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 올댓스테이지
2023년 6월 3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이재봉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서른다섯 번째 2020예술극장.
퍼팩토리소극장 무대에서 대구문화창작소가 기획하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2017년에 시작, 젊은 창작자를 위해 수시로 여는 마당이다.
주로 60분 내외의 개인공연, 발표회를 기획하며, 10~15분 정도의 여러 작품을 한 무대에 선보이기도 한다.
누가 내머리에 약 탔어? / 안무 박영현, 오하솜
두 안무자가 대뜸 묻는다, 누가 약을 탔냐고. 무슨 약을?
검은 무대, 조명을 받은 초록빛 풀더미가 무대 중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산들산들 바람이 분다. 조심스레 살피다 아무도 없는 마당에 나와 춤을 춘다. 주마등인 양 파노라마인 양 시간을 오간다.
풀더미는 두 사람을 키운 숲이자 집이다. 현실의 공간이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간이다. 풀더미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기억이 얽히고, 풀리고, 서로 내치고, 엉겨붙기를 반복한다. 로봇처럼 하늘을 날고, 총싸움, 숨바꼭질, 고무줄뛰기를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일반적인 유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에게 특별해지는 기억이다.
제목의 ‘약’은 풀더미ㆍ숲ㆍ집과 대비되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외부의 영향력이다. 좋은 약도 있고, 나쁜 약도 있다. 현재에 더해짐으로써, 미래를 개선하는 역할을 할 수도, 더 나쁘게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약’은 지난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사실은 변할 수 없지만, 머릿속의 기억은 수정ㆍ첨삭ㆍ가공될 수 있다.
‘약’으로 인한 변화로 두 안무자가 특별히 기뻐하거나 상심하는 모습은 아니다. 그냥 그러하다는 것을 덤덤하게 들려준다. 희로애락이 있었겠지만, 마음을 써서 마음을 비운 듯하다. ‘약’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변화에도 바람에 실리는 향기처럼 몸을 맡긴다. 정성을 기울인 연습 덕분이다.
전체를 두 장으로 나눈 작품에서 1장(11분)은 유년의 기억을 좇던 중에 컷아웃으로, 2장(10분)은 후면광을 이용한 실루엣을 보여주며 페이드아웃(fade-out)으로 마무리한 조명에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과거의 기억을 끊고 돌아온 현재, 그리고 미래에 돌아볼 현재의 모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의상이 똑같은 듯하면서도 살짝 다르다.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친구라는 ‘약’을 소개하고 싶다. 물론 ‘좋은 약’이다. 숲이나 집에서 벗어났을 때 혼자가 아닌 둘이라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에게 위로가 될 것이니까.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이 20분 동안 무대 위에서 계속 보여준 모습처럼!
두 무용수(박영현, 오하솜)의 표정과 섬세한 몸짓이 좋다. 말을 사용하지 않는 무용에서 표정이라는 훌륭한 무기를 간과하는 또래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겠다. 피어오르는 새싹, 움트는 희망 등을 표현한 손가락의 다양한 짓도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