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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대구 무용의 자존심을 겨루는 자리 '제33회 대구무용제'

 

제33회 대구무용제

2023년 5월 27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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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4439

 


제33회 대구무용제가 지난 5월 27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개최되었다. 대구무용제는 대구 무용의 역사적 위상과 정체성을 고취시키고 무용인들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주최하는 연중행사다.

 

특히 이번 무용제에서는 10월에 있을 전국무용제에 대구 대표로 참가할 출전권을 놓고 세 팀이 열띤 경연무대를 펼쳤다. 객석에도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오랜 기간 코로나로 움츠려 있었던 마음들이 활짝 열려 그 어느 때보다 무용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움을 엿볼 수 있었다.

 

경연 후에는 행사의 열기를 식혀줄 축하공연도 마련되었다. 색색의 너슬을 펄럭이며 요란하지 않게 우아한 쇠놀음을 하는 춤, 양승미류 진쇠춤이 원작자의 경쾌한 발놀음으로 객석을 신명으로 환기시켜 주었고, 이어서 달구벌입춤보존회에서는 대구의 예스런 풍류가 깃든 달구벌입춤을 5인무로 재구성하여 대구 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제 그날의 경연무대 일면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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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 안무 김인회 ⓒ이재봉


유랑자

- 인코드프로젝트 / 안무 김인회

 

상의를 탈의한 남무가 공중을 유영한다. 천장에서 비추는 한 줄기 빛을 향하여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힘없는 피조물의 발버둥마냥 애처로움을 품고 있다.

이윽고 바닥에는 크고 하얀 용기 속에 한 무용수가 잠들어있다. 온통 살색의 몸으로 깨어난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처럼, 자기 몸을 이곳저곳 훑어보고 혼란스러워 한다. 관절인형처럼 절뚝거리는 움직임. 그에게 세상이란 미지의 곳이고 두려운 장소다.

 

장면은 계속해서 이동하여 무대 뒤쪽으로 향한다. 좁은 정글짐에 갇힌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아등바등 수고스럽고, 한편으론 고통스러워 보인다.

 

이 작품은,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탄생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존재를 영위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유랑자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이다.

 

온화한 분위기의 가곡이 흐르자 정글짐을 벗어난 무용수들이 춤을 추어 보인다. 그러나 그 춤은 자유롭기보다 실험적이고 저돌적인 움직임에 제한되어 있다. 빠르게 팔을 휘휘 돌려 시루고, 서로의 움직임을 도와주며, 등을 보인 채 앞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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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코드프로젝트 '유랑자' / 안무 김인회 ⓒ이재봉

 

 

뭐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존재들. 미지의 세상, 무지의 존재는 알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비로소 존재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한다. 결코 온전히 알 수도 없고, 안주할 곳도 정복할 수도 없는 '세상'과 '나'라는 존재.

 

양손을 골반에 붙인 채 파르르 떠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무지한 존재들의 절규와도 같이 여기저기서 이어진다. 쿵덕쿵덕하는 박동소리에 경각심이 고조되고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한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며 이 땅 위에 삶은 지속되고, 세상은 그 '삶'으로 변화한다.

 

키보다 큰 원형의 굴레가 마치 거대한 시계처럼 무대에 굴러들고, 그 위에 타고 있던 무용수가 내려오자 관절인형처럼 절뚝거리던 무용수가 다시 그 위를 오른다.

 

그렇게 한순간을 살아간 쓸쓸한 인간들의 아우성이 무대 바닥 아래서 쿵덕쿵덕 울린다. 몸을 감추고 숨죽인 무용수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손으로 몸으로 그려보이는 심박의 연기(acting)가, 소리보다 큰 울림을 남긴다.

 

이 작품은 금번 대구무용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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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베이비슬로 '지음知音 -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 홀로 있음에' / 안무 권준철 ⓒ이재봉


지음知音 -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 홀로 있음에

- 팀.베이비슬로 / 안무 권준철

 

어둠 속에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다. 음악에 맞추어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곧 하늘을 향해 양팔을 모으더니 왼쪽 뒤편으로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쓰러진다.

 

백스크린에는 온통 검은 공간에 흰 연기가 자욱이 스며있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무용수들이 재킷을 걸치고 나와, 애도의 음악과 함께 바닥에 뒹군다.

 

이 작품은 지음(知音, 자신을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잃은 슬픔을 퀴블러로스 이론에 입각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지난해 3월 발생한 울진의 대형산불에서 모티프를 얻은 안무자는, 백스크린을 통해 화마(火魔)를 연출함으로써, 죽음 소멸을 마주하는 아픔의 심상을 공공의 화두로 던졌다.

 

퀴블러로스 이론(Kübler-Ross’s theory)은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정서적 반응을 5단계로 제시한 것으로, 거부(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단계를 거친다는 정신의학적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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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베이비슬로 '지음知音 -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 홀로 있음에' / 안무 권준철 ⓒ이재봉

 

 

어느덧 체념한 듯한 무용수들의 춤을 뒤로하고, 백스크린에는 검붉은 불길이 마구 번져간다. 무용수들이 양손을 들어 표현하는 진동은 화마의 위협처럼,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처럼 위기감을 그려낸다.

 

그러나 종국에는 모든 것이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 듯, 그저 양다리를 허공에 띄우고 발길질을 한다. 손을 대신한 간절함이 어린 발길질. 그 염원이 하늘에 닿은 듯이 백스크린에는 드디어 비가 쏟아진다.

 

주체할 수 없는 상실의 아픔, 심경의 동요가 무용수의 몸을 좀체 바닥에서 떨어지지 못하게끔 하는 와중에, 마치 구원의 동아줄마냥 하늘에서 기둥이 내려오는 장면이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애틋한 잔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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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제이김건우무용단 '꽃이 피지 않으면 나비의 인생은 비참해진다' / 안무 김건우 ⓒ이재봉


꽃이 피지 않으면 나비의 인생은 비참해진다

- 에스제이김건우무용단 / 안무 김건우

 

어두운 무대,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조명 사이의 이미지는, 새하얀 나뭇가지와 붉은 노루썰매를 언뜻언뜻 연상시킨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붉은 노루 판타지는 세상에 점지된 한 생명체의 탄생을 알리는 듯 귀하고 화려해 보인다.

 

곧 심상찮은 늑대의 울음소리, 마녀의 웃음소리가 이미지를 에워싸더니, 그 장난스런 악기를 품은 목소리가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1, 2, 3... 42, 43, 44.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마치 악의 무리를 대변하는 듯이 붉은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 주변을 신기루처럼 에워싸고 그녀를 높이 들어올린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하지만 후천적인 교육과 양덕(養德)을 통하여 선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을 그려낸 작품이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멀어지면서 홀로 남게 된 붉은 드레스는 비탈리 샤콘느(Chaconne)의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깨어난다. 무지(無知)와 인간 본성에 기인한 무용수의 원초적 움직임에 애잔한 현의 소리가 공감의 울림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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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제이김건우무용단 '꽃이 피지 않으면 나비의 인생은 비참해진다' / 안무 김건우 ⓒ이재봉

 

 

이제는 흰옷을 입은 무용수가 하나둘 그녀의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하고, 무대 뒤쪽에는 온통 찌그러진 은박판과, 표면이 매끈한 은박거울이 대비를 이루며 나란히 나타난다. 그 뒤로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군무가 흑백의 색채대비를 이루고, 붉은 드레스는 그들 속에서 방황한다.

 

내 안의 흰 모습과 검은 모습의 공존과 대립.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Oblivion)으로 분위기가 전환되고, 흰옷을 입은 무용수가 그녀를 인도한다. 망각(oblivion)의 기운 속에서 악성(惡性)을 떨쳐버린 것일까, 결국 매끈한 거울 뒤에서 붉은 드레스를 벗어던진 그녀. 이제 흰옷의 커플이 아름다운 탱고선율을 타며 2인무를 펼친다.

 

의미를 내포한 사운드와 흑백의 색채대비, 그 대비가 그저 거뭇거뭇 때 묻은 흰옷으로 귀결되는 모습 등 전반적으로 내용을 읽기 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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