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열정, 젊음의 행진 ‘제5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제5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2024년 3월 9일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달성예술극장이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우고, 다섯 번째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이 개최되었다. 본선에 앞서 영상심사로 예선이 진행되었고, 예선을 통과한 열 작품이 본선 무대에 진출했으나, 한 작품이 기권하게 되어 총 아홉 개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은 만 19세부터 25세까지의 젊은 무용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가진 열정은 선명하게 빛을 발하였다.
객석을 채우는 동안 공연장을 환하게 밝혔던 조명이 꺼지고 적막이 들이찬 순간, 첫 무대를 시작하는 무용인들이 무대로 발을 내딛는 소리가 들리며 경연은 힘차게 시작을 알린다. 넓어진 극장에서 무용인들의 젊음은 더욱 날뛰었고, 청춘은 뜨겁게 땀흘렸다.
Eyebrow Controversy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서 ‘Eyebrow Controversy’
- 안무 : 최보금
- 출연 : 최보금, 성혜주
- 예술감독 : 김영미
- 음악 : MKB dance music
이 무대의 주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Toxic positivity’, ‘해로운 긍정성’이다.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두 사람은 같으면서도 다르게 자극에 반응한다. 움직임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이어지지만, 서로를 고립시켜 놓은 것처럼 외로워 보인다.
사람은 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감정을 접한다. 그중엔 밝은색의 감정도 있을 것이고, 어두운색의 감정도 있을 것이다. ‘해로운 긍정성’은 하고많은 감정을 거르고 걸러 긍정적인 감정만을 받아들여 생기는 오류이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강요하고, 원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과한 긍정은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고, 사람을 고립시킨다.
Eyebrow Controversy
이는 모순되고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 오류를 지적하고, 감각의 자극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정적이면서도 부드럽게 공간을 오려낸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공간의 뒤에서 우리는 긍정의 이면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현실에서 잊힌 ‘긍정’이라는 단어에 묻혀있던 ‘부정’의 감정들과 분노, 갈등, 그 사이의 간극이 고개를 내밀고는 고립된 인간의 반대에 서있다.
end. And,
마침표. 다음의 쉼표, ‘end. And,’
- 안무 : 임윤지
- 출연 : 임윤지, 지소민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나온 사람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병아리 같다. 막에 둘러싸여 아직은 세상을 만나지 못한 것처럼 낯설어 보이지만, 동시에 이미 모든 걸 접한 듯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공간 안에 흐르는 월광소나타는 흰 베일의 음울함을 더해주듯 한없이 어두운 분위기를 끌어낸다. 계산적이면서도 조심스러웠던 움직임은 위태로움과 불안정한 심리를 보여주지만, 음악의 분위기가 바뀜과 동시에 깨져버린다. end. 마침표가 찍힘과 동시에 새로운 글자가 쓰인다.
And, 마침표 대신 쉼표를 달고 나온 단어는 베일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움직임에서 에너지가 발산되고, 하얀 베일의 음울함이 아닌 베일이 있음으로써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과 무대 자체에 성스럽고 신비한 느낌을 선사한다. 가라앉았던 무대가 부드러우면서도 극도로 유연해지는 순간이다.
end. And,
‘우울과 평화는 하얀색이다.’. 하얀색은 무엇에도 물들지 않았기에,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 무엇도 적히지 않은 것에는 그 자체로 end.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며, And,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그렇기에 흰색은 반복되고 다시, 또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거듭되는 끝과 시작은 쌓이고 쌓여 안식으로 가는 힘을 제공해 준다.
Nun
은밀한 세계는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Nun’
- 공동안무 : 김소정, 남희경
- 출연 : 김소정, 남희경, 이예림, 김민서, 서정빈, 배세은
- 안무 어시스턴트 : 이예림
- 작품 어드바이저 : 서정빈
쿵- 쿵- 공기를 떨리게 하는 리듬이 박진감 있게 치고 나온다. 두 그룹으로 갈린 사람들은 같은 움직임을 취한다. 묘하게 그 어긋난 규칙성이 조화롭다. 무대의 조도는 상대적으로 어두워 보인다. 낮은 곳의 세상을 숨기려 하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은 자주 실루엣으로 표현되고, 빛은 최소한으로 존재하며 그들의 본능을 자극한다.
빛을 향해 다가가는 듯한 그들은 뜨거움, 혹은 과열된 욕망에 몸부림친다. 공간에 서서히 스며들면서도 단 한 가지의 빛을 표방하는 그것을 쫓아가는 그들은 고통 속에서도 빛을 갈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묵직한 베이스 소리 위에서 깊이 있는 소리를 양분 삼아 피어나는 몸짓은 규칙성을 띤다. 그들의 몸짓은 앞으로 흘러갈지언정 후회와 미련을 떨쳐낸 것처럼 보인다. 공간을 울리는 현악기 소리에 긴장감이 생겨나지만, 실루엣만 보이는 그들은 느려지고, 정적을 만든다. 석양 같은 빛 아래, 몽환적인 세상을 만들어낸 이들은 격정적인 투우를 마친 후, 소의 모습 같기도 하다.
Nun
우리들의 키, 서 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눈높이에서 본다. 딱 그 정도, 그 아래로 내려갈 생각도,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늘 고정적으로 머물러있다. 그런데 무릎 위의 눈은 어떠한 세상의 ‘비밀’을 보려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의 세상은 어떤 형상을 띄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트러스트, 가장 안전하게 위험한 순간들
안락함의 파괴 ‘트러스트, 가장 안전하게 위험한 순간들’
- 안무 : 구희진
- 출연 : 구희진, 이태녕
사람이 가장 편안해지는 장소인 침대를 연상케 하는 베개들은 안락함을 제공한다. 동시에 한 사람의 등장으로 위태로워진다. 신뢰와 안정을 제공해야 하는 장소는 타인의 난입으로 불안과 폭력의 현장으로 바뀌어 분열의 무대가 된다.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꿈같기도 하고 현실처럼 차갑기도 하다.
안락한 장소의 주인공인 그는 베개의 추락과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진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은 무섭도록 모순적이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얼굴을 밟고 올라서며, 안락을 빼앗긴 그녀는 신체의 일부를 잃은 듯 균형을 잡지 못한다. 계속해서 충돌하고, 무력을 행사한다. 이 모습에서 ‘신뢰’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사이에는 안락함을 두고 경쟁이라도 하는 듯 치열하게 경쟁하는 마음만이 존재한다.
트러스트, 가장 안전하게 위험한 순간들
퍽- 치면 쓰러지고, 쿵-쿵- 타격감 있는 소리는 위압감과 무게감을 동시에 준다. 폭력의 청각화로 시각화된 무대가 더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안정적인 장소에서 타의로 벗어나게 된 것은 악몽이 아닐까. 그 악몽이 연속적으로 벌어졌을 때 이 사람은 ‘신뢰’라는 감정을 타인과 나눌 수 있을까. 신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 없기에 ‘신뢰’라는 단어는 모순의 성질을 띠고 인간관계의 오류를 불러일으킨다.
Bug
작은 존재의 삶은 거대할 수 있는가 ‘Bug’
- 안무 : 이하늘
- 출연 : 이하늘, 김은주, 서도리, 이주영
- 진행 : 김정
잔뜩 공기를 조여놓은 채 시작된 공연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들의 웅크린 몸은 거대한 세상 속 기어다니는 작은 존재들을 연상케 하며, 합쳐지는 동작은 절지동물의 몸체처럼 분리된 듯, 연결되어 있다.
서로를 계속해서 끌어당기며, 서로의 몸에, 팔에, 정신에 의지한 채 미끄럽게 흘러간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몸부림친다. 끈질기게 움직이는 그들은 쉬지 않고 날갯짓하는 하루살이 같다. 여유로우면서도 조심스럽고, 의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붙잡고 부딪히지만, 세상의 크기에 비해 그들은 한없이 작다.
Bug
사람의 크기에 비하면 벌레는 하염없이 작게 느껴진다. 손톱만 한 존재들이 이 세상 곳곳에 분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본다. 인간들의 존재는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마치, 우리가 벌레를 보듯이. 세상의 기준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존중되고 생각되고 있는가. 그들의 연결은 세상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Goldnhour_That Moment
공통된 시간, 상대적인 순간 ‘Goldnhour_That Moment’
- 안무 : 김영웅
- 출연 : 김영웅, 김가람, 이나림, 이정희, 조예진, 조현우, 한정빈
- 음향 : 김민희
‘순간’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사람, 시간, 공간, 행동 등 시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상대적이다. 무대 한가운데를 밝히는 하나의 조명 아래 혼자 위치한 사람의 등장으로 하나의 순간이 태동할 준비를 마친다. 좁은 조명 안에서 배회하는 그의 주변으로 불이 들어오면, 놀랍게도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 시계처럼 회전하던 사람들은 시계의 중심축을 두고 하나둘씩 개인행동을 시작한다.
본능과 이성의 경계에서 통제당하는 감각은 타인에게 조종되기도 하고 스스로 움직이기도 한다. 혼돈 속에서 대열이 정리되는 구도는 정돈되는 느낌을 주지만, 격렬한 움직임에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혼란스럽고 빠르기만 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뜻깊은 순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을 주듯 그들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Goldnhour_That Moment
무대를 밟고 선 사람들은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서기도 한다. 전원이 꺼진 것처럼 푹 쓰러지는 사람들은 무대 위의 생동감을 한순간 죽여버리고 정지해 있다. 그 사이에서 혼자 일어난 사람은 다시 하나의 ‘순간’이 시작된 것처럼 살아내려 한다. 최고의 순간은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스스로에게, 그 상황에 충실한 것이 최고의 ‘순간’으로 구성된 연속된 삶이다.
Look Back
자아의 충돌, 존재의 인식‘Look Back’
- 공동안무, 출연 : 김제영, 백두산
- 진행 : 장지훈
램프 하나가 켜져 있는 가운데,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두 사람은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 인간이 가장 처음 움직였던 태초의 순간을 연상시키는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묵직하며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하다. 램프가 깜빡거리며 그들의 존재를 순간순간 인식시키지만, 그들은 인간이기보다 본능만 남은 생명체 같기도 하고, 가장 날 것의 인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지 못한다.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전진하기를 욕망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가, 속에 있는 모든 숨을 뱉어내는 순간, 그저 살아있기에 생명체라 느껴졌던 그들이 사람으로서 숨을 쉰다고 느껴진다. 분위기가 반전되는 순간이다.
Look Back
그들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한 편의 격투 경기처럼 부딪힌다. 맞은 고통에, 때린 죄책감에 몸부림치면서도 마찰을 거듭한다. 갈등으로 서로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처럼 계속해서 싸움을 촉구한다. 그러나 싸움도 잠깐일 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려 할 때 조명이 꺼지며 그 인정이 정당화되었는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그들의 존재가 관객에게 인식되려 할 때 지워져 그들은 나로도, 우리로도 남아버린다.
백수행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 ‘백수행’
- 안무 : 김동현
- 출연 : 김수민, 박채경, 이원재, 김동현
날카롭게 귀를 때리는 종소리가 무대의 시작을 알린다. 박스를 해체하여 여러 갈래로 접어보는 이들은 온전한 박스를 완성하지 않은 채 여러 가능성을 재고해 본다. 박스는 평면으로 존재하며 여러 가지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제시함과 동시에, 입체적인 형태를 갖추었을 때 무언가를 가둬두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상자에 사람이 들어가고 그 상자는 봉해지며, 심리적인 압박감과 긴장감을 유도한다.
상자 안에서는 테이프가 나오는데 이 끝에는 상자 안에 갇힌 사람의 손이 연결되어 있다. 테이프를 밖으로 끄집어냄과 동시에 박스는 사람을 토해내는데, 꼭 탯줄에 연결된 아기 같다. 이를테면 상자는 이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세계로부터 사람을 분리해 놓은 공간이었다. 상자는 타인에 의해 입구와 출구가 모두 봉해진다. 다시 상자 안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백수행
세상으로 내던져진 우리는 그 상자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되돌아본다. 무엇을 꿈꾸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떠올려본다. 작은 둥지를 벗어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곁에 둔 채 우리는 무엇이 되었나, 무엇이 될 수 있나, 무엇을 꿈꾸었나. 지하철 소리가 들린다. 완전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다.
봇카
나의 짐, 삶의 무게 ‘봇카’
- 공동안무, 출연 : 이부창, 김도연
- 음향 : 김준혁
봇카는 ‘도보로 산장을 향해 짐을 나르는 일종의 등짐 배달부’를 일컫는 말이다. 타다닥- 무대로 달려 나온 남자의 손에는 갈색의 서류 가방이 들려있다. 천천히, 앞뒤로 운동하던 가방은 이내 사람을 휙 끌고 가버린다. 짐을 나르는 사람의 의지보다, 짐 그 자체인 무게 덩어리가 사람을 좌우한다. 자신의 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지게 한 이는 누구일까. 부단히도 삶을 살아내고 있을 남자 본인일까. 혹은 남에게 짐을 떠맡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제삼자인가.
타인은 짐의 방황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그때 등장한다. 둘 다 짐에 주도권을 빼앗긴 채 자신의 의지를 상실했지만 그럼에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존재의 등장으로 짐의 무게는 줄어든다. 짐 하나만 들기도 벅찼던 사람이 타인의 짐까지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지쳐 쓰러지는 몸을 붙들어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그들은 서로를 지팡이 삼아, 기둥 삼아 각자의 짐을 나눠 들고 삶을 등반한다. 제삼자였던 타인이 한 사람의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봇카
갈색 가방이 무슨 짐인지,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각자가 가진 인생의 짐일것이라 추측할 뿐, 그 끝에 짐은 어디로 운반되는 것인지, 누구에게 도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외로웠던 여정에 같은 처지를 가진 사람이 함께하게 된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짐에 휘둘리지 않는,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출연자 기념사진
총 아홉 개의 무대로 구성된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은 ‘봇카’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경연대회 인지라 완성도가 높고, 스토리가 부각되는 무대들이 이어졌고 이에 심사위원들의 평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했다.
‘20대에서는 도전과 시도, 노력이 중요하다.’, ‘젊은이답게, 창의력 있는 무대.’와 같은 젊음과 청춘으로 뭉친 참가자들의 열정에 대한 평가가 모든 평에서 묻어나왔다.
이어 ‘서문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어, 글에 압도되지 말고 쉽게 썼으면 하는 느낌이 있다.’, ‘작품만의 동작언어를 찾기 힘들었다. 이 작품에 이 동작이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몸의 언어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등 내용에 대한 평이 날카롭게 꿰뚫었다.
젊음의 패기와 노련한 평가를 더해 마무리되었다.
모든 출연자와 심사위원단 기념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