤’, ‘덧배기춤’으로 불린다. 달구벌은 대구의 옛 지명이다. 이 춤은 대구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교방놀이춤으로 여성의 다소곳하고 은근한 정감이 깃들었다. 계보는 달성권번의 박지홍에서 최희선으로 이어진다.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활기찬 소고의 허튼춤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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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재 '장유경류 선살풀이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부드러운 선에 어울린 멈춤의 힘
선살풀이춤 장유경류 서상재

 

어떤 살을 어떻게 풀까. 하얀 옷, 하얀 부채, 하얀 명주천을 든 서상재는 등장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풀어주는 막강한 힘을 가진 살풀이. 춤꾼은 임무에 걸맞게 강단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부드러운가 하면 강하고 강한가 하면 부드럽다. 마치 귀신을 달래기도 하고 몰아치기도 하면서 어쨌든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애쓰는 긴장과 이완이 있다.  

 

그의 춤에는 선살풀이춤의 특징이 녹아있다. 이 춤은 부채의 반원과 긴 명주천이 만나 힘 있는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이 서로 교차하여 춤사위를 연결한다. 맺고 풀어내는 어울림 속에서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움직이는 가운데 고요함을 빚어내면서 장중한 힘이 넘치게 한다. 서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율동감이 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이 크고 멈춘 듯한 움직임에서도 부채가 만들어내는 손놀림이 강하고 시원시원하다.  

 

선살풀이춤은 장유경에 의해 2003년도에 초연됐다. 2019년 다시 구성하여 정-중-동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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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현주 '권명화류 대구검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번득이는 농검 화려한 절정
대구검무 권명화류 추현주

 

칼을 들고 춤을 추는 여인. 어찌 칼을 들었을까. 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예로부터 사냥은 물론 축제, 전쟁 등에 쓰여왔다. 무기가 춤의 도구로 쓰인 것은 제례의식에서 비롯됐을 터.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를 비롯한 문헌에 칼춤이 기록돼 있다. 애민, 애국과 연관되어 검무가 태어났고 예술인들의 의해 문화예술로 승화된 것. 

 

추현주는 전립(戰笠)과 전복(戰服)을 갖추고 가슴띠를 두른 채 조명 아래 섰다. 이어 손목에 낀 색한삼 자락을 고이 흔들며 보는 이가 아슴아슴하도록 춤을 춘다. 관객은 궁금하다. 검무라면 빠질 수 없는 칼이 어디 있는지. 자락에 숨긴 것 같진 않다. 의문이 발동할 즈음 색한삼을 벗고 맨손을 보인다. 거기에도 칼은 없다. 허공에서 소소한 원으로 놀음하던 손은 드디어 엎드려 바닥에 모셔둔 칼을 쥔다. 이제 본격적인 검무가 시작된다. 

 

그제야 날을 번득이며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뒤로 제치며 빙빙 돈다. 위아래, 좌우를 가르는 칼과 한 몸이 된다. 농검에 이은 절정은 전통춤의 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는 마음들에 닿는다. 

 

이 작품은 대동권번시설 박지홍 스승에게 권명화 선생이 사사 받은 것을 재구성해 무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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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우 '사풍정감'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선비도 신명은 못 참아
사풍정감士風情感 백경우

 

학문과 덕망을 겸비한 선비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늘 고고한 척할 수 없다. 때로는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남의 일에도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발동한다.   

 

고상한 도포에 멋진 갓을 쓰고 난이 새겨졌을 법한 부채를 든 춤꾼 백경우가 귀티나게 무대에 오른다. 그렇다고 감춘 끼가 어디 가랴. 난잡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버선발 뒤꿈치에서도 신명이 솔솔 삐져나온다. 신명은 무대라는 공간의 커다란 여백을 채워나가고 즉흥적인 춤사위는 계속된다. 차고 딛는 우아한 발걸음, 접었다 펼치는 흥겨운 부채, 조심스레 덩실거리는 어깨, 못내 흔들어대는 엉덩이까지 그 안에 광대가 숨어있다. 

 

체면이고 뭐고 던져버리고 정(情)과 흥의 운치에 한껏 젖고 싶은 선비의 내면세계는 춤으로 발현되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보게 한다. 백경우의 고상한 몸짓 또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더더욱 봇물 터지듯 드러나게 된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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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박병천류 진도북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얼씨구나 부드럽게 갖고 논다
진도북춤 박병천류 김진희

 

겨울에 만난 봄의 환희다. 김진희의 춤은 생기발랄하다. 땅을 뚫고 올라온 씨앗이 새로운 세상을 맞아 기쁨에 떠는 장면과 닮았다. 쌍북채를 위아래로 올렸다가 내리며 선을 만들고 여민 버선코를 지탱하면서 온몸을 들어 돌리는 자태가 곱다.

 

가락은 여림과 강함이 조화를 이룬다. 투박하면서도 힘 있는 소리가 빠른 맥박을 부르기도 하고, 부드럽게 구석을 파고드는 소리가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어깨춤과 빠른 걸음으로 회전하는 선과 맺고 얼렀다 푸는 북장단이 매력적이다. 신명을 다룰 줄 알아야 흥과 멋이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북을 장구처럼 비스듬히 매는 진도북춤은 박병천 선생에 의해 구성됐다. 농악 중에서 북놀이에서 파생되었다. 화려한 북장단과 춤사위를 기본으로 한다. 즉흥성과 신명이 춤을 이끈다. 강렬한 북가락과 함께 다양하고 유연한 장구가락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섬세함이 어우러져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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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권명화류 소고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한의 줄에 익살과 해학 걸렸구나
소고춤 권명화류 김용철

 

춤에 한의 줄을 걸어 희로애락의 익살과 해학을 빚는다. 시공간 너머 질펀한 흥과 멋을 마음껏 주무른다. 김용철의 춤은 마치 찰리 채플린을 보는 듯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이 희극 배우의 명언이 무대 위를 사뭇 감싼다. 아주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인생. 완숙미가 물씬 풍기는 춤꾼의 소고 두드림도 “그래, 그렇다.”고 말한다. 운칠기삼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세상에 사는 모든 소시민의 토로로 들린다. 

 

그의 춤은, 그가 만들어 낸 춤사위는 참으로 자연스럽다. 살에 착 달라붙은 피부와 같다. 한 자락 도는 몸짓도 예사롭지 않다. 그저 무심해 보여도 자신조차 모르게 정밀하게 계산된 듯하다.

 

작품은 권명화 춤을 근간으로 삼는다. 여기에 김용철 고유의 예술성이 발현되어 독창성이 강하다. 영남춤 특유의 춤적 질감에 권번춤의 춤 감성이 구음과 어우러진다. 해학성과 역동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굿거리장단에 덧배기춤을 중심으로 자진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구조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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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및 관계자 기념촬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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