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열기 속으로
- 열정, 노력, 메시지, 춤
- 무대 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
제3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2022년 3월 12일 (토) 18:00 / 퍼팩토리소극장
- 주최 : 대구문화창작소, 스테이지줌
- 주관 : 전국안무드래프트전운영위원회
- 글 : 김상우
-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경연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선 자리를 알기 위해 우리는 경연이란 이름으로 서로의 길을 보여준다.
여기, 자신의 길을 확인받고, 인정받기 위해 모여든 젊은이들이 있다. 3회째를 맞이하고 있는 전국안무드래프트전. 7팀이 준비해온 안무와 연출, 의미를 보여주는 자리가 열렸다.
누군가는 심사위원에게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는 관객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무채색의 기다림 끝에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흑색의 무대. 그 아무런 빛깔 없는 무채색의 공간만을 주시하며 고요하게 기다리는 관객들. 조명이 꺼지고, 모든 시각이 차단되었을 때. 모두의 기대와 긴장감, 그리고 심호흡을 하는 들숨 날숨 소리와 함께, 무대는 시작되었다.
19호실로 가다 - 안무 한소희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19호실로 가다 - 안무 한소희
무대의 시작은 정적. 그 정적은 소리의 정적이었으며, 또한 몸의 정적이었다. 그 어떤 음악도 없었고, 그 어떤 춤도 없었다. 단지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각자의 소품 안에 몸을 집어넣고 있을 뿐. 좁고 불편한 물건의 틈에 비집고서 들어간 그들은 마치 아늑한 휴식처에 몸을 뉘인 듯 그대로 멈춰서 정적을 완성시켰을 때쯤, 변화는 시작된다.
소음과 함께 재생된 음악. 아니, 음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신호음처럼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는 전자음이 소리의 정적을 깨자, 모두 자신의 공간을 벗어났다. 이내 다시 모인 그들은 이번에는 경계선 안에서 춤을 춘다.
화려한 손짓과 몸짓, 그들의 춤사위는 마치 어떤 강제력이라도 작용하는 것처럼 제한된 공간에 밀집되어 있다. 잠시 뒤에 경계를 벗어나며 공간이 확장되나 싶었지만, 다시 다른 공간에서 밀집된 춤을 보여준다.
이내 춤이 바닥을 딛는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동작의 화려함은 더해가지만, 밀집된 대열을 흐트러지지 않는다. 화려한 동작과 점프, 파트너의 몸에 의탁한 공중에서의 몸짓도 시선을 빼앗기기 좋았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따로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춤의 흐름 속에서 이따금씩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들만을 향하고 있는 시선에 이 춤을 깊이 새기려는 것처럼, 마치 어떤 주장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 반복되는 동작. 만약 그게 목적이었다면, 그들의 시도는 확실히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휘발되어가는 기억 속에서 그 순간들만큼은 인상이 깊게 남았으니.
무대의 끝은 첫 장면의 데칼코마니. 다시 각자의 소품 속에 몸을 욱여넣었다가, 그 자리에 멈춘 그대로, 한 명의 무용수가 소품들을 거두면서 막을 내린다. 비좁고 답답한 소품, 한정적인 공간과 경계, 반복되는 춤, 신비감을 주는 음악까지 활용한 이 무대는 자신만의 공간, 자신을 위한 영역에 대한 주장과 갈망, 아우성을 소란스럽지 않게 표현해내는 듯했다.
온, 나비 - 안무 이정, 김효경
두 번째 무대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빛. 그리고 그림자였다.
무대는 의자와 함께 시작되고, 의자 위에 웅크린 모습, 그리고 그 아래에서 서서히 시작되는 동작들은 바람길 위에서 하늘거리는 유연함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관객의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손과 몸을 쫓고 있을 때, 무용수의 춤을 보여주어야 할 조명이 순간 꺼진다. 그럼에도 춤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무용수의 손에 들린 작은 불빛의 힘 덕분이었다.
불빛에 의지해 은은한 춤사위가 펼쳐질까, 기대했지만, 다음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지원군이 등장했다.
무용수는 무대 위를 바쁘게 활보하며 몸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다만 불빛을 들지 않은 빈손을 불빛에 가져다 댈 뿐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의 춤은 시작되었다.
섬세하게 건반을 어루만지는 피아니스트처럼 손가락이 움직이자, 빛의 끝이 닿아 있던 벽과 바닥에서 그림자가 화려한 춤사위를 벌인다.
이어서 다른 무용수와 함께 멈춘 자리에서 회오리치는 듯한 손동작이 펼쳐지고, 그와 함께 흔들리는 빛, 그리고 그림자는 5명뿐인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빛과 그림자의 춤 뒤에는 다시 당당한 조명 아래에서 넓은 공간을 활용한 절도 있는 동작. 그리고 다시 어둠과 빛을 이용한 트리키한 무대 연출이 눈의 즐거움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연출의 분위기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들도 긴장감의 고조, 신비감 부여 등의 보조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는데, 끝에 가서는 은은하면서도 감성적인 인디 가요가 흘러나오더니, 빔프로젝트로 비춘 영상과 합을 이룬 춤들이 쓸쓸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빛, 그림자, 음악으로 원하는 서사를 잘 끌고 간 무대였다.
drowning - 안무 김동우, 이현지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drowning - 안무 김동우, 이현지
무대 위에는 단 두 사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저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위로 백색소음이 흐르고, 서서히 움직임이 발생한다.
자신의 몸을 타고 서서히 무너지는 여성의 모습, 그리고 그 주위를 맴도는 남성의 모습. 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넋두리를 보는 것만 같다. 혹은 푸념. 혹은 대화.
한 사람이 질문을 던지듯, 혹은 대화를 건네듯 다가서면, 한 사람은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듯한 답을 돌려준다. 아니, 답이 아니라 어쩌면 그 또한 혼자만의 넋두리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듯한 동작들에 화답하고, 다시 되묻는 두 사람의 춤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서로를 의지해, 아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형태로 두 사람이 얽혀 메타포를 형성해나간다.
넓은 무대 위에는 단 두 사람. 여백은 넘쳐났고, 그 여백과 여백 사이를 오가며 서로 다른 자리에서, 혹은 같은 자리에서 존재감을 키워갔다. 여백은 그들의 놀이터였으며, 그들의 도화지였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한 무용수의 독무대, 아니 독백이 시작되었다. 그 독백은 관객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하는 듯,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춤사위를 보였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고, 다시 묻고, 그리고 나아가는 모습들. 이는 어쩌면 세상이라는 큰 공간에 던져져 자신을 찾기 위해 질문하고, 방황하는 우리네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닐까?
38 - 안무 김민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고 얼룩진 옷. 모여있지만 고독한 듯이 웅크린 모습들이 조명 안에 들어오고, 음악이 시작된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는 스피커가 아닌 무대 안, 조명 밖 그늘진 곳에 선 무용수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섬집아기의 멜로디는, 가냘픈 목소리로 허밍되어 및 아래에 있는 이들의 쓸쓸함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는 듯했다.
허밍이 끝날 때쯤 드러난 조명 아래의 겁에 질린 제스처.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총격 음과 전투기의 비행 음, 아이의 울음소리가 무겁고도 황량한 분위기를 나아낸다.
다 같이 모여 일어난 그들의 모습에 활기란 없었고, 슬퍼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울먹이는 들썩임, 혼란스러움, 피폐함. 그리고 간절함만이 가득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춤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두려움과 고통이 들끓는 격렬하고 격정적인 몸짓. 그리고 무엇에 대한 대항, 혹은 전쟁 그 자체를 모방하는 듯한 폭력적인 움직임.
위험한 지역을 빠져나가는 듯이 몸을 숙인 채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무대를 휘젓는다. 그리고 무리에서 빠져나온 누군가는 뭔가를 찾는 듯 애타는 모습으로 손을 뻗고, 고통스러워하고, 쓰러진다. 조심스러운 움직임 속에서도 쓰러진 이를 모른 척하는 이 없이, 손을 잡고, 함께 이동한다.
지속적으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와 효과음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워하고 겁에 질린 모습들은 전쟁의 참상과 전쟁고아의 괴로움을 깊이 표현하고 있음을 잘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중간에 내지른 출연자의 짧은 비명. 참혹함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음은 알고 있지만, 굳이 포함되지 않았어도 좋았으리라 생각되는 이유는, 그런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겐 그 처절함을 전달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리라.
무마, - 안무 이정민
무대 위에는 불 켜진 조명 하나. 그 아래에 한 여성. 전통 타악기 소리와 함께 드러난 그 모습은 마치 달빛 아래에서 어떤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달로 둔갑한 조명의 불빛에 의지하고 있는 그녀는 이내 정성스럽게 절을 하는 듯한 몸짓을 보였다. 이어지는 차분하면서도 느릿한 고운 춤사위. 그리고 비녀와 쇠그릇을 이용한 소리의 덧셈. 이 모든 움직임은 옅게 깔린 전통 음악의 분위기와 맞물려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의 독무대 이후에는 조명의 영역이 서서히 확장되며 드러난 이들이 의식에 합류하듯 의미심장한 음악에 맞춰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어떨 땐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덩실거렸으나 방정맞아 보이지 않고 신비로웠으며, 어떨 땐 날갯짓을 하듯 부드럽게 선을 그렸다. 그들의 춤은 격렬하게 화려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우아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 소원을 요란하게 소리치기보다는, 강한 마음을 스스로 쌓아 올리는 듯이 정갈하고 자기관찰적인 움직임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더는 소망하는 몸짓이 아니었다. 속박에서 해방이 된 듯한 자유로운 발걸음이 무대 위에 흔적을 남겼다.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련한, 혹은 이겨낸 모습으로 의식을 마치며 안개 속으로 사라져감으로써 신비로운 무대의 막을 내렸다.
회색빛 바다 - 안무 남희경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회색빛 바다 - 안무 남희경
불 꺼진 무대에서는 빛보다 먼저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조명이 켜지면 어딘가를 가리킨 채 입으로 고동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무용수가 보인다.
곧 고동 소리를 그만두고, 곧게 뻗은 손가락만이 나침반처럼 빙글 돌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아니, 어쩌면 나침반과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명확하게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는 나침반의 바늘과는 달리, 그녀의 손가락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으니.
곧 방향을 정했는지, 어딘가로 향하는 그녀. 목적지는 무대 뒤 검은 천막 너머. 그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자, 반대편에서 조심스레 나오는 또 하나의 여인.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고 천막 사이로 오가기만을 몇 번. 드디어 무대로 나와 마주 선 두 사람. 멀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공기 빠진 풍선처럼 등을 굽힌다. 그리고 마주 본 채 웅크려 앉는다. 두 사람에게서 빠져나간 것은 숨이 아니라 어떤 의지 아니었을까.
잠깐의 웅크림이 끝나고, 물결에 휩싸인 듯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일어선 두 사람은 파도처럼, 혹은 파도를 거스르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배처럼 서로에게 부딪히고, 떨어져 나가고, 다시 휩쓸려 부딪힌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휘몰아치던 몸은 기력을 다한 채 한 무용수만이 무대에 남아 바닥에서 허덕인다. 일어날 의지,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잃은 듯이 그저 흔들리기만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손은 바닥을 딛고, 머리는 하늘을 향한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던 다리를 어느새 버둥거리며 바닥에 앉고, 보이지 않는 밧줄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오롯이 자신의 힘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몸을 일으켜 다시 두 다리로 무대 위에 선다.
퇴장했던 여성이 무대로 돌아오고, 두 사람의 거친 항해는 다시 시작된다. 여전히 휩쓸리고, 부딪히거나,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은 않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의탁하고, 때로는 협동하며 물길을 거스른다. 파도는 여전히 큰 장애물이지만,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나아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 어디로 나아갈지, 어디로 나아가는지 모를 힘겨운 항해의 끝에서,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듯 하늘을 보며 곧은 대지 위에 눕는다. 두 사람이 원하던 목적지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발로 디딘 그들의 항해는 웃음을 잃지 않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히키코모리 - 안무 김민혁
한 편의 짧은 연극, 혹은 짧은 인생의 필름을 본 듯하다. 스스로를 히키코모리라 칭하는 남자는 남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의기소침한 행색으로 군중 속을 통과하고, 오로지 그와 스탠드 하나뿐인 공간에서 안식을 취한다.
그의 목소리인 듯한 우울한 내레이션이 자신의 처지를 알린다. 히키코모리, 사람에게 상처 입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아니, 또 다른 상처를 더하지 않기 위해 세상과 단절한 남자.
남자는 말한다. 상처가 된 말들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그래서 남자는 그저 따스하게 빛을 줄 뿐인 스탠드 조명을 유일한 벗으로 삼고 스스로에게 행복을 강요한다.
하지만 사실 그가 정말로 바란 것은 단칸방에서 세상을 단절하고, 친구인 스탠드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평범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평범을 소망하는 그의 춤사위가 간절함을 담아 펼쳐졌고, 그의 친구인 빛무리를 표현하듯이 빛을 달고 있는 이들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소망을 지니고 있지만 더는 버텨낼 힘이 없는 그는 금세 주저앉고, 빛무리는 그를 일으킨다. 덕분에 힘을 내는가 싶었지만, 빛에 둘러싸인 그는 그 틈으로 빠져나온다.
남자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춤들이 이어지는가 싶다가도, 그는 다시 유일한 친구인 스탠드를 끌어안고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끈질긴 빛, 또는 인간, 또는 그 무언가는 그의 성장의 계단이 되어주고, 홀로 남은 그의 곁에 함께 웅크리고 앉아 서로를 의지할 어떤 관계가 되어준다. 그리고 변화는 시작된다.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스탠드뿐이었던 남자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어주려 노력한다. 실패했지만,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그를 감싸는 이들을 떨쳐내지 않고, 그 품을 받아들인다. 스탠드를 향하던 걸음도, 뻗은 손도 멈출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스탠드의 빛을 등진 그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하나가 아닌 여러 사람에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어쩌면 그를 상처입힌 문자들이 그를 떠나지 못한 건, 그가 자신을 가두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제3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심사 장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마치며
필자는 무용 공연 관람이 처음이다. 흔히 무용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화려하거나 격조 있는 음악에 맞춰 부드럽게 하늘거리듯 춤을 추는 무대들. 혹은 발레처럼 백조의 호수 같은 공연을 떠올리기도 한다.
무용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에게도 역시 무용은 그저 멋진 춤을 보여주는 공연이라는 인식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무용은 지난 생각들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었다.
그저 춤이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춤과 무대, 음악, 연출에 녹아들어 있었다. 때문에 다양한 소품과 조명은 물론, 정적도, 멈춤도, 암전도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었다.
특히 연출적인 의미로 아무 행동도 없이 멈춰있는 시간들과 공백이 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용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춤을 추며 행동하는 것이라고만 여겼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는 멈춰 있는 순간도, 무용이었다. 그 모든 게 무용이었다.
이날의 공연은 무용의 한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던 내게 그 뒷장을 보여주었다. 경연의 내용, 성과를 떠나 많은 열정과 의미, 추억이 있는 공연이었다.
만약 무용을 접해본 적 없는 독자라면, 언젠가 한 번쯤은 용기를 내어 무용을 접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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