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기에 내가 '놀' 놀무용단 그 두 번째 춤
대구애서 시리즈 6 - 놀무용단 그 두 번째 춤 '놀'
2023년 7월 8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대구문화창작소의 대구애서愛書 시리즈 여섯 번째 무대, 놀무용단의 공연이 지난 7월 8일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놀무용단 출연자 기념촬영 ⓒ이재봉
대구애서愛書 시리즈는 대구 외의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무용단을 초청하여, 대구시민들에게 다양한 공연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아울러 지역간 무용교류의 장을 마련하고자, 대구문화창작소가 연중 기획 시리즈로 주최하는 프로그램이다. 구미시립무용단의 수석단원 출신인 장현진을 주축으로 창단된 놀무용단은 구미지역에 기반을 둔 무용단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한영숙류 태평무를 비롯하여 달구벌입춤, 부채입춤, 진도북춤이 1부 무대에 올랐고, 무용단의 창작무인 '놀'이 2부 무대에 올랐다. 이 글은 작품 '놀'을 리뷰한 것이다.
창작무용 '놀' / 안무 장현진 ⓒ이재봉
놀 (안무 장현진/ 조안무 안주연, 이지민, 이선경)
측면으로 누운 무용수의 오른손이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쿵덕! 쿵덕! 심장이 뛴다. 숨을 쉰다. 나!다. 심장의 박동이 존재를 피력한다. 한국적인 현의 소리가, 흐트러짐 없이 가르마를 탄 무용수의 단아한 몸짓을 서서히 일으킨다. 서두르지 않고 유려하면서 자신감에 찬 몸짓, 흑칠한 두루미의 비상하는 날갯짓이 도도한 듯 무표정한 얼굴과 함께 휘 휘, 춤은 마치 슬로모션(slow motion) 처리된 공간에 놓인 듯 보는이로 하여금 차분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명 '놀'.
놀, 룩, Nol...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보일 수 있다는 '놀'이라는 글자처럼,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춤을 만든다'고 해서 '놀'이란다. 작품은 길, 소외, 소통, 신뢰의 장(scene)으로 구성되어, 서로간의 소통을 통하여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춤춘다고 소개되어 있다. 무용단의 이름 역시 '놀무용단'. 굳이 프로그램북의 설명이 없어도 그들의 시그니처 작품처럼 보인다.
창작무용 '놀' / 안무 장현진 ⓒ이재봉
무용수의 뒷편에는 네모 반듯한 블록을 이어놓은 길이 나있다. 같은 길 위에서 마주한 두 무용수. 그러나 반듯이 쭉 뻗었던 길은 블록의 이탈로 갈래갈래 갈라지고, 그 위를 조심히 디디며 자신의 춤을 그려나가는 무용수가 있는가 하면, 등을 돌리는 무용수가 있다. 살아감으로 디뎌온 여로(旅路)처럼 무용수가 밟아간 길 위의 춤은, 그가 터득해온 세상의 상식과 믿음으로 굳건히 세워진 마음의 집과 같이 뿌듯하다.
분위기가 전환되고, 멋대로 갈라진 길을 외면했던 무용수는 블록들을 모아 자신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길 위의 춤을 추어 보이던 무용수의 외면을 받은 채. 이리 맞춰 보고 저리 맞춰 보며 가장 크고 네모 반듯한 모양을 만들어보이고 싶은 그이. 그러나 아무리 블록을 맞추어 보아도 반듯한 터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완성되지 않는 블록의 모양은 마치 마음의 크기, 마음의 모양인 것처럼 무용수의 불완전한 내면이 투영되어 보인다.
창작무용 '놀' / 안무 장현진 ⓒ이재봉
그이의 공간을 비추는 조명이 붉은 빛에서 자줏빛으로, 보랏빛으로, 푸른빛으로 바뀌면서 무용수의 굳은 마음을 흔든다. '이제까지 내가 믿어왔던 세상의 상식이란 어쩌면 나만의 상식일 뿐이었나!' 내가 좇아온 잣대란 결국 나만의 기준이었는지도 모를 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야만 비로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마음(心)의 모양이, 블록의 춤 안에 숨어있다.
인간(人間)이란 따지고 보면 사람 사이. 더불어 웃는 세상이 좋은 것이려니 하지만, 같이 웃기 위해서 누군가는 못내 속으로 울어야 하는 것이 인간사 아니련가. 이해라면 이해고 희생이라면 그러한. 아마도 '소외'라고 이름 한 장(scene)에서는, 살면서 상식이라 믿어왔던 기준들이 아집(我執)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 한없이 작아지고 외로워지는 인심(人心)의 모양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렇다. 외로움의 춤이 아름답게 보인 당신이라면, 나와 당신의 마음에 최소한 발가락이 닮은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한다'고 말한다.
창작무용 '놀' / 안무 장현진 ⓒ이재봉
이제는 상대가 가져다준 한 장의 블록으로 비로소 안정적인 네모 공간이 형성되고, 같은 듯 다른 몸짓으로 하나 둘 모여든 무용수들이 블록을 사이에 두고 어울려 춤을 춘다. '나는 너'라는 말만이 의미를 가지는 노랫소리가 또한 유의미하게 들린다. 그렇게 둘이서 넷이서 나눈 향기로운 몸짓 끝에, 펼쳐진 블록을 차곡차곡 합심하여 포개는 모습은, 마치 그들 각자의 고집스러울 마음 한 꼬집 잠시 떼어두려는 듯 풋풋해보인다.
곧 빠른 음악으로 분위기가 환기되면서 무대는 화합의 장으로 빠르게 내달린다. 서로가 있기에 자신의 춤을 출 수 있음이 기쁠 뿐인 무용단 7인. 그들의 마지막 군무는, 배우들의 노랫소리만이 음소거된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마냥 절제된 흥을 안긴다.
어느 CF의 카피처럼 '같이'의 가치를 춤춘 '놀'의 무대. 고즈넉한 호흡으로 흐르던 한국무용의 춤사위가, 실상 서로에게 전하는 격려와 축전의 파티처럼 활기차게 매듭지어지는 모습에서, 정중동의 미학을 잊지 않은 듯 소소한 재미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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