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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되는 삶에 염원을 담아 '어제 못한 그 이야기 다시 핀 꽃 한 송이'

 

2023 정진무용단 - 어제 못한 그 이야기, 다시 핀 꽃 한 송이

2023년 10월 21일 /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 글 : 최윤정

- 사진 : 영상 캡처

- 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끝'의 사전적 정의는 대체로 마지막을 뜻한다.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 '맨 마지막 부분'을 뜻하는 끝에서 이정진 대표는 새로운 시작을 보았고, 이에 영감을 받아 전통으로 이어진 현대와 현대가 전통이 되어가는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런 ‘끝’에 대한 고뇌가 담긴 공연이 10월 21일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아주 많은 끝을 접한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도, 휴가를 맞아 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하나의 직장이나 학교를 마무리 지었을 때도. 모든 경험의 마지막은 끝이라는 이름으로 장식하게 된다. 이 끝의 다음 순간에 올 시작은 활기차지만, 무엇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약한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시작과 끝의 사이에서 오늘의 공연은 고민을 거듭한다. ‘전통의 재해석’은 전통의 색을 되찾거나, 새로운 색을 덧입히고 현대의 해석을 더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정진무용단의 재해석은 전통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색을 견고하게 덧바른다는 느낌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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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진 무대 한가운데 핀 조명을 받고서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남자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온통 검은색의 현대적인 옷을 입고서는 하얀색 부채를 쥔 손은 고심이 느껴진다. 부채를 쥐었기에 느리지만 가벼운 느낌의 전통춤을 출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남자의 춤은 아주 격렬하다. 넓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절도 있고 힘이 가득한 몸짓을 이어 나간다.

 

이런 남자의 온몸에서는 지나간 종단에 대한 고뇌만 느껴진다. 생각이 정리된 듯 다시 정적으로 가득 찬 남자는 다시 부채를 집어 들고서는 부채를 펼쳐 자신의 모습을 가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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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조류 한량무


이런 남자의 앞에 하얀 갓을 쓴 사람이 나타나 남자의 부채를 건네받는데, 현대의 후손이 전통을 향해 바통을 건네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갓을 쓰고 검은색의 겉옷을 입은 무용수는 저승사자 같았다.

 

여유를 가져다주는 가야금 뜯는 소리처럼 무용수의 몸짓은 느리고 묵직하게 움직인다. 외줄을 타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발디딤은 어디를 향할지 모르고, 옷자락이 신체의 일부가 된것 마냥 살짝 거머쥔 손가락은 공기를 어루만진다. 무용수의 손에서 수족처럼 부려지는 부채는 기울었다, 펼쳐지기를 반복하며 약간의 위태로움을 조성한다.

 

흥을 타듯 들썩이는 어깨는 절제미가 강하게 돋보였고, 그와 다르게 세상 조심스러운 손끝은 꽃잎 끝을 어루만지더라도 이슬 한 방울 떨어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유려하게 펼쳐졌다 접히는 부채는 공작새의 꼬리 같기도 했다. 하얀색과 검은색밖에 존재하지 않는 무대에서 화려한 공작새의 꼬리가 생각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한 명의 무용수가 만들어 낸 화려함은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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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조류 교방살풀이춤


살랑이는 부채 뒤로 조용히, 조심스럽게 5명의 여인이 들어온다. 흡사 저승세계로의 초대 같기도 한 입장은 장엄한 분위기를 낸다. 서글픈 구음 위에서 한 마리의 나비같이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가볍지만, 분위기가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느린 사위에 가야금과 장구 소리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는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의상도 한몫을 거든다. 모두가 다르다가 같아지는 움직임은 정갈한 느낌을 주면서도 통일성을 조성한다. 인위적일 정도로 둥글게 부풀어 있는 치마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쉽게 살랑거려 마치 꽃 주위를 맴도는 나비와 같이 느껴진다. 수건과 치마를 같이 어르는 모습은 섬세하다가도, 어깨 뒤로 천을 휙 넘긴 다음에 어깨춤을 추는 것은 호쾌하고도 신명 난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 개울가의 여인네들을 훔쳐본 승려처럼 여인들의 신나는 춤을 보는 것처럼 비밀스럽고도, 신명 나는 놀이를 본 것 같았다. 처음 등장과 같이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모습이 같은데 이런 데칼코마니 안무로 인해 덧없이 살다 가는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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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


마지막 무용수가 들어가기 전 무대로 나온 그녀는 서글픈 얼굴로 "쑥대머리"라 외친다. 바닥을 가득 비추는 조명은 별빛이 비치는 것처럼 점점이 찍혀있고, 이 때문에 한밤중에 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무대는 순식간에 애수로 가득 찬다.

 

춘향이가 이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른 것처럼, 지나간 끝은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기에 누군가를, 또 무엇을 그리워하며 부르짖는 것 같다. 바닥을 가득 느끼며 걷는 발걸음에서는 서글픔이 묻어나오고 객석을 향해 뻗는 손은 잡히지 않는 임에게 가닿을 수 없는 손길이기에 안타까웠다.

 

무대 간의 유기적인 서사 연결을 위한 무대라고 느꼈는데, 눈에 띄게 큰 동작이 없었던 이유가 크다. 다만,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명분과 지나간 순간을 그리워하는 감정이 적절하였기에 결이 다른 무대임에도 연속하여 이어 나갈 수 있는 장치라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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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조류 화선무


마주 보고 들어오다가, 같은 곳을 보기도 하고,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하는 이들은 어느 방향을 볼지 모르는 채 서로 가까워진다. 초록 저고리를 입고 부채를 양옆으로 활짝 펼쳐 든 이들은 한 마리의 원앙을 보는 것 같았다.

 

자연을 가득 담은 수묵화 안 평화로운 새들은 다채롭진 않아도 정갈한 자신의 날개를 뽐냈고, 이 과정의 몸짓은 한껏 깃털을 부풀린 새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부채를 접고서는 어깨에 멘 채 치마를 살랑이는 것은 수줍게 흔들려 꽃들과 나무들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잔뜩 화려한 손기술과 부채를 뽐내는 움직임은 과장되었으나 화려한 느낌과의 조화가 제법이었다.

 

입에 꽃을 문 원앙처럼, 손에 꽃부채를 든 그들의 사위는 조심스럽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주를 이룬다. 부채를 펼 때도, 팔을 옆으로 뻗을 때도 공기를 시원하게 베어버려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고 편안하게 볼 수 있음에도 풍류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무용수들의 사위는 무대 전체에 그림으로 된 꽃에서 날 수 없는 향기를 멀리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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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조류 입춤


얼굴에 부채를 살랑이며 무대를 배회할 때 순간적으로 섞여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초록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어 순간적으로는 모를 수 있지만, 이를 감싸고돌다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에 혼자 남겨지는 무용수는 강하게 절제된 움직임으로 마지막 무대를 시작한다.

 

천이나 부채 같은 소도구도 없이 오로지 손과 발, 곡선으로 가득한 옷으로 채워나가는 이야기는 느리지만 명쾌한 몸짓으로 이어진다. 치마 밑으로 보이는 하얀색의 버선은 종종거리며 무대를 활기차게 내딛고, 풍성한 치마를 거머쥔 손은 호기롭다. 어깨춤은 흥겹고 허공을 어루는 손 또한 이 흥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강한 절제는 호쾌함이 되었고, 양손으로 치마를 어루는 것에서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흥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의 박자로 돌아온 음악은 언제 흥이 올랐냐는 듯 무대를 환기해 주고 그 가운데 선 무용수는 정갈하게 장장 1시간 동안 달려온 무대를 마무리한다. 

 

 

 

하나의 무대가 끝나기 직전, 다음 무대가 섞여 들어오는 것이 오늘 공연된 이야기의 특징이다. 끝과 시작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때문에 5개의 무대 모두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달려왔다고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이 없이 끝을 맞이한 죽은 사람을 위한 무대 같기도 했고, 한 생명의 끝을 목도하고도 장렬한 끝을 위해 달려 나가는 산 사람을 위한 것 같기도 하다. 모두의 끝은 단 하나의 이름으로 정해져 있지만, 그 사이를 메꾸기 위한 시작은 어떤 것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은 예측 불변의 연속성을 띠고 있다고 무대는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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