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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춤으로 고찰한 소문과 두려움 그리고 자유

대구문화창작소 ‘네 번째 All That Ballet’

 

제4회 올댓발레

2023년 6월 4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김리윤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몸의 언어는 무한하다. 제대로 들여다보면 말보다 진한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받아들이는 풀이가 다를 수 있다. 저마다 해석하고 느끼는 면모는 다양하겠다. 분명한 것은 진정성이 녹아있다면 가둬둔 감정을 무장해제시킨다는 점이다. 


지난 4일 오후 6시 퍼팩토리소극장에서 본 춤이 그랬다. 올해로 네 번째 선보인 올댓발레(All That Ballet)는 생존하기 위해 저절로 장착된 두려움을 오랜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달콤하나 그 끝이 쓰디쓴 악성 소문, 자유를 향해 아름답게 날고 싶은 고운 욕망도 절실히 드러냈다.  


대구문화창작소와 스테이지줌이 마련한 이번 공연에는 모두 3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소문과 푸른 나비 2작품은 무대에서, 한 작품 모로 반사는 아쉬웠지만 무용수의 사정에 따라 미리 준비된 영상으로 접했다. 


역시 소극장에서 보는 발레는 큰극장에서 보는 발레 못잖은 매력이 있다. 무용수와 관객 간 거리가 가까워 굳이 애쓰지 않아도 표정이나 감정이 실감나게 전해졌다. 고전발레처럼 대규모 무대장치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많은 무용수가 등장하지 않아도 창작성이 담긴 자유로운 움직임에 무용수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담겨 있어 좋았다. 당연히 안무에 따라 동작이 이루어졌을 터.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감정으로 이어졌다. 이게 바로 현대 무용이 갖는 장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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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반사 / 안무 박지원 ⓒ이재봉


얼어붙은 몸과 마음 말랑말랑하게
모로반사(안무 / 출연 박지원)  

 

바다 물빛처럼 깔리는 조명을 비켜 박지원이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다. 방금 자궁 속을 빠져나온 태아 같다. 거친 타악이 일정하게 들리고 두려움에 휩싸인 그가 오른쪽 발가락을 눈에 띄게 꿈지럭거린다.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좌우로 꿈틀대며 움직인다. 한쪽 다리만 게걸음질 하다가 다시 좌우로 뒤튼다. 얼굴 따로 몸 따로 움직이는 통에 기괴하게 보인다. 


날카롭게 들릴 수도 있는 소리는 여전히 고정적으로 들린다. 이제 다리를 브이 형태로 펴고 쉬는가 싶더니 이내 웅크린다. 아직은 설 줄 모르는 갓난아기의 몸짓이 이어진다. 
‘땡’ 하는 청명한 종소리가 타악 위에 덧대어진다. 종소리의 간격이 줄수록 무용수의 움직임이 격렬하다. 서기도 하고 웅크려 기어가기도 한다. 종소리가 끝나고 타악은 보다 둔탁하게 바뀐다. 발레리나의 아래로 비치는 조명도 어느새 바뀌어 있다. 뭔가 변화가 있는 모양이다. 


무용수는 엎드려 기다가 고양이 자세를 취한다. 오른 팔다리를 가볍게 공중으로 올리더니 다시 엎드려 정면을 응시한다. 일어서서 보행하는 자세를 취하다 뛰는 동작을 보여준다. 검은색 무용복이 짧아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유난히 선명하다. 


급기야 서고 보행에 이른 박지원은 드디어 양팔을 벌리고 연한 리듬을 가미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타악은 피아노 선율로 바뀌고 새소리가 입혀진다. 마침내 평온함을 찾아든 듯하다. 여기에 현악이 합세한다. 약간의 역동성이 일어난다. 두려움을 깨는 순간, 원래의 웅크린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알을 깨고 힘겹게 세상 밖으로 나온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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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반사 / 안무 박지원 ⓒ이재봉

 

모로반사, 작품 주제가 눈길을 끈다. 두려움이나 놀람을 표현하는 신생아의 원시적 반응이다.  28~32주 내 태아에서 나타나고 태어난 후 6개월 전 사라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시기에 태아는 대개 갑작스러운 소리나 움직임 등 주변 상황에 놀라 팔을 넓게 편다. 손가락을 벌리며 뒤로 눕다가 팔을 몸 중앙으로 닫고 울음을 터트린다. 전문가들은 오래 지속되는 경우 신경학적 문제의 징후로도 본다.  


작품을 발표한 박지원은 모로반사에서 나타나는 얼어붙은 몸의 상태를 모티브로 하여 창작의 물꼬를 텄다. 저편 기억에서도 찾기 어려운 유아기 경험을 소환한 그는 공포를 경험할 때 나타나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 반응들을 움직임으로 구체화했다. “딱딱해진 고체의 내 몸을 고여 있던 눈물이 흐르며 파편화되고 온전한 슬픔에 녹아 액체가 된다.”며 세상 밖을 나오는 순간 생명을 감싼 모든 장치가 없어짐으로써 느끼는 공포와 그 두려움을 삭이는 모습을 그려냈다. 


두 팔의 자유로움,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시야를 덮는 붉은 빛, 직접적인 소리들. 탄생의 순간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하여 Ballet Base와 Contempory를 접목한 다양한 움직임을 연구하여 표현했다.  


박지원은 한양대학교 무용과(발레),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한양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다. PNB(Pacific Northwest Ballet)와 SDB(Sandiego Ballet) 연수를 마쳤다. 제25회 대구무용제에서 작품 ‘남겨진 자의 슬픔’으로 최우수상 및 연기상을 수상했다. 대구예술대와 경북예고, 울산예고 등에서 출강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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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안무 안경아 ⓒ이재봉

 

그 달달한 유혹과 쌉쌀한 뒤끝의 양면성
소문(안무 안경아 / 출연 안수진 임예란 안경아 최하늘)

 
소문,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떠도는 소식이다. 솔깃한 얘깃거리라면 귀가 바쁘게 열리고 입이 덩달아 춤춘다. 하여 동서양 막론하고 소문과 얽힌 속담이 변치 않고 전해온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익히 알려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이 있다. 첫 번째는 떠들썩해 큰 기대를 걸었지만 들여다보면 실속이 없거나 실제와 많이 다른 경우다. 두 번째는 참과 거짓 상관없이 빠르게 번져나간다는 뜻이다. 비슷한 내용은 서양에도 있다. ‘Bad news travels fast(나쁜 소식은 빨리 퍼진다)’, ‘A rumor goes in one ear and out many mouths(소문은 한 귀로 들어와서 많은 입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내용이야 어찌 됐든 남의 말을 듣고 뱉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문은 그야말로 달달한 유혹이다. 깨춤 출 만큼. 반면 그로 인해 상처를 입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문 때문에 폭력이 오가고 심지어 죽음에 이른다면 과연 달다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아주 쓰디쓴 독약보다 더 지독한 맛이 될지도 모른다.    


소문을 주제로 안무에 나선 안경아도 거기에 주목한 것 같다. “소문은 떠돌아다니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세상에 떠돌며 들리는 소문. 그 달콤함이 내 몸도 달다고 느낄까?”라고 반문한다. 설사 가벼운 소문이라도 가슴 저변에 찝찝함과 씁쓸함을 안고 있기 마련이어서 그저 고운 시선이 될 수 없다는 데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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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 안무 안경아 ⓒ이재봉


그 마음을 안고 작품을 본다. 붉은 보랏빛 조명이 켜진다. 잡음 닮음 음악과 함께 검은 옷에 붉은 갈색천으로 눈을 가린 무용수가 안내자 없이 홀로 등장한다. 무대 중앙에 선 그는 오른팔을 들고 손가락을 낙지다리처럼 쉬지 않고 구불거린다. 팔근육도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손가락 기세사 등등하다. 한동안 멈추지 않는다. 그러자 왼손이 오른손을 부여잡는다. 제어하려하지만 도무지 듣질 않는다. 매달려봐도 동작은 계속된다. 손과 손의 싸움은 한참 이어진다. 이제 말리던 왼손도 한통속이 된다. 끝내 양손이 짝짝꿍이 되어 가슴 앞으로 반원을 만들며 가동범위를 점점 크게 넓힌다. 그려지는 곡선 모양새가 품에 숨긴 에너지를 점점 확장시키는 꼴이다. 마치 소문을 퍼뜨리는 것처럼. 오른손은 소문의 진원지이고 말리던 왼손은 벌써 앞잡이가 되어 백리고, 천리고 안내하려는 기세다. 호흡이 참 잘 맞다. 


현악이 박동감 있게 흐르고 흰셔츠에 짧은 검은색 반바지 차림의 무용수 3명이 큰 동작으로 합류한다. 리듬 강도가 세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3명의 발레리나는 눈을 가린 무용수를 가운데 놓고 춤을 춘다. 무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거칠게 다룬 소문은 금세 발레리나들의 공간을 벗어나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의 말이 되어 밖으로 날아간다. 
현대발레를 통해 본 소문. 진의를 떠나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아! 말 조심해야지, 특히 남의 말을. 


눈을 가리고 등장한 것에 대해 안경아는 “소문은 눈보다 입으로 표현된다. 나가고 싶어 참지 못하는 말을 좀 더 강조하고 싶어서 구상한 것이다.”고 말했다.   


안무를 맡은 안경아는 부산대학교 무용과를 나왔다. Badycodesystem 자격증을 취득하여 발레홀릭 지도자과정 교육을 맡고 있다. 바가노바 지도자과정 1-5과정을 마쳤으며 스위스 루드라발레학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연수도 끝냈다. 꾸드레브발레 강사, 대구발레시어터 단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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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비 / 안무 김나영 ⓒ이재봉


자유 널 위해서라면 결코 연약하지 않아!
푸른 나비(안무 김나영 / 출연 이유선 김나영 신수민 황지은)

 

앞의 두 작품이 현대발레라면 이 작품은 동시대의 창작이지만 마치 고전발레를 보는 듯하다. 모습에서부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이다. 가슴에 화려한 꽃들이 수 놓인 청색 상의에 녹색 레이스가 하늘거리는 발레복, 거기에 토슈즈까지 신었다. 동작들도 교본에서 본 듯 클래식하다.


아름다운 턴은 기본이고 뛰면서 다리를 모으는 아쌍블레, 한쪽 다리를 드는 아티튀드, 만세 상태에서 다리를 들며 우아한 곡선을 뽐내는 아라베스크, 발끝을 꼿꼿하게 세워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부레 등 고급진 자세들이 짧은 시간 안에 빼곡하다. 


아직 조명이 비추지 않는 깜깜한 무대. 박진감 넘치게 웅장한 모차르트 콘체르토 20번이 공간을 채운다. 잠시 후 중앙에 동그랗게 든 빛과 함께 푸른 나비를 연상케 하는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가 날갯짓하며 들어온다. 자태가 우아하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좌우, 위아래를 곱게 잇는다. 그 뒤로 세 명의 발레리나가 차례로 나타난다. 미리 무대에 오른 무용수가 춤을 멈추고 앉아 새롭게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의 독무를 경외로이 바라본다. 장면은 반복된다. 마지막 무용수가 등장할 때까지 둘이 앉고, 셋이 앉으며 예를 다한다. 


인원은 적지만 군무가 시작된다. 쌍을 지어 바닥에서, 허공에서 날개가 된 팔을 휘젓기도 하고 넷이 하나가 되어 원을 만들었다가 동시에 뒤돌아 곱게 뛰며 폴짝 튀어 오른다. 움직일 때마다 발은 붓이 된다. 연하고 부드럽다. 긁어서 올라갈 때는 발레 특유의 멋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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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비 / 안무 김나영 ⓒ이재봉


발레리나들은 자유를 찾아 한껏 도약한다. 물 위를 가녀린 발로 톡톡 튀기며 하늘로 솟구치는 푸른 나비와 같이 분위기가 밝다. 경쾌하다. 주제가 주는 힘, 바로 자유다. 


“길을 걷다가 나비를 마주칠 때면 잠시 머물러 아름다운 날갯짓을 바라본다. 마치 변화와 희망을 속삭이듯, 닿을 듯 말 듯 자유를 찾아 아름답게 움직인다. 연약하지만 아름답게 날갯짓하는 강한 나비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김나영의 안무 의도를 보면 더욱 확연하다. 자유의 갈망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놀라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비에 블루(Blue)를 앞세운 것처럼. 


파랑은 지성, 평화, 관조를 나타낸다. 하늘과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 무한한 존재, 그리하여 깊고도 넓은 공(空)이다. 자유는 스스로 비어있지 않으면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데. 오늘 만난 푸른 나비의 나풀대는 날갯짓이 자신을 텅 비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느껴지는 것, 오오! 이 때문일까.  


무용을 전공한 김나영은 계명대학교, 동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제25회 대구신인무용콩쿠르 전체 대상, 제2회 대구경북발레협회 신인무용가상, 제37회 KBS부산무용콩쿠르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명대학교 무용전공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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