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와 사회적 사건에 대한 깊은 숙고, 2022 대구국제무용제 2일차
- 제24회 대구국제무용제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제24회 DIDF 대구국제무용제
2022년 11월 06일, 08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비슬홀
- 글 : 이선영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6일에 이어 8일, 척프로젝트, Nelson Miracle Chinonso, 김용걸댄스시어터, 김성용댄스컴퍼니 뮈, DAP Company 총 5팀의 무대가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열렸다.
척Project '꽃은 지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자리에 머문다' / 안무 최재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꽃은 지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자리에 머문다 - 척프로젝트 / 안무 최재호
머리에 상투를 틀고 고무신을 신고 지팡이를 짚은 영락없이 나이 든 노인 모습의 남자 무용수 3명이 등장한다. 하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듯 화사한 색의 정장을 입었다.
노인의 상징인 지팡이를 이용해서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내 그 위에서 춤을 추고, 담배를 피우는 듯 장난스러운 모습을 내보였다. 철없는 10대, 20대처럼 서로 투닥거리는 유쾌한 모습은 한편의 무성 연극으로 보였다.
쉴 새 없이 발과 지팡이를 이용해 리듬을 만들어내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온다. 경쾌하고 가벼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간의 청춘을 생각하듯이 힘없이 축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우리에게 익숙한 밀양아리랑의 한 구절이 나온다.
노인은 손이 떨려 지팡이를 잘 잡지도 못하다 어느덧 신나게 편곡된 밀양아리랑이 나오고 점점 20대의 몸짓으로 신명 나게 춤을 춘다. 핀 조명 아래 다시 노인이 된 무용수들을 보며 현재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청춘의 한 페이지가 느껴졌다.
Nelson Miracie Chinonso '고독한 생활' / 안무 Nelson Miracie Chinonso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living in solitude(고독한 생활) - Nelson Miracle Chinonso / 안무 Nelson Miracle Chinonso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의자와 스탠딩 옷걸이만이 무대에 있다. 불이 커졌다 꺼지며 좌절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서서히 음악이 흐르고 고독한 남자의 춤이 시작된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찾는 몸짓 속 그의 안부를 묻듯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남자가 도움을 청하자 답이라도 하듯 누군가의 절규가 들린다. 힘들어하는 남자 앞에서 천천히 검은 정장을 입은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의 내면일까. 남자의 고독이 실체가 되어 나타난 걸까. 검은 정장의 남자는 가만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남자를 응시한다. 이내 현악기의 소리가 흐르고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 듯 마주 보고 서 있다.
남자는 고독과 함께 대화를 나누듯 따로 또 같이 춤을 추고 괴롭지만, 고독과 자신을 인정하듯 등지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김용걸댄스씨어터 '바람 Wind' / 안무 김용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바람 Wind - 김용걸댄스시어터 / 안무 김용걸
자연의 소리가 들리고 바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 남녀 무용수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하늘하늘한 의상과 가벼운 몸짓은 바람 그 자체가 되었다. 바람의 흐름과 바람이 여행을 하며 만나는 바다, 하늘, 나무의 모습들을 나타냈다.
바람은 지치지도 않는 듯 음악이 꺼지고 난 뒤에도 바람의 몸짓으로 천천히 그 움직임을 이어갔다.
Dance MooE 'I am you' / 안무 김성용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I am you - 김성용댄스컴퍼니 뮈 / 안무 김성용
조명 없이 무대 중앙에서 실루엣만이 보인다. 무대 위에서 조명이 비치고 조명 앞에서 태초의 모습을 나타내듯 살구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 한 명만이 춤을 춘다. 나를 보는 다른 이의 시선을 나타내는 듯 조명 앞에서 몸부림을 치며 격한 춤을 춘다. 음악이 꺼지고 조명은 무용수의 발밑을 비춘다. 그 시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자리를 벗어난다.
음악이 다시 흐르고 같은 모습의 무용수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누가 누구인지 누가 나고 나를 보는 당신의 시선인지 알 수 없다. 나를 비추는 시선 앞에서 잘 보이려 하듯 조명 앞에서 춤을 춘다. 나를 보는 시선 속에 갇힌 듯 투명 아크릴 안에 갇혀버린 무용수는 어느덧 아크릴 밖으로 나와 나를 마주한다. 편견에 속박된 나를 벗어나 진짜 나를 만나 함께 시선을 마주하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특이한 무대 구성과 소품의 활용이 기억 남는다. 무대 중앙에 있는 조명과 투명한 아크릴판을 이용해 남의 시선에 비친 나의 모습과 편견에 속박된 시선이 잘 드러났다.
DAP Company '오라 Aura' / 안무 이이슬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오라 Aura - DAP Company / 안무 이이슬
해금, 장고, 꽹과리, 정주, 베이스까지 다섯 가지 악기, 두 명의 무용수, 한 명의 보컬이 있는 많은 인원의 무대였다.
#1. 지각
음악이 흐르고 홀로 높은 의자 위에 앉아있는 여자 무용수. 얼굴은 꽹과리로 가린 모양새였지만, 어딜 보는지 알 수 없어 세상 모두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서서히 일어나 삶은 되짚어보듯 시선을 돌린다. 무엇인가를 봤는지 덜덜 떨리며 두려워하는 여자 무용수와 음악의 조화는 관객들에게 긴장을 주기 충분했다. 빨간 조명 아래에서 화려한 치마와 장갑을 벗고 아무 치장 없이 의자에서 내려온다.
#2. 원죄
얼굴을 가리고 있던 꽹과리를 벗고 세상을 마주한다. 사회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듯 꽹과리와 함께 춤을 추는 무용수는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이내 이렇게 사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는지 꽹과리를 밟으며 꽹과리 연주가 시작되고, 모든 악기가 그에 응하듯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3. 오라
모든 것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남성의 곡소리가 들려온다. 남성의 곡소리 뒤로 괴로운 몸짓을 하는 여인이 그 모습을 뒤따른다. 무대 탑에서 꽹과리가 내려온다. 꽹과리 비가 쏟아지듯 꽹과리로 가득 찬 무대는 사회의 문제를 잊지 않고 지켜보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시 꽹과리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고 남성은 위로의 창을 한다. 장구와 베이스가 주를 이루어 창과 무용을 이어간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잊지 말아 달라는 듯, 암전 상태에서 곡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이렇게 제24회 대구국제무용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했던 익숙한 고민과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들을 현대무용, 발레, 퍼포먼스, 라이브 연주 등 각 팀의 색을 입혀 춤으로 표현했다.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많았던 만큼 함께 온 친구, 가족, 동료들과 대화 주제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철학을 전하고 입체적인 표현에 춤의 끝 없는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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