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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클라인플라츠,

본성이라는 무기로 강제되는 아름다움 그 '불편한 진실; red pill'을 춤추다

 

불편한 진실; red pill

2023년 8월 23일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서경혜

- 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조명 아래 남자 무용수가 잿빛 드레스를 입고 측면으로 앉아있다. 무심히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정면을 힐끗 본다.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 보이다가도 고개의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따금 지쳤다는 듯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한숨을 푹 내쉬기도 한다. 어쩌다 빛이 흘러드니 그쪽을 향해 보고, 소리가 나니 소리 쪽으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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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풍의 음악이 들려오니 비로소 무용수는 엉덩이를 쭉 빼어들며 일어선다. 그는 팔을 차례로 굼실 굼실거리더니 허공으로 다리를 들어올려 발을 구른다. 돌연 바닥을 치며 입을 아 벌리고 우는 시늉을 하다가, 곧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춤을 춘다. 바닥에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구르고, 머리를 바닥에 심고, 자주 다리를 들어올려 허공에 발길질을 한다. 빠른 비트의 음악에 비해 느릿한 그의 춤은 지루함을 못 이기는 몸부림인가 싶다가, 어쩌면 바다 생물이 해저를 떠돌며 모래 속을 파고드는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객석 가운데서 재킷을 걸친 두 무용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무대로 향한다. 이제 무대에는 네 명의 무용수가 위치하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안무자가 두 무용수의 재킷을 벗겨 든다. 그는 양 손에 재킷을 집어든 채 느리게 가슴과 목을 번갈아 앞으로 뺐다 넣었다 하며 물결모양의 몸을 연기한다. 재킷을 빼앗긴 두 무용수도 서로의 등을 맞대고 온몸을 물결처럼 움직인다. 알록달록한 형광색 탑을 입은채 함께 몸을 일렁이는 모습에서 화려한 수중 산호초의 모습이 오버랩 되니, 검은 드레스가 연기한 생물은 마치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예리한 상어 또는 고래가 아닐까 한다. 탐색을 하듯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웨이브를 타는 그들의 몸. 부력의 영향 하에 있는 수중 생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상당히 담백하게 연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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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 플라츠(Klein Platz Dance Company)의 '불편한 진실; red pill'은 평온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바닷 속 해양 생물들의 모습을 춤추어 보이면서, 그들의 삶이 실제로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먹이사슬 생존경쟁에 그물처럼 얽혀있음을 보라고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그러다 남자 무용수가 재킷을 입고 성큼성큼 걸어나와 무대를 가로질러 들어간다. 지금까지의 수중 생물 캐릭터와는 움직임의 결이 달라 보인다.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위협하더니 서로 몸싸움을 하고, 다른 여자와는 머릴 맞대고 부둥켜 안는다. 그러다 남자는 갑자기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무엇이 괴로운지 악! 비명을 지르며 경악한다. 이 또한 바닷 속 풍경이겠거니 한 장면들은, 기실 물 위 세상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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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강자에게 먹히는 자연의 생태계. 우리 마음 속의 자연은 언제나 아름답고 평온한 상태를 지속하고 싶지만, 실상 개별 종(species)의 살이를 들여다보면 약한 종을 잡아먹기 위해 힘을 휘두르고, 먹히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도망친다. 최고 포식자들은 밀림의 왕, 바다의 왕이라 추앙받지만 실상은 자신의 생명 부지를 위해 매일같이 살생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백상아리의 거대한 톱니같은 이빨에 몸이 두 동강 나서 피를 철철 흘리는 물개의 꼬리가 아직 철퍼덕 거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며 그저 자연의 섭리이니 아름다울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그들의 살이가, 나아가 인간의 삶이, 자연이라는 집단적 미명 아래 그저 아름답게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아름다움, 균형과 조화라는 것에는, 드러나지 않는 먹이사슬에 하위 생물들의 희생이 공공연하게 묵살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웅장하고 멋진 외모를 가진 사자나 고래를 볼 때 그들을 강인하고 용맹한 생명체로 여기고 싶어할 뿐, 그들보다 작은 생물체가 그들에게 맞서 싸우거나 공격하는 모습은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자기보다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에게 공격당하는 일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 인간이고, 이에 약육강식을 전제하는 자연계를 그저 아름답다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도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발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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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이러한 고민을 최고 포식자의 춤으로 표현해낸다. 으어아 음산한 구음과 함께 절박함에 몰린 검은 드레스는 몸부림 치다가 엎어지고,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듯이 이마를 부여잡고 고뇌한다. 상체를 뒤로 젖혀 객석을 주시하고 마치 화가 난듯이 그대로 구른다. 어쩌면 본성이 그렇게 생겨먹은 자신의 모습을 왜 아름답다고 하는가, 혹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하고 따지고 싶은 듯 보인다. 상당히 역설적인 장면이다.


결국 작품은 인간 세상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초콜릿 스낵의 검정색이 좋고, 거룩해 보이는 흰색이 좋다며 노래가사는 여러 가지 색을 장황하게 읊어댄다. 그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춤은 무용수 그들 각자의 모습이다. 설령 다른이에게는 무관심이고 심지어 거부감이 생기는 모습일지라도,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모양이다. 춤은 그렇게 인간 세상 역시 평화롭고 조화로운 인류의 공존을 위해서 누군가의 개성이나 욕망이 억눌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공동체적 시선 속에 자유롭지 못한 내 모습을 발산하고자 하는 그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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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인류적 멋대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그 '아름다움'은 이제 네 무용수의 몸에서 하나 둘 벗겨져 불투명한 대형박스 안에 버려진다. 본성이라는 무기로 강제되는 아름다움. 그 불편한 진실을 가리는 답답한 대형박스를, 바닥에 주저앉은 네 무용수가 하릴 없이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성가 곡조가 애잔하게 울려퍼진다. 어쩌면 창조주의 아이러니함이 조심스럽게 원망스러운 듯이.


작품은 클라인 플라츠 무용단의 대표인 조혜원 안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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