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펼쳐지는 감각과 배움 '다시 추는 춤, 함께 추는 춤 in 부산'
K ARTS
다시 추는 춤, 함께 추는 춤
2024년 12월 8일 (일) 16:00 /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12월 8일, 싸늘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로비는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학생들이 부산에서 펼치는 '다시 추는 춤, 함께 추는 춤 in 부산' 무대를 보기 위해 부산 시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골고루 응집하여 이 무대에 대한 기대가 한 눈에 여실히 들어왔다.
무대에는 하얀 댄스플로우가 깔려 있어 문득 설원이 떠올랐다. 겨울인 탓이다. 오후 4시, 객석 등이 꺼지고 서서히 음악이 깔린다. 첫 번째 무대, '놀음'이 시작이다.
놀음
- 안무 정재혁
- 조안무 정혜지
갓을 쓴 사람이 나와 한량처럼 걸어 다닌다. 그 뒤로 하얀 치마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온다. 그들은 사람의 행태를 하고 있지만,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마치 이 하얀 무대 위가 화선지라도 된 것 같이 그림 속 동물처럼 행동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지극히 충동적이고 본능에 충실하다.
이런 육감적인 움직임의 아래로 클래식의 운율이 흐른다. 청각적 서양의 문화와 시각적 동양 문화의 혼재는 이질적이면서도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뿐사뿐 새처럼 걷는 사람의 발이 무대를 딛고, 그 밑에 강처럼 음표가 받쳐주고 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동선이 민화 속에 나오는 풍경의 잔재처럼 남아있고, 이 무대를 보는 관객들은 낯선 방식에 눈을 떼지 못한다. 흰 붓으로 그리는 화선지의 선들이 소담하게 빛나고 무용수들의 발이 그 붓이 되어 무대를 한바탕 휩쓸어버린다. 하얀 배경 위에 펼쳐진 민화 속 '놀음'이다.
'동래학춤'과 바흐의 음악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이 무대는 양반들의 격식 있는 춤사위와 서양 귀족들의 음악을 재해석하여 다각적인 시선으로 보게끔 한다. 이 두 장르는 시대와 나라를 건너 형태가 닮아있고, 이는 이 무대를 보는 시각과 청각의 괴리가 없게 든만다. 이 놀음의 주체인 양반은 동물들이 뛰놀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간격II
- 안무 김삼진
- 조안무 김성
서로의 간격이 적당하리만치 유지되지 않은 채로 시작한다. 밀어내고, 밀려난다. 잡아채고, 빠져나간다. 이들의 간격은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심리적으로는 아주 멀고, 물리적으로는 손에 닿을 듯하다. 세상에 '나'를 표출하지만, 그 뒤로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 틈에서 관계가 발생한다. 마지막까지 이들은 결코 접촉하지 않고 멀어지기만 한다. 자석의 N극과 N극이 만나지 못하듯이, 영원히 만나지 않은 채 불편한 말을 쏟아내고 멀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간격을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밀어낸다. 세상에 만연한 인간관계의 응집이다.
사회에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생기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그 인간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하고 특정 인물과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사람은 늘 그 간격을 지키고, 적당한 거리를 찾으며 살아간다. 서서히 멀어진다. 또한 가까워진다. 형체 없는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어든다. 사람 사이의 간격이 생긴다.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봄의 제전 2부
- 안무 안성수
- 조안무 이주희
변화무쌍한 움직임이 관객들은 황야로 이끈다. 둔탁하고 폭력적으로 움직이는 괴물은 그 사이에서 유독 튀어 보인다. 계속되는 변주에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을 선보이는 이들은 원시적인 움직임에 가까운 무대를 선보인다. 내레이터는 그 과정을 움직임으로 풀어내며 사람들 사이에 괴물을 풀어놓는다. 무대 위 제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긴장감만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만을 고민하며 신중하게 움직인다.
하나하나의 개인만을 놓고 보면 날카로운 움직임을 선보이지만, 모두가 덩어리져 하나의 움직임을 선보일 때,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고통의 과정이 한눈에 드러난다. 쫓고 쫓기며, 서로를 미워하고 상처입힌다. 괴물의 존재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원안이 악한 것일까.
봄의 제전 2부는 이전에 공연한 1부 마지막 장 음악으로 지난 줄거리를 축약하고, 본격적으로 2부를 열어젖힌다. 괴물의 존재는 눈에 띄지만, 이 괴물의 존재로 인해 이 사람들이 서로를 상처입힌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이 이에 맞서지만, 공동체는 없고 개인만이 남아 서로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희망과 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원시적인 움직임과 욕망만이 남아 이들의 봄을 불태운다.
The Past and Future are in the Present
- 안무 Kara Jhalak Miller
- 리허설 어시던트 Cy Higashi, Katelyn Wyatt
- 지도 김서윤
영원히 앞서있다. 또한 영원히 뒤에 서 있다. 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무대에 공간감을 유지한다. 이들의 생에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잊은 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무대를 헤집어 놓는다. 달려 나가는 발 앞에 손이 닿고, 손이 닿는 곳에 현재가 있다. 지나간 시간을 뒤로 하고 앞서가는 시간을 붙잡아 현재에 묶어두려 하지만, 고정된 시간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지나가는 시간을 최선으로 살아낸다. 옆에서 달려 나와 팔을 앞과 옆으로 뻗는다. 뒤에서도 다리를 찢어서 바닥으로 발을 뿌리내린다. 이들의 움직임은 모두 과거의 잔재로 남지만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거침이 없으며 날렵하게까지 느껴진다.
하타요가와 현대무용을 합쳐 이들의 무대는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러면서도 조명 아래에서 붙잡을 수 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저항하지 못한 채 흘러가기만 한다. 그러나 이들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과거는 조금 전의 현재이고, 미래는 조금 뒤의 현재일 뿐이다. 이들이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지금'은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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