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현대무용을 이끌어 갈 새로운 에너지를 보다
독특한 감각과 춤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무대, 'Dreamer'
제34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3김1조 'Dreamer'
2023년 1월 28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김윤정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1월 28일 오후 6시.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제34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3kim 1jo - Dreamer 공연이 열렸다. 3kim 1jo는 영남대학교 무용학과 재학 중인 김민서, 김영은, 김채은, 조부송이 공동대표로 이번 공연에서 눈 뜨면 사라지는 다양한 꿈의 세계를 무대에 펼쳐냈다. 네 명의 대표는 작품 ‘Dream’을 통해 ‘꿈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며 관객들이 꿈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장. 악몽
무대 중앙, 흰색 파자마 차림의 여자 무용수. 옆으로 누운 채 잠든 모습에서 시작되었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자 잠에서 깨어 몽롱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린 후 다시 잠을 청하는 그녀.
무대에 빛이 스며들고, 뒤쪽에 서 있던 여섯 명의 무용수들은 솔로나 듀엣의 형태로 움직인다. 일련의 동작들은 대체로 위치나 역할에 구애받지 않으며 시(時). 공(空)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분위기다. 몸을 흐느적거리며 팔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공간을 그려내거나, 축 늘어진 자세에서 양팔을 휘젓고, 서로의 몸에 의탁해가며 움직임을 이어간다. 다소 건조한 표정과 간단없이 이어졌다 사라지는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실체가 없는 꿈의 세계가 그러하듯.
잠든 여자 무용수는 허공에 두 다리를 맡긴다. 유영하듯, 페달을 밟듯 끊임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깊이 빠져드는 모양새다. 딥 슬립(deep sleep)의 상태다. 잔잔한 선율 속에서 반복적으로 한 건반을 눌러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은 편안하면서도 몽환적이다. 뒤이어 무대 바깥쪽에서 걸어들어오는 무용수. 무의식 상태의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주변을 맴돌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급변하는 분위기. 어두워진 무대에 깊이 잠든 그녀와 그것을 지켜보던 무용수만 남는다. 고음을 내지르는 여자 목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의성어, 오페라를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대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불편한 소리에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하는 무용수. 다른 무용수는 그녀를 조롱하듯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거나 머리를 잡고 비틀어댄다. 질질 끌려다니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자와 막아서는 자의 모습, 몸 위에 눌러앉은 채 발을 잡고 노래 부르는 장면은 마치 어떤 존재에 의해 가위눌린 상태를 떠오르게 한다. 악몽 그 자체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유연한 흐름은 간데없고 악몽에서 깨어나고픈 몸부림을 시각화하고 있다.
암전과 정적이 흐른 후, 무리에게 둘러싸인 무용수.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무리는 그녀의 몸을 정복한 채 팔과 다리, 몸통을 긁고 짓누르거나 빠른 속도로 흔들어댄다. 한동안 이러한 움직임이 반복되는 가운데, 늘어지는 저음의 노랫소리와 불규칙적으로 피아노 건반을 주먹으로 타격하는 소리는 악몽의 절정을 표현하기에 적확했다. 맥락 없이 걷고 뛰어다니는 군무, 여자 무용수의 옅은 호흡과 몸부림만 잔상을 남기며 무대는 마무리된다.
상황과 분위기에 적합한 선곡과 주제에 대한 콘셉트 설정이 분명해 작품 이해에 부담이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무용수들의 등, 퇴장이 다소 분주하여 작품감상에 있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출연진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2. 행복한 꿈
‘윙’하는 거친 기계음. 붉은 원피스를 입은 무용수가 시끄러운 소리 탓에 잠에서 깬다. 뒤이어 붉은색 화려한 조명이 빠른 속도로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하며 무대는 순식간에 4인무로 전환된다. 한 번쯤 들어본 귀에 익은 노래, 박진영의 ‘스윙’이 흘러나온다. 1장(scence)에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며 무대는 경쾌한 분위기로 바뀐다.
붉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무용수들은 미소를 띠며 스윙 리듬에 맞춰 활력 넘치는 춤을 춘다. 화려한 무대 위 댄서가 된 듯 흥겨움과 에너지를 발산한다. 같은 동작과 패턴을 반복하나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묻어나는 춤. 자로 잰 듯 빈틈없는 군무가 아니라 자유롭고 보는 재미가 있다. 댄서들은 공간을 독점할 듯이 점프하여 몸을 뒤집거나 치마를 펄럭이며 춤춘다.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으며 엉덩이를 튕긴다. 자유롭고 흥겨움이 넘쳐나는 상황에 몇몇 관객은 박수로 호응하였고 필자도 춤추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 순간이다.
무대 위, 두 명의 무용수. 영화 라붐 Ost <Reality> 노래에 맞춰 헤드셋 장면이 연출된다. 사랑하는 연인의 느낌인가, 둘도 없는 친구의 모습인가, 무엇이든 어떠하리! 두 사람은 무대를 누비며 호흡을 맞춰 춤추기 시작한다. 따뜻하게 포옹하며 빙그르르 회전 하다가 서로 양손을 마주 잡고 미소 짓는 커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행복은 충만하며 관객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달한다.
뒤이어 잔잔한 재즈풍의 음악,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Ost ‘My Favorite Tings’ 노래가 흘러나온다. 솔로 무용수는 부드럽고 유연한 움직임으로 차분하게 무대를 이끈다.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들, 크림색 조랑말, 사과 과자, 초인종, 하늘을 나는 기러기’, 흘러나오는 노랫말 속에 어릴 때 수십 번 돌려보았던 영화의 장면과 무용수의 아름다운 춤 선이 겹쳐 흐른다. 안무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잠시나마 동심과 추억이 소환되는 순간이다.
강한 비트의 인도 음악으로 환기된다. 큰 보폭의 스텝으로 원을 그리며 무대에 등장하는 세 명의 무용수. 기타를 치는 손짓과 성큼성큼 걷는 스텝에 경쾌함은 있으나 표정은 왠지 모를 무표정이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4인무. 출구를 찾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큰 폭의 S자를 그리며 몸통을 좌우로 일렁인다. 감정의 동요가 있었던 것일까,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몸짓인가. 꿈이든 현실에서든 행복한 감정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터. 덩그러니 혼자 남은 무용수, 어두운 공간에 아쉬움만 남은 채 암전된다.
2장, 행복의 꿈은 무언가 표현하기 위한 춤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기 위한 춤이다. 무용수들의 유대감이 돋보이는 무대였으며 그들이 춤을 추며 느끼는 만족감과 즐거움은 객석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프로그램 북에서 밝히길 ‘무대에서 춤출 수 있다는 기쁨, 그곳에서 관객을 만나는 설렘’이라는 마음가짐이 충분히 느껴지는 무대였다.
3. 회상
무대 위, 두 개의 의자가 마주 보고 있다. 공간 사이로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의자에 앉은 무용수, 두 팔과 다리를 들어 올려 허공을 향해 날개짓한다. 객석을 향해 손가락 관절을 미세하게 움직여 유연한 곡선을 만드는 그녀. 반복되는 움직임은 흘러가는 물결이 되고, 새가 되었다가 사라진다. 손이 주는 부드러운 질감은 따뜻하고 유려(流麗)하다.
흰색 셔츠에 검은 바지, 변화가 없는 조명 아래 담백하게 이끌어가는 무대. 솔로, 듀엣, 트리오 구성으로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며 물 흐르듯 이어진다. 공간에 선율을 그리는 무용수들, 음표가 된 듯 소리의 높고 낮음, 셈과 여림, 건반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쉴 새 없이 몸으로 표현한다. 음악과 움직임 자체에 무용수뿐만 아니라 관객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다. 무언가 떠올리다 떨구는 고개, 가닿지 않는 공간까지 흩뿌리는 손의 에너지, 아련함과 슬픔이 드리운 눈빛, 감싸 안으며 위안을 얻는 듯한 동작 등. 일련의 움직임들은 그리움과 추억, 떠나버린 것에 아쉬움을 묘사하는 듯했다.
후반부에 진행되는 2, 3인무는 조형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곁들여진다. 서로의 몸에 기대어 팔을 교차시켜 곡선이나 원형을 만들고 팔을 연이어 붙여 물결이 일렁이는 모양을 만들며 교감한다. 몸이 만들어내는 입체감은 인상적이다. 또렷하게 끊어주는 스타카토(staccato) 음에 멈추는 듯 이어지는 움직임은 단련된 호흡 기법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비움과 채움, 긴장과 이완, 응축과 풀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움직인다. 음악적 해석 능력과 춤 호흡의 안배에 탁월한 무용수들이다. 공간에 그려지는 춤은 물결치는 손끝에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하룻밤의 꿈도 기억도 사라지듯이.
3장, 회상은 계산된 움직임보다 공간에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움직임에 가깝다. 그렇다고 정처 없이 헤매는 움직임 어법만 있다는 것이 아니다. 무용수들은 음악과 무대라는 공간에 호흡과 몸을 얹고 흐름과 통제, 조율의 레시피를 적절히 사용한다. 3명의 무용수, 몸을 제대로 알고 춤을 섬세하게 잘 춘다.
4. 즐거운 꿈
거친 기계음 소리가 울린다. 소음을 거부하듯 무용수가 손가락으로 귓속을 파내며 일어서는 그때. ‘쿵 쿵 쿵 쿵’ 빠르고 강한 비트의 디스코 음악이 공연장을 압도한다. 무대는 순식간에 8명의 무용수로 가득 차고, 형형색색(形形色色)의 각기 개성 있는 의상으로 한껏 멋을 낸 퍼포머들. 반짝이 의상, 짧은 반바지, 머플러에 장갑, 호피 무늬 바지에 자유분방한 옷차림이다.
비트에 몸을 맡겨 한 명씩 순서대로 움직인다.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춤. 단절되고 파워풀한 동작이 주를 이루며 자유롭게 몸을 꺾고 흔든다. 가슴을 강하게 튕기는 체스트 팝(Chest Pop), 발을 강하게 구르며 춤추는 스텀프(Stomp), 락킹 댄스(Locking Dance)에서 손목을 돌리며 추는 위스트 롤(Wrist Roll)이 시선을 끈다.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무용이라기보다 길거리나 클럽에서 추는 스트릿 댄스(Street Dance)에 가깝다.
이어지거나 분절되는 몇 가지 동작으로 프레이즈(Phrase)를 만들어 쉴새 없이 무한 반복한다.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비트와 안무. 철저한 음악 분석과 많은 연습량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단순히 역동적인 춤이 아니라 잘 다져지고 빚어진 군무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변화무쌍한 조명. 무대 중앙을 기준으로 전후좌우(前後左右)로 빠르게 켜고 암전시키며 흥겨운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음악과 조명에 힘입어 8명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며 열광의 도가니는 본능에 충실한 막춤으로 엔딩을 장식한다.
4장, 즐거운 꿈은 엣지(Edge) 있는 의상, 강렬한 비트, 유니크한 멋이 느껴지는 Z세대의 무대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5분 내내 쉬지 않는 퍼포머들의 몸짓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가장 큰 호응을 얻은 무대다.
보는 재미와 듣는 즐거움,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연 ‘Dreamer’. 옴니버스 형식의 구성과 음악의 다양한 변화로 꿈의 세계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공연이었다. 출중한 실력을 갖춘 무용수들의 열정 가득한 춤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대구 현대무용의 밝은 미래와 진취적인 면모를 예측하게 한다. 3kim 1jo! 자신만의 인장(印章)을 지닌,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담아내는 예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