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법 'Cold Traffic'
대구문화창작소 제39회 달스타2030예술극장
달성예술극장 개관 프리스테이지
2023년 12월 3일 / 달성예술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퍼팩토리소극장이 '달성예술극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개관하고, 설레이는 첫 무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무대가 선보여졌다.
신라시대의 향가인 '처용가'를 재해석한 무대 '신의 노래'와 19세기 낭만주의 발레를 선보인 'Grand Pas de Quatre', 현재 우리 삶의 속도를 물어보는 'Modern Life : 가벼움을 향한 걸음'까지 총 3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 공연은 극장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기 직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색다른 매력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이야기가 막을 올렸다.
- 욕망은 어디로 고여 드는가 '신의 노래 (神歌)'
안무, 출연 - 편봉화
출연 - 김현태, 서상재
'서라벌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 들어와 /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다 /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래 내 것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기존의 처용가에서는 처용과 역신, 역신과 아내의 관계가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다. 역신의 욕망만이 투명하게 반영되고, 이를 처용의 지혜 되는가. 끊임없는 유혹 앞에서 욕망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가. 처용의 이야기를 빌려 현대에서 욕망의 표출은 어떤 것을 지양해야 하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 개화, 다음의 만개 'Grand Pas de Quatre'
재안무 - 박민우
출연 - 모지연, 오은빈, 하수민, 김에덴
경쾌하고 활기찬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하얀 꽃잎이 너울거리듯, 봄의 화사함을 연상케하는 의상을 입은 네 명의 무용수들이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현대를 짓누르고 있는 사상이나 문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고자 하는 낭만 발레를 베이스로 한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 발레리나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부각되었다.
같은 동작을 취하며 동시에 휘날리는 치맛자락은 만개하는 꽃처럼 풍성하고 아름답다. 가냘프며 쾌활한 피리 소리가 그에 맞춰 종종거리는 걸음은 종달새를 연상케 하며 우아하고 섬세하면서도 마냥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군무에서 솔로로, 듀엣과 또 한 번의 솔로를 지나 다시 군무로 돌아오는 무대구성은 각자의 장점을 부각하고 화려한 엔딩을 예고하며 만개할 준비를 한다. 달라지는 음악에 현장의 분위기도, 무용수들에게서 느껴지는 꽃의 향도 제각각으로 변한다. 발끝으로 서 있는 그들의 몸은 단단한 근육들이 자리하고 있고, 근육들의 움직임이 투박하지 않게 조율하는 것은 곧 우아한 몸짓으로 다가온다.
투박한 토슈즈 소리가 탁- 타탁-하고 울린다. 우아하게 다가오는 몸짓들과 다르게 한없이 무거운 소리를 내는 토슈즈는 이것이 인간의 예술임을 알려주듯 마냥 환상으로 빠져들지 않게 한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현실에 기대 작품을 감상하게 도와주는 것은 그들의 동작에 깃든 토슈즈 소리였다.
- 각자의 속도, 각자의 걸음 'Modern Life : 가벼움을 향한 걸음'
안무, 출연 - 김동윤
출연 - 권윤형, 김동규, 김태현, 김민지, 백묘정 / 드라마투르기 - 김지나
과열된 경쟁으로 치열하다 싶은 현대 사회에서 발가벗은 한 남성의 걸음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느리고, 고독하다. 고작 두 발로 지면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며 걷는 그는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거나,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앞밖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길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걷는다.
뭉쳐서 달리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낙오자가 발생한다. 뛰다가 걷고, 넘어지고, 사람들의 발에 채면서까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다. 이들이 다시 일어서서 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넘어졌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앞을 향하는 사람들 속에 어우러지기 위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다시 걷고, 뛴다.
사회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억압과 부담은 우리의 어깨를 무겁도록 짓누르지만, 쓰러진다고 능사가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버텨내는 것이 현대의 사회에서 바라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 허물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시야를 가려버리지만 내가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달리는 속도는 무엇을 표방하는가. 한 발 앞질렀을 때, 그 한 발은 누구의 기준인가. 우리의 속도는 절대적이지 못하다. 또한, 상대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두 발에 힘을 실어 땅을 딛는 곳은 현재이다. 우리가 머무는는 집, 혹은 회사, 찬 바람이 시리게 부는 길 위에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다.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면 걸어보자. 어떻게 걷든 당신은 뒤가 아닌 앞으로만 걷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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