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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마지막 장에서 목격한 PANORAMA '세상에서 살아내기' 

 

대구문화창작소 대구애서愛書 시리즈 10

박영현, 오하솜 '세상에서 살아내기'

2023년 08월 27일(토) 오후 6시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최윤정

- 진행/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인간의 죽음 직전에 스쳐본 파노라마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흔히들 말하는 '주마등'이 아닌 '파노라마'를 본다고 하는 이야기는 27일 퍼팩토리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촬영의 기법으로만 알고 있었던 '파노라마'는 변화와 굴곡이 많고 규모가 큰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새싹'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자신의 파노라마를 세상에 내비치는 것일까.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스스로 불행을 드러내는 것인가. 짙은 스모그가 무대 위를 채우고 새싹이 무대 위의 틀 안에서 꿈틀거릴 때, 이야기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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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은 웃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을 참는 듯 입가가 움찔거렸다. 그러다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지고 나면 다시금 표정을 추슬렀다. 무대 위에 위치한 은색의 틀에서 기어 나온 새싹은 어딘가 억눌려 있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웃지 못하고, 일어서지 못한다. 틀 안을 기어 나오고 나서야 자기 다리를 휘감고 있는 풀 무더기를 본다. 풀을 지그시 바라보다 끌어안고, 끌어안다가 꾹꾹 눌러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에 성공한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통제 잃은 몸뚱어리, 의지를 상실한 채 나풀거리는 팔과 다리뿐이다. 본인이 아닌 타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몸은 전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것마저 다른 통제의 아래에 있을 뿐, 그녀는 완전한 자유를 되찾지 못했다.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학창 시절에 매일 같이 같은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했던 것, 성인이 되고 나서도 대학교와 직장, 이어지는 결혼과 육아라는 굴레에 갇히는 것. 그것이 '통제'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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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는 어떤 통제가 존재할까. 가장 먼저 성장에 따른 압박을 느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순간의 자유, 하지만 이것조차 아주 짧게 허락된 유흥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억제한 채 맞이하는 순조로운 성장은 어떤가.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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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은 병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병든 새싹에게 유년기의 기억이 찾아온다. 딸랑- 종소리를 내며 인형과 함께 찾아온 기억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행복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며 새싹과 그를 통제하던 고통에게 꽃과 종을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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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사소한 자신의 소유물을 쥐여준 것으로도 모자라 새싹과 고통을 직접 일으켜 세워 특정 자세를 취하게끔 조종한다. 자신의 뜻대로 배치한 뒤 만족한 것처럼 웃는 행복에게는 작금의 이후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모습만이 머물러 현재를 사는 그들을 보듬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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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무용수는 모두 자의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고 있거나, 자신의 고통 안에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인다. 팔이 쭉 뻗어졌다가 이내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꺾인다. 부딪히고 얽히며 이들의 파노라마는 치열하게 살아왔던 한 굴곡을 얘기한다. 옷을 빼앗아 입으려 하고, 옷에 자기 몸을 비비며 자기도 그 옷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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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방 끝에 사람의 소유물인 옷을 쟁취한 이는 행복이다. 하나의 生을 차지한 행복은 웃다가도 지쳐 쓰러지고, 다시 웃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바닥을 구른다. 행복이 가리고 있었던 새싹의 내면이 은색의 작을 틀 안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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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불투명한 막 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새싹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새싹이 보여주고자 하는 물감의 흐름만이 우리의 시선으로 주어진다. 빨간 물감으로 사람과 뇌를, 초록 물감으로 풀을, 노란 물감으로는 나무와 앉아있는 사람을. 새싹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림은 직관적이지 않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그림들은 환상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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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은 이 그림들과 같이 환상 속에 머무를까, 아니면 그림의 배경이 되는 현실로 찢고 나올 것인가. 새싹은 단순히 나무로 지나칠 수 있는 사물에 색을 부여해 주었다. 길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풀에는 그녀의 시선으로 보이는 초록색을 부여해 주었고, 지쳐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행복을 주고자 노란색을 담아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고통뿐인 파노라마라고 했지만, 마냥 고통뿐인 삶은 아니었으리라 예측해 본다. 그녀의 손끝에서 발끝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은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비록 그 끝에 상실된 억제가 자리한다고 해도 그녀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고통은 새싹이 그려놓은 그림의 안에서 숨 쉰다. 풀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풀 끝을 건드려 보기도 한다.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병들어 있던 새싹과 숨통을 트여준 행복이 함께 호흡하는 장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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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통제하기만 했던 새싹은 자신의 통제 아래에서보다 자유로워 보였고, 똑같이 아파하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았다. 고통은 새싹과 행복이 없는 세상을 유영한다. 공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절단하고, 사랑스럽게 감싸 쥔다. 하지만 끝내 그녀가 머무르기를 택한 세상은 환상이다. 새싹이 그려놓은, 빨간 사람의 환상 속에서 숨쉬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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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가량 정도 되는 이야기는 여러 번의 변주를 거쳤고, 이 파노라마 안에는 한 사람의 다양한 내면이 담겨 있었다. 무용수들의 몸뿐만 아니라 작은 틀과 그림으로 내면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였으며,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움직임은 안쓰럽기도 했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순간적인 움직임에서는 찰나에 느꼈을 감정이 배어 나왔으며 여러 가지의 음악이 이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지만, 결코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맛본 사람은 고통 대신 행복을 취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행복에 과도하게 취한 사람은 아주 작은 고통에도 쓰라려 어쩔 줄을 모른다. 행복과 고통 사이의 간극을 잘 유지하는 것. 이들이 살아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 간극의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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