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유지하는 정체성에 대한 사유 'DIGGING' - 이선민, 김가현
어울아트센터 기획 '유망예술가발굴프로젝트' - DIGGING
2023년 10월 19일, 20일 / 어울아트센터 함지홀
- 글 : 최윤정
- 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삶을 방랑하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 유효한 결론을 내야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10월 19일 어울아트센터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두 가지의 이야기가 움직였다. 이 이야기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타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능성이 미약한 희망을 품고 사는 것과 언젠가 맞이할 죽음에 의미를 찾으며 사는 것 중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한 생각을 곱씹는 순간 당신의 생은 한층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 생각의 태동을 이끌어 줄 이야기가 무대에 존재했다.
모두가 가진 빛바랜 희망 '바다의 아우슈비츠 - 보트피플'
- 안무/출연 : 이선민
- 출연 : 이정민, 임지혜, 김채은
- 공동창작과 음악 : 박희재, 권가연, 백경림, 정규혁
불이 꺼진 극장 안에는 띠링-하는 방울 소리만 울린다. 단 하나의 빛만이 무대를 가리는 막까지 닿아있다. 객석의 가장 뒤편에서 등불을 든 사람이 온 관중을 좌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한순간 관객들이 집중이 단 한 사람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대의 바로 밑에서 한 사람이 힘겹게 무대로 올라갔다. 몇 번을 올라가려 시도하지만 계속해서 떨어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끝내 무대, 보트 위로 올라가길 성공한 사람의 뒤로 여전한 방울 소리와 등불이 비춘다. 막이 올라가고 보트 위에 비로소 예술가의 생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전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다시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도망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희망. 빛바랜 희망은 사람들이 살아갈 힘을 쥐고 있다. 미약한 바램이더라도 그 자체로 생명을 유지하게 한다. 이들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을 갈구하고, 갈망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낯선 것을 경계하는 짐승처럼 그물을 머리에 뒤집어써 앞이 보이지 않아 모든 행동이 가벼우면서도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조심스럽다. 그물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날뛰기 시작한다.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순간 태평소가 우렁차게 숨을 내뱉는다. 그에 건반과 드럼이 리드미컬한 음을 더해 즐거우면서도 한 서린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무용수들은 소리와 조명의 너울에 헤엄치고, 잠수한다. 그들의 세상에 출구가 되어줄 바다로 뛰어든다. 다만, 바다에 대해서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얼마나 깊고, 얼마나 넓고, 육지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잠깐 솟아났던 자유에 대한 기대와 삶에 대한 희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좁은 보트 안은 금세 고뇌와 불안으로 가득 찬다. 한 사람에게서 솟아난 불안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불안은 집단이 되었다.
장구 소리와 꽹과리 소리에 건반 소리가 섞인다. 자칫하면 긴박하기만 했을 곡에 한이 가득 서린 목소리가 치고 들어와 슬프고 불안하며, 급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헤지고 낡은 돛에 얽매인 사람들은 그 돛의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항해의 끝은 불안과 혼란이다. 보트의 마지막 선착장은 영원한 방랑이다.
꽃이 진다.
꽃이 진다.
꽃이 핀다.
여러 생명이 저물고 새로운 세상이 피었다. 그러나 방랑의 끝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와 함께 빛바랜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의 위로 붉은 조명이 덧칠해진 닻이 꽂힌다. 그가 살아남은 세상에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내 바닷소리가 들리고 음악이 잦아든다. 한 세계의 방랑이 끝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메마른 희망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보트 위에서 자유를 꿈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를 책임지기에도 벅찬 모습을 보인다. 책임지지 못할 행동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라 했던가. 타의로 방종의 모습을 띠게 된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죽음은 평등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것 또한 폭력적인 평등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외치는 그릇된 종말이 모습을 띠고 있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 희망이었던 시대에서, 방종이 되어버린 오늘날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마냥 밝기만 한 희망보다 어두워서 단 하나의 빛이 더욱 간절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선 감정을 선사한다.
경험하지 않았기에 환상일 수밖에 없는 죽음 '다이러니'
- 안무/연출 : 김가현
- 출연 : 김리하, 김현아, 남희경, 배효원, 최연진, 한소희
무대 뒤편에 빔프로젝트로 쏘여진 영상은 객석에서 보이는 무대를 근접촬영 한 것이다. 사다리 두 개와 6마리의 거북이가 배치되어 있고 그 뒤에서 달리기를 준비하는 6명의 무용수가 보인다. 이들은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주 느리다. 이들이 거북이인 셈이다. 그들이 움직이는 동작은 아주 섬세하고 느리기에 모든 찰나가 사진같이 느껴진다. 한 명의 돌발행동은 그저 하나의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서정적인 노래와 심장박동을 닮은 노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 사이를 누비는 무용수들은 건조한 심장박동에 갇혔다. 반복되는 일상을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오직 단 한 명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슬픔을 느낀다. 이들은 같은 자리를 고수하며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동적인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와 바닥에 닿지 않고 다른 사다리를 올라간다. 삶이란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여정인가. 이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무용수들은 사다리를 계속하여 오른다.
분명 두 무용수의 동작은 같으나 한 무용수가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인다. 다른 무용수의 움직임을 흉내 내고 있다. 그러나 이내 모방을 벗어나 자신만의 움직임을 창조한다. 주변의 가르침과 조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혼자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모방의 시초였던 대상이 도리어 모방을 시작한다. 모방에서 시작하여 역으로 모방의 대상이 되어버린 존재들은 서로를 흉내 내면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무대의 종막에서 무용수들은 뛰어오른다. 규칙적으로 점프하다가 이내 가쁜 숨소리와 함께 타이밍이 불규칙해진다. 따로 들려오는 음악은 없다. 오직 무용수들의 숨소리만이 가득하다. 뛰다가 지치면 거북이를 뒤집어 놓고 퇴장한다. 거북이를 집어 들고 퇴장을 고민하다가 다시 돌아가 뛰는 무용수도 보인다. 마치 경쟁처럼 그들은 뛰고, 또 뛴다. 인생은 무한한 경쟁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숨이 가쁠 때까지 뛰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채 무대는 끝이 난다.
인생은 무한한 경쟁과 식지 않는 열기로 이루어져 있는가. 치열한 경쟁의 끝에서 얻게 될 것은 무엇인가. 바라는 대로 큰 대가와 사람들의 인정, 해당 분야에서의 성공은 무조건 보장이 되는가. 공연의 끝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마구잡이로 생겨났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침묵으로 일관되었다. 이 무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실험적이었으나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바람 덕이었을까, 바라보지 못한 방면에서 제공되는 새로운 시선이 보였다. 절제된 동작과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 내포된 의미를 되뇐다. 어제의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이 하나씩 떠오르며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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