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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한국의 얼, 얼을 깨운 사람들 '손혜영 아정무용단의 춤 - 문을 열다’

 

달성예술극장 개관기념공연

손혜영아정무용단의 춤 '문을 열다'

2024년 04월 10일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꽃이 만개하던 봄, 4월 10일 달성예술극장에서는 극장 개관기념 공연인 '손혜영 아정무용단의 춤 - 문을 열다'가 상연되었다. 극장이 북적북적할 정도로 가득 찼고, 객석 전체에 설레는 마음이 번져 관객들은 제각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전통무용을 찾아온 관객들은 공연 중에 박수를 치기도 하고, 판소리 무대에는 추임새를 넣으며 신명 나게 즐겼다. 객석 등이 꺼지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대모반으로 무용수가 들어오는 순간, 본격적인 공연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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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향

- 출연 : 류언선


무대 위에 홀로 위치한 대모반은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한다. 대모반은 독무인 무산향이 진행되는 이동식 무대로, 침상과 같은 모양을 지닌다. 불이 꺼지고, 대모반의 입구에 위치한 무용수는 안으로 들어와 정중하고 고요하게 인사하며 무대를 시작한다. 


무용수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비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며 극도로 절제된 몸짓을 선보인다. 무산향을 공연하는 목적은 부왕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는 감상하는 사람을 의식하며 공연이 이루어나간다. 대모반 둘레를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중앙으로 되돌아오며 분위기를 정돈시키기도 한다. 무용수는 혼자서 대모반 위를 지배해나간다. 부왕의 기쁨을 바라며 이성적인 움직임으로 이루어졌던 몸짓의 연속은 긴 시간을 거쳐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대모반이라는 작은 틀 안에서 진행되는 움직임은 기계적일 정도로 절제를 지키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서도 섬세함이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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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춤 죽청난향竹靑蘭香

- 출연 : 장윤정, 서보근, 안주연, 이서현, 최다민


음악 장르의 하나인 ‘산조’에 맞춰 추는 산조춤은 손혜영 아정무용단의 손에서 ‘죽청난향’이라는 부제를 달고 무대로 나왔다. 무대는 화선지 위로 붓이 휘갈겨지듯, 자유로우며 유연하지만, 어느 정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듯 규칙적이다. 나룻배를 탄 것처럼 흘러나오는 가락 위를 유영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은 교태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난초잎 같은 연두색의 치마폭이 우아하게 흔들린다. 사계절을 겪고도 변하지 않는 대나무처럼 지조 있게, 수수한 모양새이지만 은은한 향을 흘리는 난초처럼 그들의 춤은 화려하진 않지만 고고하게 존재한다. 작열하는 주황색 조명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주는 사위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몸짓은 객석의 끝까지 은은한 향을 퍼뜨릴 것처럼 살랑인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기개와 정신은 변하지 않는 대나무처럼 언제까지고 푸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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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 中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

- 출연 : 성유진

 

살풀이춤

- 출연 : 김연숙, 최영숙, 박영숙, 차옥수, 정선현, 서은희, 장상희, 김건우, 장예현


어린 소리꾼의 풋풋한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기교가 엄청나다거나 기술이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나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열정과 떨림이 무대에 가득했다. 어린 소녀는 청이가 아닌 심봉사가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 심봉사로 분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푸르르 날아가는 새만 보아도 내 딸 청이냐- 하고 묻는 어린 목소리는 고수의 북소리에 맞추어 둥둥 앞으로 뻗어나갔다. 


청이를 찾는 소리꾼의 뒤로 소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의 물줄기처럼 무대로 슬금슬금 들어온다. 한 명씩 들어오던 사람들은 어느새 소리꾼의 뒤로 규칙 없이 도열해 있다. 흰옷의 사람들을 뒤로한 채 소리를 계속하던 심봉사는 딸을 찾다 개천물에 빠지는데, 다수의 사람을 뒤에 두고 있다 보니 그것이 심봉사의 불안정한 마음과 압박감처럼 보였다. 허둥대다 물에 빠진 심봉사처럼, 자신의 뒤를 가득 메운 불안에 심봉사였던 어린 소리꾼은 개천으로 풍덩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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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무대로 들어와 있는 살풀이의 차례, 심봉사의 마음 같은 느낌의 연장선처럼 느껴져 소복을 입은 사람들의 한이 서린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이날의 살풀이는 조금 우울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순수하고 정제된 느낌을 주는 소복은 하얀 나비를 보는 것 같이 조용하고 우아하게 움직였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살풀이는 무거우리만치 서늘했다. 


살랑- 움직이는 천자락은 얕은 물결처럼 파동친다. 손끝에서 무용수의 의지대로, 그러나 의지와는 조금 동떨어지게 부유하는 살풀이 천은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품위있게, 경망스럽지 않게 이어지는 몸짓은 심청이를 빼앗긴 심봉사를 위로하듯, 또는 누군가의 한을 풀어주는 것처럼 허공으로 나부끼는 천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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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의 꿈

- 출연 : 전인호


무대 중앙을 꿰찬 작은 아이는 밝은 미소를 품고 가볍게 움직인다. 아이가 표현하는 태평무는 기원보다는 꿈에 가까워 보였다. 어린 세자가 꾸는 당찬 꿈처럼, 정말 온 세상을 돌아다니듯 무대를 크게 쓰면서도 얼굴에는 당당한 미소가 서려 있는 것이 세자로서의 포부가 느껴졌다. 유연하고 활기찬 몸짓을 쓰며 자신의 꿈을 무대에 펼쳐놓는데, 구김 없이 맑기만 하여 객석 끝까지 밝은 에너지가 전달됐다. 


어린 세자가 꾸는 꿈은 만백성의 태평과 무사를 바라는 것에서 끝일까. 아이들의 꿈은 무궁무진하며 끝을 모르고 커지기 마련이다. 세자가 밟는 견고한 땅과, 머리 위를 지탱하고 있는 넓은 하늘,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들이 세자에게는 지켜야 하며 평화롭길 바라는 대상일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디까지의 꿈을 꾸는지 알지 못한다. 세자는 자신의 꿈을 품고 저 멀리 내려다본다. 어른들이 평화를 기리는 세상의 너머를 꿈꾸며 어린 춤꾼은 세자의 꿈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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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

- 출연 : 남윤주, 방명희, 장희정, 박정희, 윤수경, 고선옥, 김하나


어른들의 태평무는 실제로 행하여야 하기에 조금 더 책임감이 느껴진다. 몸짓도, 느낌도 더 성숙하고 막연한 꿈보다는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원에 가깝다. 장구 소리가 신명 나고 여유롭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손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절제는 온몸을 지배한다. 조심스러운 발디딤은 경망스럽지 않은 흥겨움을 건네준다. 


무용수들의 몸짓과 발디딤, 손끝으로 운용하는 치마폭은 하나의 움직임으로 선보여진다. 살랑이는 치마폭 아래로 보이는 섬세한 발놀림과 꼿꼿한 기개는 무대를 장악하며 국태민안을 바란다.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발디딤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을 나타낸 것처럼 보였다. 막연한 꿈에서 조금 더 실체를 가져 염원으로 풀어낸 마음은 다양한 장단과 함께 단아한 몸짓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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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파입춤 가인여옥佳人如玉

- 출연 : 홍지선, 김여진, 이은진, 김한샘, 서민정


한 손에 부채를 쥔 여인들은 잔뜩 교태를 뽐내며 자신을 드러낸다. 바람을 따라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며, 손에 쥔 채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옥같이 아름다운 여인’, 가인여옥. 그렇기에 이 공연은 미(美)가 만발할 수밖에 없다. 꽃이 만개하는 과정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쾌활하다. 


부드러운 색으로 이루어져 봄날의 꽃잎 같은 치마폭이 휘날리면 무용수들에게 홀린 것처럼 빠져든다. 우아하면서도 신명 나, 객석은 흥으로 들썩거린다. 무대의 절정에서 관객들은 함께 박수를 치며 장단을 즐긴다. 어깨를 들썩거리면, 관객들은 빠른 박수로 호응한다. 환호를 받은 여인들은 더 아름답게 빛난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몸짓은 한껏 시원하게 움직이다가 아주 천천히, 정갈하게 막을 내린다. 오랫동안 최고의 보석이라 여기던 ‘옥’과 같은 여인들은 끝까지 빛을 내며 무대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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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 출연 : 손혜영, 서보근, 조연우


붉은 가사에 하얀 장삼과 고깔이 더해져 등장부터 경건한 느낌을 준다. 하늘로 솟구치는 장삼이 환상처럼 느껴지며, 규칙 없이 나부끼는 모양새가 매혹적이다. 장삼 소매는 공중으로 솟구치기도 하지만, 무용수의 어깨에 얼러지기도 하고 양팔을 모아 신비함을 극대화하며 다양한 사위를 구사한다. 허공에서 원을 이루는 장삼은 이 순간이 마치 꿈인 것처럼 몽환적이다.


둥둥- 북이 울린다. 장렬한 북소리는 장삼의 매혹적인 움직임이 더해져 사람을 홀린다. 박력 있게 울리는 북소리는 어느새 무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무용수는 북을 어르고 치면서 끊임없이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공간을 울리는 소리는 흥과 동시에 무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승려의 춤’이라는 용어적 의미를 지니는 ‘승무’이기에 무용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을 터뜨리며 극복을 향해 나아간다. 내면에서 벗어난 승무는 다시 현실로 나온다. 강렬하고 빠른 대화의 끝은 다시 환상으로, 하늘 높이 장삼이 솟구치며 무대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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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과 멋으로 가득 차 있던 손혜영 아정무용단은 관객 모두에게 전통과 환상의 경계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큰 박수로 공연에 대한 화답을 보냈고, 공연을 마친 무용수들은 후련한 표정으로 인사를 마쳤다. 한편, 손혜영 아정무용단은 2001년에 창단되어 전국 8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영숙-박재희류 전통춤의 맥을 이어가고, 그것을 원류로 춤을 만들며 연구와 활동을 지속하는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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