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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쳇GPT와 춤과 음악이 알려주는 '용서' 백과, 카이로스 무용단의 'Forgiveness Dance in Film'

 

수성아트피아 상주단체 기획공연 2

카이로스 창작무용 'FORGIVENESS DANCE in FILM'

2023년 10월 26일 / 수성아트피아 대극장

 

- 글 : 서경혜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인간 존재의 크고 작은 자존감은 여러 가지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똑같은 커피를 마셔도 맛이 있어 행복할 때가 있고, 맛이 없어 기분이 별로일 때가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셔주어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생명유지를 위해 먹어주어야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오감 육감으로 존재가 받아들이는 수많은 정보는 하루에도 엄청난 빈도로 감정선을 들쑤신다. 그러한 감정 중에는 도저히 타협하기 어려운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참을 수 없는, 용서할 수 없는 응어리를 만들어낸다. 나와 당신의 마음 속에 그런 응어리 하나 없는 사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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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크린에 chatGPT와 문답을 하는 화면이 펼쳐진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AI(인공지능)은 "... 원한이나 분노를 떨쳐내고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 말한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라 말한다. AI의 해답을 당신은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AI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흰 수트차림의 남자무용수가 연설을 늘어놓는다. 대화내용을 설명하는 것인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과장된 팔의 제스처가 사뭇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그가 내뱉은 말이 정말 언어이기는 한지, 알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다. 원한이나 분노, 내면의 평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의 모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I가 해결책을 친절하게 알려준다한들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기가 쉬울까 말이다. 아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무용수의 내레이션은 결국 우리 각자에게 마음 속 응어리를 들추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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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창이 닫히고 어두워진다. 하수에서 무용수가 작은 빛과 함께 걸어나오면서 손과 몸의 짓을 그림자로 투영해낸다. 고뇌하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리를 쭉 벌려 한 쪽 무릎을 꺾어 짚은채 무언가를 피한다. 그 검은 그림자의 모습이 어쩌면 내 안에 응어리에 괴로워하는 모습과 닮아 보인다. 무용수가 가진 조명으로 백스크린을 비추어내자, 그림자는 마치 광활한 은하계에 놓여진 미물(微物)의 몸부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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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이 올라가고 무대 뒤쪽으로 트럼펫 쿼텟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앞으로 커다란 검은 봉우리 다섯 개가 솟아있고 새하얀 튜튜를 입은 무용수가 그 봉우리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춘다. 가만 보면 느리게 술렁이는 검은 봉우리들. 그 위를 눕고 기대고 오르내리는 하얀 무용수의 관능적 모습이, 쿼텟의 느린 연주와 함께, 응어리 진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본격적으로 춤추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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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무대 위엔 다채로운 심상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봉우리 위의 튜튜는 드리워진 벽 구조물 위를 오르는 한편, 벽을 타고 내려오는 무용수, 흰 드레스에 고깔을 쓰고 우아하게 춤추는 무용수, 그리고 검은 봉우리를 연기했던 다섯 무용수는 이제 검은 베일을 쓰고 오른팔을 쭉 들어 뻗으며 이리저리 배회한다. 거기에는 울분을 떨쳐버리고픈 고뇌가 있고, 용서를 향하는 쉽지 않은 여유가 있고,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분노가 있어, 그 모든 것들이 뚜렷한 경계선 없이 섞여있다. 용서란 것이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칼로 잘라내듯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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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깔을 쓴 무용수가 옷걸이에 걸려있던 하얀 시스루 장삼을 입는다. 장삼자락이 느리게 펄럭인다. 영화 시네마천국 OST 중 '사랑의 테마'를 연주하는 트럼펫 소리가 흐르자 고깔이 바닥을 부여잡는다. 시스루 장삼의 변주된 승무가, 번뇌로 가득찬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어느새 꺼내어진 북채는 튜튜가 오르려 했던 벽 구조물을 타당 타당 두드리기 시작한다. 마치 법고를 두드리며 신명으로 번뇌를 떨쳐버리듯, 무용수의 동양적 타악과 서양 악기의 재지(jazzy)한 연주가 드라마틱하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빛으로 만든 관람차가 돌아가는 듯한 조명 연출이, 격정으로 치닫는 타악 놀음에 폭죽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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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지정 전문예술인단체로 등록된 카이로스(KAIROS) 무용단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아끼지 않고 타 장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익숙하고 틀에 박힌 것들을 새롭고 풍성하게 보여주는 색깔있는 예술단체다. 본작 'Forgiveness Dance in Film'은 '용서'에 대한 철학적 반성과 다양한 심상을, 춤과 즉흥적인 재즈 연주, 문학, IT, 영상기술 등 다채로운 분야를 접목하여 하나의 무대 예술로 구체화해 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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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전환되고, 구겨진 방향에 따라 빛을 반사시키는 은박 구조물이 서 있다. 트럼펫을 연주하던 '윱 반 라인'이, 어떤 심경을 토로하는 듯한 독백을 쏟아낸다. 원시인의 탈을 쓰고 상의를 탈의한 무용수가 그의 말소리에 따라 움직이며 동물적으로 바닥을 기고 구른다. 튜튜를 입은 무용수가 탈을 벗겨내고 그의 몸에 상처를 남긴다. 하얀 깃털이 가득 찬 양동이를 그의 머리 위로 들어부으니, 상처 입은 그의 모습이 더욱 비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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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씩 쌍을 이룬 무용수들이 같은 모습으로 양동이를 하나씩 들고 나타나, 서로의 머리에 씌우고 두드리며 밀고 밀리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검은 양동이 속에 스민 본능적 욕망은 누군가를 옭아매고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닌다. 붉게 물든 조명에 날카로움을 더하는 은박 구조물 앞에서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난무한다. 내 심장의 박동과 함께 쿵쿵 울리는 드럼 연주가 멋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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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조명으로 전환된 무대에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한 줄 한 줄 수놓인다. 무대 영상으로 시가 낭독되는 동안, 두 명씩 짝을 이룬 무용수들은 저마다의 갈등을 춤춘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영영 일어나지 못하거나, 서로 등을 맞대고 멀어지기도, 중재자로 말미암아 화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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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들이 보여준 하얀 욕망은 나의, 타인의, 누군가의 욕망이기보다, 화를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의 집착 일종을 연기한 것 아닌지. 시련 후에 희망을 종용하는 쿼텟의 연주 속에, 튜튜의 하얀 집착이 훠이 훠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마음 속 검은 응어리들이 바라다보는 마지막 모습에서 카이로스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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