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난제 깊은 인연으로 푼다
함께 좋아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노력한 춤판
2022 박진미무용단 달구벌 打(타)·짓
2022 박진미무용단 달구벌 打(타)·짓
2022년 12월 24일 / 꿈꾸는씨어터
- 글 : 김리윤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인연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큰일을 해냈다. 같은 길을 가면서 함께 좋아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노력했던 예술인들이 똘똘 뭉쳐 흥겨운 춤판을 벌였다. 진주에서 맺은 연분 마다 않고 공들여 물을 주고 햇빛을 쏘이더니 마침내 대구에서 꽃을 피웠다.
박진미무용단은 지난 12월 24일 오후 5시 꿈꾸는씨어터에서 ‘달구벌 타(打)·짓’을 선보였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갈고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평안, 생성, 음양, 태동, 무욕, 액몰이, 신명의 기원을 담은 몸짓과 타악은 한풀이는 물론 풍자로 웃음을, 해학으로 익살과 연민을 불러냈다. 신명까지 일으킨 절묘한 조화에 박수가 잇따랐다.
호응을 얻는데 해설도 한몫했다. 클래식을 비롯한 음악 해설 경험이 많은 탤런트 이재용 씨가 사회를 맡아 우리 것의 이해를 도왔다. 공연에 앞서 작품 소개와 더불어 출연자의 얽힌 숨은 이야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면서 분위기를 조성했다. 성탄 전야에 전통춤과 전통소리를 들으며 보낼 줄 몰랐다고 고백한 그는 한국무용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성준이 가수 김완선의 외증조부였다는 말로 관객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아울러 어렵게 실력을 쌓아 여기까지 온 춤꾼들의 노력을 격려해달라고 간청했다. 관객석에 앉아있던 원향 엄옥자 선생에게는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객석과 가깝고 관객석보다 낮은 무대도 괜찮았다. 구경꾼의 몰입을 돕고 전문 예술인의 끼를 생생하게 감상하는 장점은 덤이었다. 작품 흐름에 맞는 장단과 가락으로 흥과 애환의 감정을 적절하게 견인한 반주도 칭찬할 만했다.
눈길을 끈 것은 부제 ‘진주의 인연’이었다. 내막이 있었다. 무용단을 이끄는 박진미 대표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인연의 끈은 타·짓으로 연결되어 함께 생성과 파장이 되어 나아간다는 박 대표는 그 의미를 살려 진주교육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 의기투합하여 판을 짰다. 대구에서 시연되지 않은 춤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해 송년 무대에 올린 것.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아직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감이 있지만 공연을 통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되고 함께 한 모든 분과 감사한 마음을 나누겠다는 의미도 실었다.
‘삶’이라는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글자 ‘사람’이 들어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사람과 더불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깊이 들어갈수록 미궁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예술의 난제를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풀어보려는 박 대표의 다음 공연이 기다려진다.
엄옥자류 진춤(원향지무) / 출연 이경림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어허 섬세해라 고혹적인 춤선
평안의 짓 : 진춤(원향지무) 엄옥자류 / 출연 이경림
대금 연주를 선두로 인형같이 고운 자태의 춤꾼이 꽃잎에 발을 내디디듯 사뿐사뿐 걸어 나온다. 한 손에 수건을 들고 한 손으로는 치마를 살짝 부여잡는다. 몸을 부드럽게 감았다 풀며 평안으로 가는 길을 연다.
손끝을 가볍게 튕기면서 하얀 수건 가장자리를 하늘로 보낸다. 염원이 닿기를 바라는 몸짓이 간절하다. 가락의 장단에 따라 가만가만 솟구치기도 하고 종종걸음으로 느리게 나아가기도 한다. 워낙 섬세하여 속눈썹 움직임까지 신경 쓰일 정도로 마음이 뺏긴다. 곱지만 교태와는 거리가 먼 춤선이 고혹적이다.
원향지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예능보유자인 원향 엄옥자 선생의 춤이다. 무겁게 눌러주는 승전무 북춤의 우아한 춤태, 칼춤의 아름다운 기교, 통영기방 예술의 진춤을 바탕으로 한 수건춤이다. 수건의 곡선미와 시원한 발놀림으로 감추어진 신명과 흥의 기개를 유쾌하게 빚어낸다. 통영지역 수건춤의 맥을 이어왔다. 승전무와는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문진수류 광대소고춤 / 출연 문진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여보게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하게
생성의 짓 : 광대소고춤 문진수류 / 출연 문진수
늦깎이로 무용과에 들어간 춤꾼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발레까지 배운다. 한 가지도 어려운데 춤에 관한 것이라면 죄다 흡수하려 한다. 춤에 미치지 않고서는 어려운 행보다. 나중에는 남사당의 모든 몸짓을 해낼 정도로 대가의 물꼬를 튼다.
문진수가 보여주는 소고춤은 사계절이 있다.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도 내포된 느낌이다. 소고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바닥까지 쓰면서 세상사에 물든 인생살이를 골고루 전한다. 몸의 사지를 이용해 장단을 맞추며 선과 선, 가락과 가락의 균형을 맞춘다. 허벅지, 무릎, 정강이, 버선코를 넘나들며 소고를 가지고 놀고 공중제비도 보여준다. 격정적인 몸짓으로 절정을 알릴 때는 무엇이든 생겨나게 하는 힘이 보인다. 아픔을 떨치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것.
광대소고춤은 1925년 독일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기록한 영상이 토대가 됐다. 전문예인으로 추정되는 소고춤을 복원 및 재현, 재구성, 재창작한 작품이다. 1992년 재작, 1994년 초연됐다. 2000년 초에는 청년 명인전 등에 소개되었다.
소고 가죽과 테를 활용한 연주 타법(기예 타법) 등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악기 특징을 살려 발놀음과 춤 기교를 조화롭게 구성한다. 작품 전문성과 예술성이 동시에 확장되어 소고춤의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한다.
장홍심-이성자류 바라승무 / 출연 송미숙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독특한 춤사위로 우리 모두 지키리
음양의 짓 : 바라승무 장홍심-이성자류 / 출연 송미숙
목탁 소리에 국악소리가 이어진다. 하얀 고깔, 흰 치마저고리에 회색 장삼을 걸치고 붉은 가사를 어깨에 둘러멘 춤꾼이 무대를 등지고 엎드려 있다. 잠시 후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면서 숙연한 고깔을 깨운다. 서서히 일어나 긴 장삼 살포시 공중으로 날리며 부드러운 곡선을 만든다. 나비의 날갯짓과 연상되는 우아한 움직임에 맵시가 있다. 몸을 살짝 앞으로 구부리고 옆 선을 유지하며 걸을 때는 고즈넉한 풍경에 끼어들기 조심스러운 바람이 된다.
이윽고 챙챙챙 바라가 소리를 낸다. 정중한 음색에 음양 균형과 수호를 해치는 방해꾼을 휘어잡는 강한 힘이 묻어난다. 바라와 춤꾼이 하나 되어 빙글빙글 춤을 추며 돈다. 원을 그리며 한 번씩 내는 음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합장으로 끝나는 마지막 순간 경건함이 인다.
함흥권번의 장홍심(1914~1994)에서 이성자로 전해 내려온 바라승무는 함흥권번과 한성준 무태가 복합적으로 큰 덩어리가 된 독특한 춤사위다. 변별성이 높고 무형유산적 가치가 높다. 역사적, 예술적 측면에서도 학술적 의의가 있다. 현재 장홍심 춤을 전승하고 있는 제자로는 함북무형문화재 제3호 함북선녀춤 예능보유자 이성자가 유일하다. 장홍심 – 이성자류 바라승무 계보를 송미숙이 잇는다. 정중동 미학이 돋보이는 춤사위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예인의 무록에 획을 더하고 있다.
박병천류 진도북춤 / 출연 박진미, 장요한, 곽민정, 우수민, 박소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신명이 일어나는구나 얼씨구 좋다!
태동의 짓 : 진도북춤 박병천류 / 출연 박진미, 장요한, 곽민정, 우수민, 박소현
꽹과리 소리를 필두로 춤꾼들이 대오를 이루며 무대에 오른다. 1명은 바지저고리, 4명은 치마저고리에 북을 매고 양손에 채를 들어 쌍북을 치며 흥겹게 장단을 맞춘다. 몸짓과 북소리에 신명이 묻어난다.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깨가 들썩거리게 만든다. 새싹이 돋아 줄기와 잎이 생기고 점차 튼튼하게 자라는 과정처럼 생동감이 인다.
춤과 북의 합, 다양한 가락이 내는 소리가 정밀하다. 빠른 장단으로 몰아가면 흐트러질 법한데 생명력이 더 살아난다. 속칭 구멍이 없다. 충실한 연습이 짐작 간다.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애쓴 보람이 감지된다. 관객의 들썩거리는 어깨에서. 남자 춤꾼이 치마저고리를, 여자 춤꾼이 바지저고리를 입고 나와 성별이 바뀐 역할을 보여준 것도 재미를 더했다.
진도북춤은 박병천 선생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농요에 맞춰 일꾼들을 독려하며 흥을 돋우어 주던 두레굿에서 소박한 농촌 북만을 따로 독립시켰다. 이를 향토색 짙은 북춤사위와 가락으로 승화시켰다. 구성은 풍물, 판소리, 의식 등의 가락으로 다양하고 폭넓다. 역동적이면서도 직선미와 곡선미의 조화가 뚜렷하다. 장단과 가락, 춤이 이루는 기교가 뛰어나다. 세련되면서도 힘이 있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남사당 덧뵈기 / 출연 신하교, 서희연, 이지원, 한유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한바탕 연희로 온갖 설움 씻는다우
무욕의 짓 : 남사당 덧뵈기 / 출연 신하교, 서희연, 이지원, 한유진
각자 다른 탈과 상모를 쓴 4명의 남사당패가 꽹과리와 장구, 북과 징을 두드리며 무대에 들어선다. 상모를 좌우, 위아래 이리저리 흔들고 돌리며 순간의 선을 그리며 흥을 돋운다. 둥글게 둘러서서 한바탕 놀더니 꽹과리를 치는 꺾쇠만 남겨두고 차례로 무대를 비운다. 꺽쇠의 놀음은 계속되고 혼자 놀기 심심했던지 냅다 장쇠를 부른다. 이때구나 싶던 장쇠가 나오고 둘은 오랜만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이내 장구 놀음에 빠져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사연, 꽹과리 배우느라 힘들었다는 속내를 나누며 진한 서러움을 예전의 놀던 가락으로 풀어본다.
자기들로서는 왠지 격이 맞지 않는다고 입을 맞춘 둘은 멍쇠와 먹쇠를 잇따라 부른다.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나와 팀을 이룬 패거리는 본격적인 덩더쿵 유희를 펼친다. 풍물을 다루기도 쉽지 않은데 발놀음에 상모까지 돌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광대다. 복을 기원하는 한바탕 놀이를 선사하면서 민중의 덧뵈기가 무르익는다.
직설적인 재담이 매력적인 덧뵈기는 춤과 전통연희, 풍물로 짜였다. 융합적 전통성에 독창적인 가면극이 함께 하여 해학적인 풍자를 엿볼 수 있다. 민중의 애환에 대한 공감과 소통을 이루면서 사회극의 일면도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는 전체 4과장 중 1과장 마당씻이를 보여주었다. 놀이판을 깨끗하게 씻김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일명 씻김과장으로 다른 가면극에서 볼 수 없는 가면을 쓰고 연기와 춤, 악기연주, 상모를 돌린다. 남사당만의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면모를 나타낸다.
문진수류 열두발상모춤 / 출연 문진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나쁜 기운 훠이훠이 물렀거라
액몰이의 짓 : 열두달상모춤 문진수류 / 출연 문진수
판굿에서 볼 수 있는 개인놀이 진수는 12자 상모돌리기다. 문진수의 공연은 압권이다. 앞서 광대소고춤에서 경험한 몸짓과는 또 다른 연희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3m 60cm, 자신의 키 2배를 훌쩍 넘어서는 긴자를 갖고 논다. 후리는 본새가 예사롭지 않다.
등장부터 남다르다. 상모에 이어진 자를 손안에 돌돌 말아 쥐고 나타나고도 쉽게 던지지 않는다. 섬세한 춤사위를 한껏 보여주면서 애간장을 녹이고 녹이다 목이 탈 지경에 이르러야 감춘 병기를 드러낸다.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원심력을 최대한 이용한다. 새처럼 공중을 힘껏 날아오르며 상모를 절묘하게 돌린다. 자의 꼬리가 항복하고 가장 먼 곳까지 밀려난 후에야 12자 곡예는 전개된다. 워낙 길어 휘청대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원형 곡선은 자와 자 사이를 건너고 일부러 밟고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는다.
발을 친친 감은 뒤 원래대로 풀리는 기예 앞에서 잠시 무너지는가 싶다가도 팔짱을 낀 개구쟁이가 돌리는 굴렁쇠가 되었다가 거울로 변하기도 한다. 거울 안에는 처자가 화장을 하고 어여쁨을 뽐내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한다. 공연장 천장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좀 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열두발상모춤은 1년 열두 달 액운을 몰아내고 공동체 염원과 안녕을 바라는 것이다. 반복 순환하는 지속적인 연희구조 속에 대립구조를 제거하고 질서와 조화 속에 재주를 선보인다. 신명을 더하는 것으로 판굿이나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문진수류 열두발상모춤은 다양한 연희와 춤 기교가 뛰어나다. 느림의 미학과 절제된 미의 정수를 지녀 완성도가 높다. 12발이나 되는 긴 상모가 돌아가는 동안 장단 박자를 넘나들며 규칙과 불규칙을 반복 수행한다. 그런 가운데 신체를 활용한 움직임이 하나로 이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김평호류 남도소고춤 / 출연 박진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한 번 왔다가는 삶 즐겁게 살아야제
신명의 짓 : 남도소고춤 김평호류 / 출연 박진미
어떤 분야든 고수는 힘을 적당하게 빼고 적당하게 줄줄 안다. 박진미의 춤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힘 조절을 제대로 하여 관객의 어깨를 풀게 한다. 가장 편안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멈출 때는 청자가 되고 움직일 때는 화자가 된다. 듣고 말하고, 전하고 귀 기울이는 참다운 대화가 이뤄진다. 진정이 느껴지면 말하는 화자도 듣는 청자도 신명이 난다. 박진미의 춤은 그래서 경쾌하다.
남도소고춤도 그렇다. 긴장과 이완,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운 움직임에 멈춤의 미학까지 더해져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희한한 게 통통 튀며 움직여도 흥겹고 일순간 멈춰도 흥겹다. 한바탕 무대를 누비고 놀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도 신이 난다. 몸에 장착된 흥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인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땅하게 각본이 올곧게 배여 내 것으로 다시 태어나면 더는 모방이 아니다. 신선한 짜릿함은 그때 생긴다. 흐르는 강물 위를 솟아오르는 물고기의 자유로운 영혼처럼. 들숨과 날숨의 알맞은 호흡으로 몸놀림이 쿵이 되고 소고의 두드림이 짝이 되는 춤꾼의 내일에 건강한 완숙미가 곱으로 더해지면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된다.
남도소고춤은 생성과 파장이 되어 나아가 남도의 신명을 간직한다. 전라도 해안 지역에 분포된 소고와 벅구춤 정서를 이어받아 남도적 흥과 멋 결정체를 녹여낸다. 남도 호적 시나위에 신명을 녹여내는 가무악(歌舞樂) 일체의 축제적 성격을 가진다.
소리와 함께 자진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동살풀이, 휘모리로 구성된 장단에 맞춰 부드럽게 춤추다가 흥겹게 연결되는 씩씩하고 활기차게 엮는 풍물이 바탕이다. 1980년도에 김평호 선생이 안무한 작품이다. 경쾌함을 바탕으로 소리와 춤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박진미무용단 '달구벌 타·짓' 기념촬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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