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된 자기의식에의 젊은 반성 'THE HUMAN FACTORY' 리펍아트컴퍼니
대구애서 시리즈 7 - 리펍아트컴퍼니 '인간공장'
2023년 7월 9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리펍아트컴퍼니의 두 번째 정기공연 '휴먼팩토리(THE HUMAN FACTORY)'가 지난 7월 9일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대구문화창작소의 대구애서愛書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으로, 대구에서는 초연된 무용단의 작품이다. 무용단의 대표인 한기태 안무작이다.
어둠의 모퉁이에서 한 무용수가 나타난다, 얼룩덜룩 기름때가 잔뜩 묻어보이는 건빵바지에 검은 상의를 걸친 모습. 검은 팔이 이 손 끝에서 저 손 끝으로 계속해서 굽이친다. '띠띠' '삑삑' 진행을 알리는 듯한 일정한 알람음이 무용수의 동작을 기계적으로 만든다. 굽이치는 팔의 반동으로 온몸이 일그러진다. 마치 뼈 마디가 굽은 것처럼, 손바닥이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1인의 춤은 군무로 이어지고 처음의 무용수는 후에 합류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저지하려는 모습이다. 마치 자기 외의 다른 이들이 그리는 파동을 상쇄시키려는 것 같기도 하고, 증폭시키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졌다 다시 느려지며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발을 동동 구르며 공간의 끝을 마주하자 한 명씩 뒤로 튕겨져 나와 반대편에서 다시 각자의 파동을 그린다.
'THE HUMAN FACTORY' 인간공장. 이 시니컬한 타이틀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그리고 굳이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이해될 법한 거리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리펍아트컴퍼니의 고민은 파동[波動], 좇다[從], 잠식[蠶食]의 장(scene)으로 표현된다. 인간의 삶이란, 소수가 일으키는 파동을 다수가 좇아가다 결국 잠식되고 만다는 것이다.
'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아갈 의미를 잃는다고 하지마는, 누구나 태어나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과 출산을 하는 삶을 어쩌면 우리는 사회로부터 강요받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한 삶이 가장 의미가 있고 행복한 삶이려니 하고, 스스로의 가치 판단 없이 다수가 사는 삶의 행태를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이며 어려운 일인가! 많은 아이들이 탄생 후 버려지고 심지어 친부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뉴스기사가 빈번한 작금의 현실을 볼 때, 과연 출산과 양육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군중 속에 일체화 되어 그만 자기의식을 잃고 살아간다. 결혼과 출산, 양육의 무게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흔히 접하게 되지만, 그 전에 얼마나 심사숙고하고 공부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유되는 바가 없어 보인다.
'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그들은 무대를 그저 왔다갔다 하다가 멈칫하고 머뭇거리다 쓰러진다. 넋이 나간 듯이 걸어가다가 넘어질 뻔하고 다시 일어선다. 자기가 형성하는 파동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혹은 어떤 파장에 휩쓸리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로테스크한 음악과 '띠띠' '삑삑' 기계음에 끌려 다닌다.
무대는 다시 안무자의 독무로 이어진다. 격렬하게 흔드는 팔에 온 몸이 출렁거리고 '띠띠' 이상음에 저항을 받는 듯이 머뭇거린다. 사운드가 잦아들자 바람의 소용돌이 같은 무용수의 몸짓은 무언가를 잡으려 한다. 오른손이 잡아내리려는 것을 왼손이 저지하며 무용수는 몇 번이나 넘어진다. 끝내 무언가를 잡은 듯한 무용수의 춤은 빠른 음악과 함께 오른손을 추앙하듯 치켜든 무용수들의 군무로 이어진다. 행동하는 오른손, 열일하는 오른손의 춤이 상당히 퍼포먼스적이다.
'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자신의 개성을 스스로 망가뜨린 후 붉은 불빛 아래서 깨어난 인간들은 무언가에 빙의된 듯이 절을 올리며 느리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들이 좇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적인 것인지는 정작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의 춤에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런 저런 사람들의 행동양식이 내포되어 있다. 혼자서도 꿋꿋한 사람,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가는 사람, 다수를 좇기만 하는 사람... 그들은 자주 열일하는 팔을 떨고, 두 무용수가 한몸이 되어 기이한 동작을 한다. 마치 다른 인간들의 똑같은 시행착오적 삶처럼 비슷한 동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메세지를 잔뜩 담은 동작들이 장장 50분 남짓한 시간동안 숨이 막히도록 전개된다. 보는이의 불편함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안무자는 곳곳에 비보잉 동작을 곁들여 작품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소화했다. 재미로 여겨지기만 했던 스트리트댄스의 동작들이 인간 존재의 다이내믹한 삶의 단면들을 이토록 절묘하게 담아낼 줄이야. 잘 알지도 못한 채 군중심리에 이끌리는 기계적인 인간의 삶, 그것을 말이다.
'The Human Factory' 안무 한기태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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