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정취와 현대의 만남 '2023 대구전통춤문화제 同舞'
2023 대구전통춤문화제 '동무'
2023년 11월 5일 / 봉산문화회관 가온홀
- 글 : 최윤정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옛것의 의미가 퇴색되고 색이 바래지고 있는 오늘날, 전통의 맥을 잇고 '시대와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11월 5일 봉산문화회관에서 전통춤을 재해석하고 계승한 무대 '同舞'가 펼쳐졌다.
'2023 대구전통춤문화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펼쳐진 이 무대는 한국전통춤협회 대구광역시지부가 창단공연을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펼쳐진 대구전통춤문화제이다.
이번에 대구에서 개최된 춤 문화제는 기존의 전통춤에 더 활기 있는 색채를 불어넣어 줌과 동시에 전통이 건재함을 알리는 무대가 되었다. 춤꾼들의 움직임에서 엿보이는 한과 흥에 관객들 또한 도취할 수 있었던 공연이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
최선류 호남살풀이춤
출연 - 홍순이
무대 한가운데 핀 조명을 받고 선 무용수의 자태는 우아하기 그지없다. 무용수가 무대에 내딛는 발끝은 물 위를 걸을 수도 있을 것처럼 조심스럽다. 한이 잔뜩 서린 구음 위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조심스러운 몸짓을 이어 나가는 호남살풀이춤으로 '同舞'의 포문이 열렸다. 손가락으로 천을 살며시 어르다가 한 손으로 잡아채고서는 어깨를 들썩거린다. 애태우듯 힘을 조절한 어깨춤은 한껏 이 무대가 풍류로 돋보일 수 있게 한다. 흔들리는 치맛자락과 휘날리는 천 자락에 의해 곡선으로 가득 찬 무대는 한없이 부드러워 보일 수 있지만 무용수의 절제된 움직임으로 인해 균형이 유지되었다.
치마폭이 뱅그르르 돌고, 바닥으로 늘어뜨리려다 품으로 얼른 걸져 올린 수건에 관객들의 마음은 애가 닳는다. 곡선을 이루며 가볍게 흔들리는 물 빠진 색의 한복과 불규칙하게 허공을 유영하는 살풀이천이 어우러져 가벼우면서도 깊이 있는 기품이 느껴진다. 살풀이천은 무용수의 손끝에서 풀었다 얼러지며 주인의 품 안으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조심스러워 한층 더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남살풀이춤은 고도의 절제미와 간결한 움직임에도 짙게 깔린 한의 정서가 돋보인다. 얇은 습자지에 그림을 그리듯 고고했던 몸짓은 끝까지 기품을 잃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임이조류 신新향발무
출연 - 엄선민, 김윤서, 박채연, 박선영, 이효정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무대는 이내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찬다. 그에 더해진 몽환적이고 신비한 음악 속에서 청색 치마를 입은 무용수는 시종일관 방긋 웃는 얼굴과 동그란 치마의 영향으로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이어 4명의 무용수가 더 등장하는데 이들이 입은 치마폭의 색이 모두 달라 색색이 흩날리는 다섯 쪽의 치마가 꽃잎같이 느껴졌다. 고조되는 음악에 정갈한 소리를 내는 가벼운 움직임이 어우러지니 무대 위에 봄바람이 부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하였다. 치마의 색이 원색적으로 화려할뿐더러, 무용수들의 웃는 얼굴 덕에 벌을 유혹하는 꽃들의 놀이가 무대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대가 시작되면 관객은 자연히 무용수들의 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손은 여태 다른 무대들과 달리 앙 다물린 조개껍질처럼 살포시 접혀 있다. 접힌 손안에서는 차칵- 차칵-하는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들의 손안에 있는 향발이라는 제금악기가 봄바람 같은 움직임에 맞춰 맞물린 것이다. 그들의 손에 장착된 향발의 소리는 순간순간의 움직임에 소리를 더해주어 찰나의 몸짓에도 몰입되었다. 그들의 몸짓 자체에서도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음악만으로 채울 수 있는 청각의 즐거움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에서 시각과 청각의 자극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장유경류 선扇살풀이춤
출연 - 김순주, 편봉화, 서보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옷을 입은 세 무용수가 등장한다. 선비 같기도, 학 같기도 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다소 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천이 구성하는 불규칙한 곡선이 이를 무마해 준다. 아무 문양 없이 하얀 부채와 대비되는 검은 살 때문인지 온통 하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분위기가 더 묵직했다. 고고하다, 고결하다는 느낌과 함께 무거운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그들의 손은 조심스럽게 천을 얼렀다. 부채를 거두고 무대 위로 뻗는 발은 절제미가 강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부드럽게, 그러나 끊임없이 그들의 손과 발로 이끌었다.
중간중간 '얼쑤~!'하는 추임새로 인해 놀이판 같아 보이기도 한다. 부채를 엉덩이 쪽으로 쭉 뻗고 팔자걸음으로 무대를 배회하는 모양새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 양반을 보는 것 같았다. 곧게 선 양반을 가리키는 부채에 어떤 모습을 할지 알 수 없는 천이 더해져 딱딱할 수 있는 무대에 역동성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부채에 연결된 천을 다른 손을 움직여 모양을 잡는 것이기에 천이 순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강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천에 연결된 부채 덕에 천은 막연한 곡선이 아닌 끝이 존재하는 곡선을 갖게 되었다. 그 곡선의 끝은 언제까지고 곧게 뻗어있는 직선이다.
이매방류 호남검무
출연 - 김효주
아주 느리고 장중한 사위가 검무의 시작을 알린다. 손끝까지 빳빳이 들어간 힘은 강하지만 동시에 여유가 느껴진다. 천천히 공기를 훑으며 회전하는 무용수는 무대 위의 흐름을 느끼고 섞여 들어가기 시작한다. 바닥에 칼을 둔 채 그 뒤를 맴돌지만, 무용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흥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 절도 있고 확신 가득한 손짓이 계속되다가 이내 장단이 바뀌었다. 무용수의 사위와 같이 천천히 소리를 뽑아내다가 리드미컬한 음악이 전개됨과 동시에 줄곧 무대 위를 장악하던 공기 또한 가볍게 흐름을 바꾼다.
검은 반짝이지만 단단하지 않다. 날이 서 있지도 않으며 그저 반짝이는 제 몸에 닿는 빛을 튕겨내며 빛날 뿐이다. 때문에 예기가 등장하지만 무대 위의 흥은 고조되어 가기만 하며, 위협적이지 않다. 무용수의 손짓이 이끄는 대로 이리 휘고, 저리 휘며 검은 날카롭게 공기를 벤다. 동시에 흥겨운 춤이 더해져 경쾌함이 돋보인다. 느리고 장엄한 사위가 첫 장면인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무용수의 몸짓은 빠르게 변화하고 동작이 커진다. 검은 재빠르고 신속하게 허공을 베지만 그 끝은 섬세하기에 관객은 검의 몸체에 반사되어 무대 위에 넓게 퍼진 빛의 편린과 검의 끝까지 흥겨움을 담아내는 무용수의 움직임에 쉴 새 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한영숙, 박재희류 태평무
출연 - 손혜영, 박정희, 장윤정, 이인애, 신지연, 김희은, 이서현
천천히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에는 기품이 느껴진다. 살포시 들어 올린 치마폭 아래로 수줍게 삐져나온 발끝은 부드럽게 바닥에 닿는다. 7명의 무용수가 선보인 사위는 움직임이 모두 같아 그 앙상블의 웅장함이 돋보였다. 살랑살랑 흔들리며 계속되는 발디딤은 과거를 지나 오늘 날의 시간을 충분히 견디고 밟아내고 있는 현재를 말하는 듯했다. 지나간 시간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은 희망찼으며, 굳세었다.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마음을 담은 태평무는 그래서일까, 한 나라의 어머니가 만백성을 보듬는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휘날리는 일곱 개의 푸른 치맛자락은 한국의 미를 강조했고, 장단의 변화에 따라 부드러워졌다가 빨라지는 춤사위는 경쾌했다. 공기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것 같지 않게 움직임이 가벼웠고, 그들의 몸짓에서는 시간조차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여유와 기품이 담겨있었다. 모였다 퍼지는 동선의 모양이 피어나는 꽃 같기도 하다. 절제하면서도 지조가 느껴지는 동작은 고요하면서도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새처럼 느껴진다. 절정을 향해 가는 음악과 함께 흥을 돋는 관객의 박수 소리가 더해져 이 소리 또한 무대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며 막을 내린다.
이수현류 우도설소고춤
출연 - 조연우, 김혜미, 윤민정, 강길령, 이은수, 권정현, 이명진, 이예림
무대로 신명 나게 뛰쳐나오는 그들은 시작부터 경쾌했다. 시원시원하게 때려지는 소고는 움직임에 활기를 더했고, 극장 가득 울려 퍼지는 투박한 소리는 흥을 돋웠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늘하늘 흩날리는 여려겹의 겉치마는 美와 함께 부드러움을 가져다주었다. 무용수들은 격하게 움직이면서도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또 아래에서 신명 나게 두들겨지는 소고의 소리는 제게 주어진 몫대로 쩌렁쩌렁하다. 무용수들의 손에 꼭 쥐어진 소고는 그들의 손이 원하는 대로 소리 낸다. 재미를 추구하는 오늘의 무대를 위해 소고는 흥겨운 소리를 들려준다.
무용수들이 줄지어서 회전하며 들어올 때는 한 나무에서 연달아 꽃봉오리를 개화하는 목련꽃을 보는 듯했다. 호쾌하게 걸으며 크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는 잔뜩 오른 관객들의 흥을 깨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고조시킬 뿐이다. 빨라지는 소고 소리와 음악 소리에 관객들의 박수 소리 또한 빨라지고, 무용수들의 움직임 또한 활발해진다. 여덟 명이 일사불란하게 내는 소고 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다. 신나게 즐기면 그뿐인 것처럼 이 무대에서는 오로지 흥만을 느낄 수 있다. 잔뜩 오른 흥이 가시지 않는 듯, 무대의 불이 꺼졌는데도 관객들의 박수 소리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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