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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여과, 상상의 거울 ‘제26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제26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2024년 04월 26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하철에서 내려 노을이 비치는 성당못을 지나면 한창 경연이 준비되고 있는 공연장이 보인다. 4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는 또 한 번의 청춘이 들끓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다양하다. 마침 오는 길을 장식했던 노을과, 그날을 빼닮았던 현실이 무대 위에 정제된 채 그려지고 있었다. 객석 등이 꺼지는데 이상하게 관객석은 밝다. 뒤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비로소 경연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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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set> 안무 박소희

 

찬연한 오늘과 불안한 내일의 경계 ‘Before Sunset’

- 안무 박소희

- 출연 궁다빈, 배진아, 조은정, 정승환, 박소희

- 의상 김도경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네요.’

 

익숙한 노랫소리가 객석의 뒤에서부터 들려온다. 무대 위에는 초록색의 잔디가 찬연히 깔린다. 맨발의 사람들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여름’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러나 그 위에는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움직임과, 예상을 모두 빗겨나가는 충동적인 동작들이 존재한다. 행위에 담긴 염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리드미컬한 기타 선율 위에서 그들은 심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무대의 한구석에 주황색 조명이 작게 비치고, 사람들은 빛을 향해 다가간다. 그러나 두려운 듯 고개를 돌리고,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지당한다. 모두가 원하지만 갈 수 없는, 두려워하면서도 빛의 너머를 꿈꾸는 사이 작열하는 주황빛 아래 한 사람이 미끄러진다. 잔디의 한 구역을 물들인 노을 속에서 여자는 미친 듯이 춤춘다. 노을 아래 격렬하고 파괴적인 동작은 점점 잔디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동화시킨다. 동시에 푸르른 빛을 뽐내던 잔디밭은 주황색의 노을빛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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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set> 안무 박소희

 

약속된 대형은 한 사람의 어긋남으로 무너지지만, 마치 낙오된 것처럼 비어버린 틈새를 다시 메꾼다. 무리의 규칙을 어긴 그는 노을의 아래에서 무엇을 느낀 걸까. 그들이 행하는 장례의 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빨갛게 노을 지는 하늘은 아름답다. 동시에 무서운 장면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 이미지의 차이에서 오는 건 노을을 보는 사람과, 그 사람에게 비친 노을의 온도이다. 이들에게 노을은 불안이다. 노을은 내일과의 경계를 가져다주기에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품는다. 불안에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들은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의 끝은 다시 찬연한 잔디밭 위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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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Sunset> 안무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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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se 일시정지> 안무 박지윤

 

발이 멈춰 선 곳, 내가 멈춘 시간 ‘Pause 일시정지’

- 안무 박지윤

- 출연 김윤형, 이민근, 김민지, 노아연, 박지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은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다. 서류 가방을 들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업무 전화를 받는 행위는 여러 사람을 거치며 되풀이된다. 무용수들은 상대의 행위를 뺏고, 타인에게 빼앗긴 행위는 또 다른 행위로 대체하며 평범한 일상을 모방한다.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제한 시간을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사람들처럼, 쫓기고 쫓는다. 시간으로부터 쫓기고, 책임과 돈을 좇는다. 마른세수가 반복된다. 들리지 않는 한숨이 보이는 것만 같다. 이들은 지쳤다, 행위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대를 마구잡이로 달리던 이들은 한 사람씩 발을 멈추고 서로에게 의지한다. 두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네 사람으로 늘어난 의지는 쉼터가 된다. 격렬했던 이전과 다르게 정적이고 무기력한 에너지가 무대 위를 가득 채운다. 이들의 몸을 갑갑하게 누르고 있던 정장들이 타인의 손에 의해 벗겨진다.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해,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한 그는 자기 손으로 책임을 벗어던진다. 과열되어 버린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쉼이다. 쾅. 켜져 있던 노트북이 덮이고 동시에 조명이 꺼진다. 이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은 어둠은 억압된 사회로부터 이들을 가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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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se 일시정지> 안무 박지윤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뒤로, 옆으로 걸어가서 다시 원점으로 가기도 한다. 나침반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방향을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 무지를 열정으로 채운다. 과열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육체를 붙들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II, 잠시 멈추는 것은 새로운 걸음을 위한 도약이라고. 전환의 날이 길어질지 짧아질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전환 이후에 우리는 시한폭탄이 사라진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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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se 일시정지> 안무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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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총량의 법칙> 안무 조혜원


터져 나오는 내면의 소리 ‘인생총량의 법칙’

- 안무 조혜원

- 출연 김리하, 배세은, 백묘정, 조혜원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가 걸어가서 멈추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진다. 조명을 즐기다가, 한 곳에 멈춰서서는 몸을 꿀렁거린다. 뒤이어 흰옷을 입은 여자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귀를 낚아채는 날카로운 소리가 폭력적으로 다가오며,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가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다리 사이에 넣은 채 굴린다. 일종의 폭력이다.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둔탁하다. 비규칙적이며 청각을 예민하게 자극한다. 무대에 혼자 남은 무용수는 그에 맞추지 않는 것 같지만,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규칙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규칙의 윤곽이 존재한다. 동작과 음향이 맞아떨어질 때 묘한 쾌감이 들지만 단지 그뿐, 그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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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총량의 법칙> 안무 조혜원

 

모두가 퇴장한 무대 위로 회색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기괴한 전자 음향 마찰 소리가 영어와 함께 공간을 울린다. 그녀가 걷기를 시작했다. 흑과 백이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하여 명암과 중간을 완성한다. 통일된 안무에서 그들이 같은 인간에게서 파생된 것임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또 다르다. 이들의 내면은 혼란하고, 그 때문에 이들의 정체는 관객의 상상력을 토대로 완성된다.  

 

이들의 움직임은 내면의 충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외적으로 표현되는 음향은 폭력적이지만 그들의 행위는 부드러우며 거칠지 않다.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명확히 구분 지어 표현할 수 있는가.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명확히 구분 지어지는 명과 암처럼, 행복과 불행의 이름표를 분명히 달아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이름표에 영원이란 없다. 이들은 행복과 불행은 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급해하지 말라고도 표한다. 내면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그 조급함을 티 내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무것도 넘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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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26회 전국차세대 안무가전 대상은 윤슬팀의 <Pause 일시정지>가 수상하였다. 이어 최우수상은 뽕잡화점의 <Before Sunset>이, 우수상은 클라인플라츠무용산의 <인생총량의 법칙>이 수상했다. 안무상은 대상을 받은 윤슬팀의 박지윤이, 연기상은 ‘뽕잡화점‘의 박소희, ’윤슬‘의 이민근, ’클라인플라츠무용단‘의 백묘정이 수상함으로써 제26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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