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人7色의 숨, 어우르다 '2023 대구 전통춤의 밤'
2023 대구 전통춤의 밤 - 숨, 어우르다
2023년 12월 2일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023 대구 전통춤의 밤'이 지난 12월 2일 달서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숨, 어우르다'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대구의 전통춤을 보존·계승하고 전통춤의 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사)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 3회를 맞이했다.
대구 경북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기성 전통 무용가들의 춤을 감상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 올해는 특히 부정놀이, 지게춤과 같은 재미있는 춤들이 라인업되어 기대감을 높였고, 아울러 궁중무용인 춘앵전과 서민의 춤인 지게춤, 그리고 가인여옥과 교방살풀이춤이 각각 어떤 차이점으로 묘사되고 있는지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춘앵전 / 출연 김희경
고즈넉한 대금 소리가 마음에 풍요로움을 안긴다. 고운 화문석이 바닥에 깔리고, 배가 빨간 꾀꼬리가 가는 나뭇가지에 앉아 사방 경치를 구경하며 서두를 것도 없이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붉은 치마 위로 황초삼의 앞섶이 예쁘게 벌어진 옷매무새. 꽃나무 가지가 정수리 위로 곧게 솟은 화관과, 나비 모양의 리본으로 묶어낸 홍수대의 뒷태 또한 그림 같다.
양팔을 뒷짐지듯 야무지게 감추고 좌우로 몸을 기웃거리면 그야말로 샛노란 꾀꼬리가 가지 끝에서 화창한 봄볕을 만끽하는 모습이다. 포근한 봄바람의 속삭임에 그저 살랑이는 모양처럼, 춤은 그렇게 느릿하고 한가롭다. 가만 보고 있으면 다가가 가지 끝을 톡 건드려보고 싶은 장난기마저 발동한다. 이따금 양팔을 동서로 곧게 쭉 펴고 바람을 가르듯 돌며, 오채한삼을 하늘로 흩뿌리는 춤사위를 보게 되면 놀란 꾀꼬리의 날갯짓에 살짜쿵 떨어지는 푸른 잎사귀의 귀여운 비명이 들린다.
가인여옥 벽파입춤 박재희류 / 출연 장윤정
짙은 보랏빛 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완숙미가 느껴진다. 천천히 몸을 돌려 얼굴을 드러내는 춤사위에서 '가인여옥(옥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이름이 과연 옳구나 초장부터 무릎을 치게 된다. 느리게 장단을 타는 춤사위를 따라가다 보면 고귀한 여인의 풍류란 이런 것인가 싶으다. 고고한 붉은 매화를 수놓은 부채가 소리도 없이 활짝 펼쳐지고, 카드마술처럼 스르르 접힌다. 머리 위로 들어올려진 부채와 손가락이 잔잔한 물결모양으로 일렁이고, 액운을 가르듯 분주한 부채짓도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구슬픈 장단에 한(恨) 서린 입소리가 이어지니, 치맛단 아래로 살짝 드러난 하얀 속치마에 왠지 모를 사연이 어리어 보인다. 낮게 펼쳐든 부채가 조명을 받으니 마치 영험한 달빛을 머금은 마냥 신령스럽기도 하다. 여인의 기품이 깃든 우아한 춤에 이따금 교태로운 부채놀음이 맛깔나게 곁들여진 춤이다.
수건춤 백년욱류 / 출연 김우석
한삼과 부채의 시간이 지나고 수건춤의 차례다. 흰 수건이라는 소품이 가진 심상은 눈물로 대변되는 희로애락의 수고로움일 터. 우리 전통춤에서 수건하면 살풀이가 선뜻 떠오르는 것이 그리 주관적인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연분홍 바지 저고리에 쑥색 쾌자를 입고 상투를 튼 남무가 하얀 수건을 들었다.
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살아감에 대한 흔적이 흰 수건에 묻어 흩날린다. 어깨에 앉았다가 팔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감싸며 훑다가 두 척 밖으로 흩뿌려진다. 입으로 물어 올린 수건 자락에 온갖 근심 걱정을 실어 보내고는 장단의 변화와 함께 옷자락을 차락 떨어내며 흥겨움을 춤춘다. 춤이 가진 미적 유희와 민중의 애환이 녹아 흐르는 사위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인다.
부정놀이 / 출연 박성희
붉은 무복(巫服)에 높은 모자를 쓰고, 살이 붉은 부채와 방울을 든 모습이 강렬하다. 무속의 굿 의식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라더니, 온몸으로 훠이 훠이 쫓아내는 춤사위가 과연 익숙한 듯이 예사롭지가 않다. 화려한 부채와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에, 맺힌 마음들이 스미어 있음이라. 우는 소리 웃는 소리 어르는 소리 꾸짖는 소리들이 번갈아 들린다.
두 무구를 내려놓고는 양 소매 안에 감추었던 흰 수건을 술술 풀어낸다. 마치 장삼의 긴 소매자락처럼 양 팔에서 늘어진 수건이 공간에 휘날린다. 반주가 액몰이의 느낌을 부추기고, 무녀는 양 발을 동시에 띄워 펄쩍펄쩍 뛴다. 언제나 궁금했다. 그것은 귀신의 발걸음인지, 귀신을 쫓아내려 겁 주는 시늉인지. 그런데 오늘 이 춤을 보니, 그것은 귀신도 그 누구도 아닌 신명이라는 걸음이었다. 무속의식에서 느껴질 수 있는 거리감을 상쇄하고 춤이 가진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을 잘 버무린 작품이다.
장고춤 배정혜류 / 출연 엄선민, 김신오, 김윤서, 박채연, 이효정
앉은 채로 장구를 빠르게 두드리며 돌아선다. 악기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파란 치마에 노란 저고리 통이 빨간 장구. 화려한 배색의 차림새 위로 엄선민의 환한 미소가 보는이의 기분을 화사하게 한다. 똑같은 모습을 한 무원이 하나 둘 춤을 그리며 합류하는 모습이 재미지다. 태평소에 이어 대금 가락도 흥에 겨워 춤을 춘다. 대개 군무에서는 이런 저런 구도를 그려 보는 재미가 있기 마련인데, 이 춤은 어떠한 구도보다 다섯 무원이 제각기 서 있는 것만으로 특별한 구도처럼 보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
회전을 하면서 빠르게 장구를 치는 춤사위가 멋드러진다. 악사들의 반주가 멈춘 후 시작되는 무원들의 장구 연주가 대구 전통춤의 밤을 신명으로 이끈다. 이순간, 눈으로 몸짓으로 혹은 가슴으로, 연주자 되지 않는 사람 있을까! 아무리 아기자기 교태 섞인 춤이라도, 열채의 두드림에 묵은 근심이 탁 털리고 궁채의 두드림에 다시금 희망이 솟는다. 쇠 소리가 합세하며 타악이 더욱 빠르게 휘몰아친다. 옳다구나 바로 이것이다!
지게춤 / 출연 김현태
꽹과리 소리 드높은데 "하아!" 우렁찬 구음과 함께 지게에 산나물을 잔뜩 짊어진 지게꾼이 등장한다. 하얀 바지 저고리를 걷어 입고 연분홍 조끼 위로 밝은 표정을 한 김현태의 모습이 아주 순박한 시골청년의 모습이다. 고무신 신은 발로 지팡이를 퉁기며 휘휘 돌다 짊어진 나물을 풀풀 다 쏟아낸다. 지게를 벗어놓고는 얼쑤절쑤 본격적으로 춤 장기를 벌인다.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오뉴월이 당도하면 우리 농부 시절이로다. 패랭이 꼭지에다 가화를 꽂고서 마구잡이 춤이나 추어보세. 여 어여 여어 여어루 상사뒤여~" 구성진 농부가 소리가 춤에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흩어진 산나물은 모가 되어 모심기춤이 되고, 주저리주저리 서설하며 땀을 씻은 후에는 다시금 지게를 둘러메고 비틀거린다.
지게꾼의 고된 일상에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이, 등에 진 삶의 무게에 절뚝거리는 뒷모습과 함께 여운을 남기며 유유히 사라진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시골 지게꾼의 모습을 퍼포먼스 요소를 가미하여 정감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교방살풀이춤 임이조류 / 출연 채한숙
쑥색 치마 저고리에 비스듬히 가채를 올린 옷매무새, 머리매무새가 멋스럽다. 운치있는 여인의 자신감이 펄럭이는 수건 사위와 함께 공간에 흩날린다. 흰 수건을 손에 둘둘 말았다 거머쥐고 다시 풀어내는 사위가 여느 살풀이춤과 비슷해 보여도, 요염한 여인의 손짓 끝에 살랑거리는 수건의 모양이 애환보다는 교태를 닮았다. 교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작은 사위도 섬세하고 춤 태가 예술적이다. 수건으로 가로젖는 공간을 보고 있으면, 하얀 신기루가 지나가는 길마다 꽃내음이 풍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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