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록소개       필진소개       예정/지난공연       리뷰+사진=무록      무용사진      인터뷰       리뷰(링크)      공지사항       .고.       달성예술극장
리뷰+사진=무록

놓아버린 마음을 들여다보는 나의 이야기, 이야기춤 '무의식의 숲'

- 제28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이야기춤무용단

 

제28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이야기춤무용단

2022년 6월 18일 (토) 18:00 / 퍼팩토리소극장

 

- 주최 : 대구문화창작소, 스테이지줌

- 주관 : 이야기춤무용단

- 글 : 김상우

- 기획/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문화뉴스 기고 바로가기

http://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9856

 

 

지난 6월 18일, 이야기춤무용단의 <무의식의 숲>(안무 박예지)이 대구 퍼팩토리소장에서 막을 올렸다.

어려운 전공 서적 같은 무용이 아니라, 동화책처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무용을 목표로 하는 이야기춤은 이번 공연에서 주체적인 삶과 개인의 행복을 이야기했다.

 

 

이야기춤1.jpg
이야기춤 - '무의식의 숲' 안무 박예지 ⓒ이재봉

 

 

서서히 밝아지며 드러난 무대는 예상외의 모습이었다. 약간의 당혹감을 선사한 무대 위 소품의 정체는 찰흙. 찰흙으로 만든 기둥이나 그릇 등이 무대의 앞쪽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앞에 웅크려 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 무용수는 쌓여있는 찰흙 더미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어루만지고, 바라보고, 쌓아 올리고. 던지고. 무용수 자신의 몸 위에 올려두거나, 맨발로 올라서서 밟기도 했다.

그것은 춤이라기보다는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순수함을 몸으로 나타내는 무성 연극과도 같았다. 호기심 많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

 

 

이야기춤2.jpg
이야기춤 - '무의식의 숲' 안무 박예지 ⓒ이재봉

 

 

정신분석학의 문을 연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빙산에 빗대어 표현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은 의식, 수면 아래, 가장 하단에 있는 빙산의 뿌리는 무의식에 해당한다.

<무의식의 숲>에서는 빙하가 녹아 흙으로, 그리고 그 흙이 만들어낸 숲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이미지를 나타냈다. 문자 그대로 무의식의 숲에 선 무용수가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은 인간의 빙산 아래에 잠재된 것들을 꺼내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찰흙 퍼포먼스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가지. 하나는 하트 모양의 찰흙을 자신의 가슴에 문지른 것. 무용수의 손에 짓눌린 찰흙은 그녀의 흰옷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무의식의 더미 속에 묻어놓았던 자신의 감정을 꺼내 심장에 새긴 것처럼 보였던 그 퍼포먼스는 사회 속에서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기 위해 내려놓은, 혹은 포기해야 했던 소중한 감정들을 되찾는 모습 같았다.

두 번째는 하트를 담아놓았던 그릇을 가면처럼 쓰는 퍼포먼스. 아무런 표정도 없던 그 가면에 무용수 스스로가 웃는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 직후 가면을 찢으면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가면처럼, 아니 가면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가 웃음을 새겨 넣은 것은 가면이 아닌 자신의 얼굴 아니었을까.

이렇듯 전체적으로 찰흙이라는 소품을 단순히 전시처럼 보여주는 오브제의 역할로만 사용하지 않고, 찰흙의 특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활용한 퍼포먼스들이 눈에 띄었다.

찰흙 외에도 여러 소품을 사용했는데, 청아한 소리가 매력적인 싱잉볼로 연주를 하기도 했고, 무대를 대각선으로 갈라놓듯 길게 늘어진 흰 천을 자유롭게 사용하기도 했다.


 

이야기춤3.jpg
이야기춤 - '무의식의 숲' 안무 박예지 ⓒ이재봉

 

 

저 천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궁금해질 때쯤, 끄트머리에 서서 위아래로 천을 펄럭이는 무용수. 그 움직임에 따라 천이 일렁이며 물결을 만들어냈다. 파란 조명을 입은 채 일렁이는 모습은 푸른 호수의 윤슬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낸 물결 다음에는 무용수가 직접 물결을 만들었다. 천 아래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실루엣만이 천 너머로 보였다. 도중에 멈춰서 흥겨움에 취한 몸짓을 보여주기도 하며 천 밖으로 나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퍼커시브 스타일의 기타 음악에 맞춰 흥을 중시하는 즐거운 춤이었다. 빙글 돌기도 하고, 긴 천의 끝에 붙어있던 부채를 쥐고 흔들거나 천을 입는 등, 다시 천을 활용하기도 하고. 무대를 누비며 그 시간 자체를 즐기는 듯 한 모습이었다.

자유로운 춤의 순간도 잠시. 물소리와 함께 흐름이 변했다. 물속을 떠돌듯 허우적거리다가, 급류에 휩쓸리듯 어지럽게 흔들리는 무용수. 그녀의 수중 방황은 공연 초반에 쌓아 올렸던 찰흙의 탑을 스스로 무너트리면서 끝났다.

물살에서 해방되었지만, 어딘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의 춤이 이어졌다. 바닥에 누워 뒹굴고, 헤매다가 웅크리고 앉는 그 몸짓들은 방황이거나, 혹은 싹이 움트기 전의 태동.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활짝 피어난 자유로움. 지금껏 펼쳐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무대 위에 그려가며 축적되었던 에너지를 한 번에 발산해냈다. 빠른 물살도, 고민도, 그녀를 잡아둘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야기춤4.jpg

이야기춤 - '무의식의 숲' 안무 박예지 ⓒ이재봉

 

 

격렬하게 춤을 추는 동안 힘들 법도 한데, 괴로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몸 안에 활력과 행복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무대는 몸 안에 남아있는 것을 남김없이 태우고 난 후에야 환한 미소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얽혀있다. 그것들은 길게 이어진 도미노처럼 유기적이어서 하나라도 무너트릴까, 조바심을 내며 살고 있다. 그 도미노를 지키기 위해 참 많은 것을 포기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가 스스로 밀어낸 마음의 바닥에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쌓일 뿐.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무너진 도미노를 다시 세울 각오를 하고 우리 무의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나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무의식의 숲>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


  1. 220824 / 추억을 회상하며, 새로운 추억을 더하는 젊은 춤꾼들의 행복한 시간 – 루카스크루 'NOSTALGIC'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추억을 회상하며, 새로운 추억을 더하는 젊은 춤꾼들의 행복한 시간 – 루카스크루 'NOSTALGIC' - 제30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루카스크루 제30회 퍼...
    Views97
    Read More
  2. 220823 / "클래식부터 모던발레까지"…대구 소극장에서 즐기는 발레공연, 제3회 올댓발레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클래식부터 모던발레까지"…대구 소극장에서 즐기는 발레공연, 제3회 올댓발레 - 제3회 올댓발레 제3회 올댓발레 2022년 8월 6일 (토) 18:30 / 퍼팩토...
    Views66
    Read More
  3. 220806 / 무용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음의 3중주, 제24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by 김상우 /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무용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음의 3중주, 제24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 제24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제24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2022년 7월 30일 (토) 1...
    Views78
    Read More
  4. 220715 / 인생을 주고받는 춤의 대화, 3김1조 ‘방랑자들’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인생을 주고받는 춤의 대화, 3김1조 ‘방랑자들’ - 제29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제29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3김1조 '방랑자들' 2022년 7월 9일 (토...
    Views106
    Read More
  5. 220707 / 서로의 다름으로 채워나가는 삶, 놀무용단 ‘아싸인싸’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서로의 다름으로 채워나가는 삶, 놀무용단 ‘아싸인싸’ 대구애서愛書 시리즈 5 - 놀무용단 '아싸인싸' 2022년 7월 2일 (토) 18:00 / 퍼팩토리소극장 - ...
    Views100
    Read More
  6. 220625 / 놓아버린 마음을 들여다보는 나의 이야기, 이야기춤 '무의식의 숲'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놓아버린 마음을 들여다보는 나의 이야기, 이야기춤 '무의식의 숲' - 제28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이야기춤무용단 제28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
    Views107
    Read More
  7. 220610 / 대구무용제, 제31회 전국무용제 출전권을 두고 역량 겨뤄 by 김상우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대구무용제, 제31회 전국무용제 출전권을 두고 역량 겨뤄 - 제31회 전국무용제 예선, 제32회 대구무용제 제31회 대구무용제 2022년 6월 5일 (일) 19:00...
    Views78
    Read More
  8. 220608 / 스스로 빛을 낼 준비가 된 젊은이들의 축제 ‘홀로춤’전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스스로 빛을 낼 준비가 된 젊은이들의 축제 ‘홀로춤’전 - 제1회 대구문화창작소 홀로춤전 제1회 대구문화창작소 홀로춤전 2022년 5월 21일 (토) 18:00 ...
    Views80
    Read More
  9. 220520 /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시간, 전통춤의 아름다움 속으로 ‘제4회 한춤페스티벌’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시간, 전통춤의 아름다움 속으로 ‘제4회 한춤페스티벌’ - 제4회 한춤페스티벌 제4회 한춤페스티벌 2022년 5월 7일 (토) 18:00 ...
    Views104
    Read More
  10. 220507 / 삶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과 끝을 받아들이는 반짝임, ‘반짝반짝 그 찬란한 날’ by 김상우 / 대구학생문화센터 소극장

    삶의 끝에서 또 다른 시작과 끝을 받아들이는 반짝임, ‘반짝반짝 그 찬란한 날’ - 카이로스 '반짝반짝 그 찬란한 날' 2022년 4월 28일 (목) 19:30 / 대...
    Views71
    Read More
  11. 220413 / 젊음이 피워올린 두 가지 꽃 - 루카스크루 'DOUBLE BILL', 안무 김민수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젊음이 피워올린 두 가지 꽃 - 루카스크루 'DOUBLE BILL' 제27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루카스크루 'DOUBLE BILL' 2022년 4월 09일 (토) 19:30 / 퍼...
    Views99
    Read More
  12. 220401 / 인간이 인간으로,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춤추다 - 이야기춤 '따라하기 - 한 사람이 구성되기까지' by 김상우 / 수창청춘맨숀

    인간이 인간으로,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춤추다 - 이야기춤 '따라하기 - 한 사람이 구성되기까지' 수창청춘극장 2022 수창은 사랑이야 #1 - 이...
    Views77
    Read More
  13. 220324 /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기다리는 반전 - 박진미무용단, '또 다른 시작, 반전의 서막' by 김상우 /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기다리는 반전 - 박진미무용단 프로젝트 2022 '또 다른 시작, 반전의 서막' 박진미무용단 프로젝트 2022 '또 다른 시작, 반전...
    Views77
    Read More
  14. 220316 / 노력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열기 속으로 - 제3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by 김상우 / 퍼팩토리소극장

    노력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열기 속으로 - 열정, 노력, 메시지, 춤 - 무대 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 제3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2022년 3월 12...
    Views7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
Copyright 221008. 무록. All rights reserved.
전화 010.6500.1309  메일 pptory@naver.com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225-3 대구문화창작소
사업자등록번호 883-86-00715
43
21
2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