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관철하는 세 가지 시선, 제25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제25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
2023년 7월 22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 글 : 최윤정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25회 전국차세대안무가전'에 진출한 세 개의 작품은 '죽음'과 '삶'을 관통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삶과 죽음을 관철하는 시선은 다르지만, 그 이면에 슬픔은 없었다. 끝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하며,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불태우는 순간만이 남아있었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선보여진 세 가지 작품은 슬프고, 잔혹하며, 영원한 이별일 것만 같은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제공하고 그 시선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온다. 살아가는 생명이 하루를 살아내는 온상을, 그를 표현한 몸짓의 향연은 조용히 다가와 위로를 건넨다.
율:동무용단 '백화白化 - 상실의 시대' 안무 이유리 ⓒ이재봉
수면 아래 백색의 美 '백화白化 - 상실의 시대'
(율:동무용단 / 안무 이유리 / 출연 구민지, 송다원, 우수민, 배소영, 이유리)
긴박한 음악 위에서 바닷속 흰색의 산호가 너울거린다. 푸른 조명 아래 산호의 겉껍질을 뒤집어쓴 무용수의 움직임은 신비롭다. 산호는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갈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결 따라 흔들거린다. 얼핏 보면 산호는 한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자리에 계속 머물지만은 않는다.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이 살 곳을 찾아 이동한다. 아주 조금씩.
음악이 바뀌고, 긴박한 음악으로 가득했던 무대는 어느새 바다가 된다. 파란 조명이 가득하고,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웅-웅- 물먹은 소리가 공기를 타고 퍼져나간다. 무대에는 여러 명의 무용수, 여러 개의 산호가 등장한다. 모두 백화된 상태이다.
율:동무용단 '백화白化 - 상실의 시대' 안무 이유리 ⓒ이재봉
백화된 산호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의 공급이 중단된 채 조류를 따라 이리저리 휩쓸린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랑거리다가, 자연의 순리대로 쓰러져 넘실거리기도 한다. 등에 산호처럼 보이는 하얀 천을 매단 무용수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같은 몸동작에도 각자 다른 결을 따라 흔들린다. 그럼에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움직임같이 느껴진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한 생명의 아우성처럼 말이다.
백화된 산호는 단 두 가지의 갈림길밖에 없다. 폐사되거나, 그럼에도 살아가거나. 종장에 다다른 산호는 커진다.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아간다. 몸집을 더 키우고, 더 많은 생물의 터전이 된다. 자신의 생이 다할지언정, 삶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가 다 할 때까지 살아간다. 마지막까지 고요하게 너울거리던 그 모습처럼.
장요한무용단 '사계死屆' 안무 장요한 ⓒ이재봉
생을 넘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삶 '사계死屆 - 봄, 여름, 가을, 겨울_죽음에 이르다'
(장요한무용단 / 안무 장요한 / 출연 강남주, 김도연, 이대희, 이명진, 신혜민)
느릿한 템포의 웅장한 음악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운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묵직하고도 정적이다. 무대 중앙의 무용수가 참방참방- 아이가 물장구를 치듯 물 위를 치는 것 같다. 그 물 위로 헤엄을 친다. 무대 중앙의 '사람'을 둘러싼 사계, 시간은 느릿하게, 어쩔 땐 빠르게, 사람 곁을 스쳐 지나간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삶의 끝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조명이 모두 꺼지고 오직 무대의 한구석만이 밝게 빛난다. '사람'은 어두운 죽음에서 밝게 빛나는 삶을 향해 기어가지만, 도달한 그곳은 삶처럼 보이는 죽음이다. '사람'의 머리카락에 꽂혀있던 삶에 대한 의지를 뽑아 죽음에 바쳤지만, 그가 숨 쉬던 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끝에 도달한 자신을 안쓰러워하다, 차마 숨 쉬던 생에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던 주변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숨 쉬는 생과 다를 바 없이 죽음 이후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을.
장요한무용단 '사계死屆' 안무 장요한 ⓒ이재봉
'사람'은 시간 속에서 웃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여전히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시간과 발맞추어 걸어간다. 애써 뒤꽁무니를 쫓기만 했던 생과 다르게 숨이 멈춘 이후는 시간과 함께 걸어간다. 음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조명이 하나둘씩 꺼진다. 사람은 다시 의지를 가지고 걸어간다. 끝이 어딘지 모를 다시 한 번의 생을 향해.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이르는 四季(사계)가 아닌 죽을 사(死), 이를 계(屆). 현존하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죽음을 체험해 본 적 없다. 나뭇가지는 썩어 떨어지면 생을 다하는 것이라 하지만 나무는 그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뿐이다. 죽음 이후에 남겨질 사람과, 홀로 죽어간 사람 모두가 다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아침 '운명:엔트로피' 안무 정다은 ⓒ이재봉
정해진 삶의 총량을 억제할 수 있는가 '운명:엔트로피'
(아침 / 안무 정다은 / 출연 정다은, 김재은, 박원정, 이민주, 이유선)
무대 한가운데 파란색 드럼통이 있다. 쓰러진 사람들 사이로 등장한 소녀는 색색의 풍선에 공기를 불어 넣고 드럼통에 넣는다. 기계 같으면서도 차가운 소리를 내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로봇 같고 기이하다. 한 명씩 풍선을 불어 드럼통 안으로 넣는다. 계속해서 풍선을 넣지만, 이상하리만치 채워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펼쳤다가 스르륵 접고서는 기도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짝- 하고 친다. 혼자서 이 안무를 하면 그저 춤처럼 느껴지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안무를 하면 이 동작은 하나의 의식같이 보인다. 현재를 살아가며 다가오는 미래를 살아갈 사람은 양쪽 다리와 양쪽 팔 모두 옷에 끼워맞추듯 들어가 있다. 그러나 과거가 된 사람들은 옷을 다 입지도, 벗지도 못한 채 무대 위를 어지러이 배회한다. 점점 고조되는 음악과 격렬해지는 움직임은 통제가 불가하다. 그러나 풍선 불던 소녀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멈춘다. 쓰러진 무용수들 사이로 등장한 소녀는 드럼통 안에서 풍선을 들어올리지만, 이미 쪼그라져버렸다. 소녀는 무용수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풍선 껍질을 흩뿌린다. 그리고 다시 풍선을 불어 항아리 안에 넣으며 끝이 난다.
아침 '운명:엔트로피' 안무 정다은 ⓒ이재봉
무대는 혼란하며 무질서하다. 무용수들의 춤은 파괴적이고, 기이하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한다. 무대 위 항아리에 들어간 풍선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무용수들의 춤은 격렬해진다.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혼란에 빠진 사람에게 질서란 없어진다. 질서가 무너진 삶의 끝에 찾아올 것이라 예견된 것은 '죽음'이다. 이 모든 행위는 혼란에 빠져있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이 몸짓들은 자신의 운명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이토록 처절하고 파괴적인 기록을 보고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 좌절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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