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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핫 트래픽(Hot Traffic)을 향한 작은 시작 'Cold Traffic' 달성예술극장 개관 프리 스테이지

 

대구문화창작소 제39회 달스타2030예술극장

달성예술극장 개관 프리스테이지

2023년 12월 3일 / 달성예술극장

 

- 글 : 서경혜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대구문화창작소가 주최하는 제39회 달스타2030예술극장이 지난 12월 3일 대구 달성예술극장에서 열렸다. 'Cold Traffic'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달성예술극장의 개관 전에 열린 프리 스테이지(pre-stage)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장르가 골고루 편성되어 여러 형태 공연 무대의 분위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욱이 각 장르에서 지역의 무용계를 이끌고 있고 또 이끌어 나아갈 기성과 신진 무용수들의 주옥같은 창작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2024년 1월 개관을 앞두고 있는 달성예술극장은 대구지역 민간 소극장 가운데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춘 곳으로, 무대 규모가 너비 약 14m, 깊이 10m, 높이 7m이며, 객석 규모가 약 200여 석에 이른다. 극장이 앞으로 지역 공연 예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Hot Traffic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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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노래(神歌) / 안무 편봉화

 

길쭉한 와이어로 된 구조물들이 어두운 무대 전면에 혼재해있다. 키보다 큰 구조물들은 무대 가운데서 와이어 숲을 이루며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속박한다. 한 명의 여무와 두 명의 남무가 끝이 아득하도록 우거진 그 숲 속에 던져진다. 어떤이는 와이어를 요리조리 유심히 뜯어보고 만져보고, 어떤이는 까짓것 덥석 올라타고, 어떤이는 조심스레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주시한다.

 

그들을 가둔 구조물은 마치 욕망의 늪처럼, 그들의 눈을 가리고 외부 세계를 차단한다. 무용수가 타거나 건드린 구조물이 스르르 움직이자,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바퀴 달린 구조물들이 무대 위를 배회하듯이 세 무용수도 무대 구석구석을 바삐 걷는다.

 

작품 '신의 노래(神歌)'는 신라 향가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벽사진경(辟邪進慶)과 같은 주술적 의미는 차치하고, 프로그램은 처용 설화에 깃든 인간의 욕망, 애증, 관용을 들여다본다. 고려해보건대, 그 시절 아내는 처용의 것이었다. 허나 오늘날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받고 소유되기보다 스스로의 욕망과 가치 기준에 따라 상대를 선택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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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무가 편봉화의 어깨에 기대면서 세 사람의 몸이 한데 섞인다. 두 남무의 얼굴이 여무의 품 안에서 밀고 밀리는 모습을 보면, '그녀를 잃을 바에는 반쪽이라도 갖겠다'던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적 의식이 엿보인다. 여자는 두 남자를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이다.

 

세 무용수가 일어설 때에는 음악이 온화하게 바뀌면서 서로 나란한 발걸음으로 동행한다.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두 남무가 여자의 등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을 맞잡는 장면은, 이란 영화 아프리칸 바이올렛(African Violet)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전처, 현처를 매개로 한 집에서 살게 된 두 남자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셋의 불편한 동행은 사랑, 연민, 미래, 주변의 시선 등을 포함한 갖은 이해득실로 말미암아, 시간이 지날수록 정리가 필요해지는 법. 울창하기만 했던 숲길의 끝을 본 듯,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김현태의 몸짓을 뒤로 하고, 결국 여자는 서상재의 등에 올라타고 떠난다. 모든 것을 털어낸 듯 보였던 김현태가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또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면 작품은 왜 '신의 노래'일까? 욕망을 움직이는 인간의 마음. 태어날 때부터 선하냐 악하냐를 논하는 그 심성. 20만 년이란 장구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 존재 누구나가 가지고도 그 모양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은, 결국 인간의 것이 아닌 어떤 신(神)적인 존재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 작품은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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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Pas de Quatre / 재안무 박민우

 

네 명의 발레리나가 원을 그리며 포즈를 취한 모습이 달밤에 비친 호수의 풍경 같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낭만발레"라고 소개된 내용대로,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는 백조들의 공손한 연회장 같은 느낌. 서로에게 예를 갖추며 춤을 이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춤, 음악, 문학 등 모든 예술작품들이 결국은 인간의 삶을 투영한 것일테지만, 유독 발레를 보게 되면 그들이 나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서 발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심코 걷는데 사용하는 다리가 저렇게 멋지게 쭉 뻗을 수 있나. 먹고 씻고 쓰고 나르고, 어찌보면 거의 생활형 도구라 할 수 있는 손과 팔이 저렇게 예쁜 모양을 그릴 수 있나. 'Grand Pas de Quatre' 이 작품 또한 무용수들의 춤을 따라가 보면, 발레리나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운 동작들이 총 집결된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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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으로 잠시 폴짝 뛰는 사이에도 양 다리가 선명한 모양을 그리고, 뒤꿈치끼리 속삭이며 점프를 한다. 한발만 바닥을 짚으면서도 우아한 회전을 하며 걸음을 옮긴다. 같은 모양으로 스텝을 밟으며 네 명이 시계처럼 회전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이 멈추지 않도록 끊임없이 태엽을 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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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Life : 가벼움을 향한 걸음 / 안무 김동윤

 

암흑 속에 노이즈가 들린다. 발차를 앞둔 우주 정거장을 연상시키는 공허하고 분주한 소리. 검은 반바지와 재킷을 입은 다섯 무용수가 무리지어 그라운드로 뛰어든다. 딱히 트랙이 없는 길을 무리는 뛰고 뛰고 또 뛴다. 그러는 동안, 벌거벗은채 군화만을 신은 무용수가 하수에서 걸어나온다. 신발 길이 만큼의 작은 보폭으로 천천히 무대를 가로지른다. 무리지어 뛰던 검은옷들은 넘어지기도 하고, 무리를 이탈하여 뛰거나, 지쳐 쓰러진다.

 

작품은 '가벼움을 향한 걸음'을 노래한다. 검은 재킷을 입고 힘겹게 뛰는 모습보다는 맨몸으로 걷는 것이 확실히 가벼워 보인다. 다시 말해, 옷을 입었다는 것은 더 좋고 높은 것을 향한 어떤 목적의식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뛰다가 넘어져 더이상 일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어 고통스러워 한다. 반면 옷을 입지 않은 무용수는 평온한 걸음으로 무대를 가로지른 후 그저 신발만을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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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무위(無爲)의 개념이 떠오르게 된다. 앎이나 욕망에 따르지 않고 그저 자연의 순리에 맡기는 삶. 그러나 오늘날 무위는 어떤가. 어떤 측면에서 그것은 곧 도태이고 퇴보를 의미한다. 심지어 배경음악은 그들에게 나를 것을 종용한다. "Fly away little pretty bird. Fly, fly away~(날아가라 작고 예쁜 새여. 날아라, 날아가라~)"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검은옷은 퍼더덕 퍼더덕, 안쓰러운 날갯짓으로 소리의 요구를 따른다. 뛰기도 힘든 세상, 날기를 권하는 환경 속에서 검은옷들의 달리기는 멈출 수가 없고, 하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사는 법은 달리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달려서 좇아가는 길을 맹신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회의를 느끼고 잠시 멈추어본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걷고, 걸음의 순간을 들여다본다. 걷는 순간 순간의 다리의 모양, 디뎌진 보폭, 들어올려진 높이, 굽힌 무릎의 각도. 다리와 발이 그려내는 모양에서 살아감의 에너지를 느끼고 만끽하는 그들은 더이상 뛰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입고있던 재킷을 벗어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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