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투쟁 속에서 안녕을 외치다 '2025 제6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제6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2025년 3월 19일 (일) 오후 6시 / 달성예술극장
주최 : 대구문화창작소, 스테이지줌
주관 :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운영위원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협립매곡문화재단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3월 9일, 벌써 봄이 찾아와야 했지만 아직은 추위가 더 가까운 날씨에 달성예술극장은 평소의 설렘과 달리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6회 전국안무 드래프트전을 심사하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과, 참가하는 팀들을 응원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객석을 채웠고, 작은 웅성거림도 없이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제6회 전국안무 드래프트전은 24개의 팀 중, 10개의 팀이 본선에 올랐고, 1개의 팀이 기권한 채 진행되었다. 작품의 제목과 의도, 내용만 공개된 채 현장 심사가 진행되었고, 오후 6시 정각, 본 경연이 시작되었다.
Labo Project <맞-울림> / 안무 김지민, 안서연
엇갈린 두 사람의 형상이 움직인다. 방향을 달리하며 마주보기도 하고, 서로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시간 차로 인해 달라진 행동은 어긋남을 초래하기만, 이 또한 찰나일 뿐, 그들은 항시 공명하며 동일한 움직임으로 진동한다. 어디까지 같아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몸짓의 간극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팔을 뻗을 때, 다른 한 사람은 다리를 편다. 그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치하는 행동에서 안정감을 주었던 것처럼, 다시 신체의 일부분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실상 온전히 똑같을 수 없는 움직임이 마주 보며 유사해지기를 기대한다.
부딪히고 닮아간다. 자신이 아닌 서로는 외부에 불과하지만, 이 둘이 마주쳤을 때 진동하는 울림은 진폭과 길이를 같이한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작용 할 때 나타나는 모습과 닮아있다. 나의 속도가 상대를 끌어올리기도 하고, 상대의 속도가 과열을 진정시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인 용어로 공명, 맞울림이다.
아리움 <감정의 들판 위에> / 안무 최서연
끝없이 요동치는 초록색 대지 아래, 발버둥 치는 한 존재가 땅을 걷어낸다. 불규칙적이고 충동적인 움직임은 분노와 절제, 평화와 여유 사이를 뛰어넘는다. 정적인 공간에서 허물어지는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평화를 갈망한다. 네 명의 무용수는 모두 같은 옷을 입고, 한 사람의 자아처럼 움직인다. 시선이 닿는 곳에 '나'가 있고, 계속해서 마주치는 나의 모습에 점차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내면에서 발현한 혼란은 독단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때, 또 다른 정서가 무너져 내리는 등을 받쳐준다. 거세게 느껴지기만 했던 흐름이 한결 편안해졌다. 서 있었던 대지를 발로 붙잡아 앞으로 나아간다. 그 아래,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이 각자 하나의 몫으로 자리한다.
인간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을 오롯이 전부 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불필요한 느낌은 배제하고, 알지 못한 것이라도 과장되게 나타낸다. 내면은 썩어가고 내 마음이 진짜 나인지 의심마저 들기 시작할 때,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내가 접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들을 직면하고 표현한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얼굴에 순수한 웃음이 떠오른다. 내가 놓치고 살았던 나의 모습을 다시 되찾기 위해 또 한 걸음 내디뎌 본다.
Project Y <수手를 두다> / 안무 안지윤, 이율비
겹치지 않는 동선으로 백돌과 흑돌이 번갈아 이동한다. 두 개의 흑돌과 하나의 백돌이 바둑판을 형상화 한 무대 위에서 하나씩 놓인다. 발걸음이 겹치고, 타인의 동선과 상관없이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무리를 이루거나 경합을 상징하는 것처럼 얽힌다. 한 수를 잡아채 신중하게 손을 뻗는다. 많은 생각이 조심스럽게 겹쳐지면,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을 가져다 두 바둑돌 사이에 가둬놓는다. 한 번 시작된 승부는 좀체 끝날 줄을 모른다. 바둑돌 위에 얹어놓은 검지손가락 끝에는 하나의 돌도 허투루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다. 겹친 서로의 몸 위로 계속해서 기어오르며 치열한 승부를 이어 나간다. 바둑판 위 돌들이 그저 흩뿌려진 게 아닌,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치열한 바둑 경기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무대 위를 수놓는 이들은 바둑돌 같기도 하고 바둑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략과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바둑을 현재 사회에 빗대어 주변과 호흡하며 상응하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인과 어울리고, 나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 성실히 상응하여야 하는 것, 바둑판 안에 작은 인간관계가 숨어있다. 혼자인 바둑돌은 대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리 지어 있을 때는 더 큰 의미를 품고 비로소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둑의 대표적인 인식은 지략싸움이지만, 계산보다는 인간관계에 더 초점을 두고 얘기함으로써 일반적인 시선을 뒤집어 엎는다.
단춤아트프로젝트 <rimein> / 안무 권보빈
짙은 향내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장례식을 연상케 한다. 머리에는 흰 리본을 길게 매달아, 추모하는 움직임의 뒤로 흰 나비가 따라다니는 것 같이 보인다. 애도와 슬픔, 그리움을 담아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그려낸다. 거한을 하며, 정화 의식을 치르는 행위에서 망연한 마음이 보인다. 비어버린 술병을 불고나니 그리움에 대한 상념이 어렴풋이 형체를 갖춘다. 망자와의 행복했던 기억과 추억이 순식간에 이성을 휘감아 과거로 돌아간다. 신나게 무대를 헤집고,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시간에 취한 듯 몸이 흔들린다. 흥에 들뜬 몸짓이 한창 고조될 때, 기이한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끼어든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과거의 빈자리는 어느새 재가 된 뼛가루가 채운다.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곱고 하얀 가루밖에 없다. 가루를 움켜쥐고 사방으로 흩날린다. 입으로 불어내고, 몸에 묻히며 바람으로, 땅으로, 공기와 함께 띄우며 각자의 방법으로 그리움을 달랜다.
낯설지 않은 향이 극장에 퍼지고, 한정된 공간은 각자의 머릿속에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이 되었다. 무엇보다 빨리 다가와 관객들의 심상을 가장 먼저 건드리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하여 남아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의해 더 멀리 퍼진다. 그리움과 회상, 애도. 이 일련의 과정이 기억의 단편처럼 흘러가고 남은 자리에는 내일이 남았다. 남겨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하루들이 고스란히 머물러있었다.
CCC Dance Company <AZ:T> / 안무 이정희, 최가은
불안정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올라타 있는 곳은 나만의 아지트를 형상화한다. 공간은 온통 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포근히 감싸준다. 흐르는 시간은 성장을 이룩해내고, 커버린 몸과 마음은 변형을 일으킨다. 그 틈은 커지고 넓어져 어느새 또 다른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가득한 과거의 틈에서는 온기와 사랑이 묻어난다. 손가락 사이로 들여다본 과거에 넋이 나가, 성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친근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다다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다시금 손가락 새로 유년 시절을 그려내 본다. 평온을 갈구하는 마음과 과거의 향수는 쉽게 어우러지지 않는다. 뒤쫓고 헤매지만 좁아져 버린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다. 여정의 끝에 다다라서야 갈구하던 평안을 만났다. 포근하게 감싸주던 지난날의 공간이자 안식처가 될 영역이었다. 그러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육체가 가로막히고, 엿보던 틈새도 메워졌다. 끝내 만날 수 없었다.
과거에 아지트로 기억할 만한 공간이 있는가. 있다면, 꽤 시간이 흐른 지금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어린 시절의 향수가 주는 평온과 온기는 매일 다가오는 불안과 걱정에 이미 씻겨나간 지 오래다. 무감각은 회의를 부르고 다시 예전을 회상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또 다른 나이다. 현재의 내가 성취한 것들이 주는 평화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낯설지 않은 오래전 잃어버린 자신의 영역을 다시금 구축한다.
Industrial Move Fac <Bon appetit> / 안무 박윤아
트레이 위에 놓인 하나의 은쟁반은 열리지 않은 채 손 위에서 흔들린다. 누군가 뺏어가기라도 할까, 무용수는 은쟁반을 손과 품에서 좀체 떼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냄새를 맡고 상상하며 행복과 안도를 느낀다. 쟁반을 바닥에 놓아두고 멀어지려 하지만, 허기에 잡아먹힌 사람처럼 어떻게 해서는 은쟁반의 곁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성을 지배한 식욕을 이기지 못하고 냄새를 맡는다. 집착에 가까운 움직임은 본성에 가깝다.
식욕은 식념을 끌어들인다. 맞붙은 욕심은 서로를 구속하고 옭아매어 하나의 육체를 지배하고자 한다. 붉은색 천으로 얼기설기 엉켜버린 이들은 서로의 숨통을 움켜쥔다. 그 상황에서도 허기는 가시지를 않고, 탐욕은 끊이지 않는다. 그때, 얽힌 식욕의 사이로 주인이 등장한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욕망을 물고 만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바닥에 끌리고 기어다니며 불온한 감정의 사이를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달려드는 식욕을 뿌리치고 마침내 닿은 쟁반 안에는, 고기를 가장한 탐욕이 담겨있다. 불순의 잔재를 끊임없이 먹어 치운다.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만족이 아닌 자신의 목을 옭아매는 목줄이다.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매개체는 기다렸다는 듯, 주인의 목을 매달아버린다. 식욕에 눈이 멀어버린 자의 말로를 보았다.
'Bon appétit'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뜻과 동시에 '빨리 먹어'라는 비꼼의 명령조 또한 포함하고 있다. 식욕이라는 형체 없는 감정이 붉은 천과 함께 시각화되어 인간을 옭아매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게 한다. 욕망이 극단적으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함께 끈질기게 들러붙는 덩어리진 불순한 감정에 관해 이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는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Project Group Soar <Dear. To my young self> / 안무 장예성
머릿속에 명령조에 가까운 단어들이 들려온다. 일어서, 앉아, 숨을 쉬어, 눈을 떠, 눈을 감아, 안아 등과 같은 원초적인 말에서 곧바로 떠오르는 행동을 충실히 이행한다.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저 명령을 받은 로봇들처럼 말이다. 이들의 힘이 풀어질 때는 오직 '쉼'이 들려올 때뿐이다. '깨어나', '멈춰', '유지해'와 같은 정적인 단어들이 흘러나오면 이들은 온몸에 힘을 준 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오류를 일으킨 듯, 같은 단어를 쉼 없이 반복하면 동작을 되풀이하다 어긋난 채로 멈춰버린다. 저항 없이 수행되었던 동작들은 거듭될수록 잦은 착오를 불러일으켜 입력된 동작을 제대로 차출해 내지 못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며 부조리를 느낀 남자는 처음으로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인다. 이후 아무리 명령을 퍼부어도 이전처럼 순종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명령이 어지럽게 느껴지며, 앞을 볼 수 없는 눈을 비빈다. 현재가 가려진 세상에서 이상을 보기를 원한다. 순간적인 충동에 눈을 가리던 어둠을 걷고 세상과 마주했다. 그 순간 조명이 꺼진다. 빛은 찰나를 가르키는 지표였다.
나이든 내가 과거의 나에게.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는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훈계하고자 하는 활자가 아닌 그날의 풍경을 회상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산을 올랐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때는 그저 좋고 말았을 순간에 미래의 나는 어떤 것을 통찰했다.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부조리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과거의 나에게 닿지 않을 편지를 전해서 시간의 틀을 깨부수려 한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 주워 담은 미래를 한 조각 담아 중첩되는 발걸음 대신 앞으로 전진하려 한다.
Cool Dance <Own Time> / 안무 차시원
걷는다. 누군가를 잡아채 넘어뜨리기도 하고, 보행하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각자 고유의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지만,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타인의 방해로 가야 할 길이 막혔다. 깨부수고 넘어서려 애쓰지만 꿈쩍도 않는다. 포기하고자 했을 때, 다시 달려들었다. 밀릴 것 같지 않던 등이 물러났다. 내면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에 속도를 맞춘다. 일정한 규칙을 지키듯 움직이는 사람들 주위를 뛰다가, 똑딱이는 시계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자로 잰 듯 움직이던 사람들의 행동이 불규칙해졌다. 각자의 뜀박질 안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뜀박질을 따라갈 수 없다. 이내 무리에서 벗어난다. 제3자의 시점에서 내부를 들여다본다. 제자리에 다시 누워 자유를 택한다.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간다.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 빨라진다. 결코 느려지는 법 없이 가속하기만 하는 속도는 시계의 초침과 다를 바 없다. 그 속에서 버텨내는 것은, 이미 오래전 사라져 버린 이야기이다. 앞이 막혀도 돌파해야 하고, 뒤돌아가는 것은 낙오로 분류된다. 잠깐 멈춰 선 시야로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숨을 크게 쉬고, 다시 발을 놀린다.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이 무대 위에 그대로 녹아있다.
Murmur <에로스를 위한 투쟁> / 안무 김윤아
작은 나무 상자 안으로 벌거벗은 등이 보인다. 그 뒤로 상자를 탐내는 어두운 탐욕이 뻗어 나온다. 기이할 정도로 인위적으로 움직이며, 바깥으로 나온 사람은 옆에 들이닥친 욕심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킨다. 그가 탐내는 것은 작은 상자인지, 그 안에 든 무용수인지 모호할 정도로 집요하다. 작은 나무 상자는 마음이다.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치열한 쟁탈을 벌인다. 온전히 그 공간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빼앗은 자리는 아무것도 없고, 곧 그 안에 속했던 것이 소중한 대상이라는 걸 깨닫는다. 밖으로 나와 원래의 세상을 돌아본다. 순간 눈앞으로 어둠이 드리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깨 위에 무게만 느껴질 뿐이다.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키던 두 사람은 다툼에 지친 사람들처럼 하나의 합을 이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쟁탈이 끝을 보이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실을 끌어당기며 사랑의 원초적인 의미를 곱씹는다. 색이 담겨있지 않기에 각자의 색을 뒤집어씌우기 쉬운 실을 통해 가까워지며, 마무리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이 끝을 맞이한다.
어떤 종류의 사랑을 위해 투쟁하는가. 동성애, 가족애, 우정과 같이 지켜내고자 하는 특별한 감정을 치열한 갈등 끝에 쟁취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다. 이해하기에 사랑할 수 있고, 연민에는 이해가 동반된다. 주먹만 한 심장을 가득 채운 마음을 위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투쟁하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현시대를 비판하고, 계속해서 야기되는 사회문제와 개인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할 여지를 주는 9개의 작품은 각자가 생각하는 주제 의식이 저마다 소리를 내는 무대였다. 이런 작품들로 무대를 가득 채운 2025 제6회 전국안무 드래프트전의 종합부문에서는 Cool Dance의 <Own Time>’(안무 차시원)이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이어 금상에 Project Group Soar <Dear. To my young self>(안무 장예성), 은상에 CCC Dance Company <AZ:T>(안무 이정희, 최가은), 단춤아트프로젝트 <rimein>(안무 권보빈), Industrial Move Fac <Bon appetit>(안무 박윤아), 동상에 Project Y <수手를 두다>(안무 안지윤, 이율비), 아리움 <감정의 들판 위에>(안무 최서연), Murmur <에로스를 위한 투쟁>(안무 김윤아), Labo Project <맞-울림>(안무 김지민, 안서연)이 뒤를 이었다.
작품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은 Cool Dance <Own Time>이 수상하였고, 우수작품상에 Project Group Soar <Dear. To my young self>, 단춤아트프로젝트 <rimein>, 특별상에 CCC Dance Company <AZ:T>가 이름을 올렸다.
무용수부문에서는 Project Group Soar의 김승욱이 최우수무용수상을, 단춤아트프로젝트 권보빈, Cool Dance 김예원, CCC Dance Company 최가은이 뒤를 이음으로써 2025 제6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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