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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춤과 무대예술로 승화된 인생 절반의 추억 ‘ROMANCE’ 노진환댄스프로젝트

 

노진환댄스프로젝트 ‘ROMANCE’
2022년 12월 21일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노진환댄스프로젝트의 '로망스(ROMANCE)'가 지난 12월 21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1999년 창단 이래,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눈먼 사람들의 여행', '모던타임즈' 등 많은 창작활동을 이어 온 프로젝트는, 그동안 가공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춤으로 사람들과 공감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번 작품 'ROMANCE'는 2022년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동시대무용선정작품으로, '로망스'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여러 가지 모습, 기억들을 다양한 예술형식을 가미한 극무용 형태로 풀어낸다. 크리스마스를 품은 겨울밤에 즈음하여, 저마다의 가슴 속에 묻어 둔 사랑추억의 편린들을 살포시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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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댄스프로젝트 '로망스' 안무 노진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쓸쓸한 가로등이 비추는 어두운 골목길에 느린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간간이 들리는 꾸밈음은 누군가의 추억을 담은 듯 아련하다. 중절모를 쓰고 검은 우산을 쓴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 이르러 한참을 서성이다가 추억에 잠긴다. 

 

무대 전면(全面)에 베일이 드리우고, 드넓은 바다에서 밀려드는 잔잔한 물결 스크린이 펼쳐진다. 그 위에서 젊은 남자무용수가 춤을 춘다. 그의 춤은 설렘과 열정, 방황으로 점철된 청춘의 몸짓을 마음껏 그려 보인다. 출렁이는 물결과 어우러진 첼로의 중후한 선율은, 젊은 시절에의 춤을 아련하게 연출해 내, 보는 이의 기억 저편까지도 들추어낼 심산이다.

 

청춘의 시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했던 기억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갈 것이다. 그 사랑이 지금 어떤 형태로 남았건 간에,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슴 뜨거울 수 있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내 속에서 느꼈던 에너지에 대한 잔상으로 다시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느끼게 될 터. 작품의 에필로그는 무대를 가득 채운 시청각적 장치 위로 회상의 춤을 오버랩 시켜, 관객 내면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공감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킨다.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네 개의 장(Scene)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장은 '매혹적인 사랑', '잔혹한 사랑', '심연의 사랑', '눈물의 정원-이별과 죽음'을 소주제로 하여, 오늘날의 연애, 로맨스에 대한 다양한 심상을 연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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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댄스프로젝트 '로망스' 안무 노진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첫 장이 열리자, 이글거리는 네 개의 막이 무대의 천장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고, 그 사이로 네 쌍의 남녀 무용수가 커플 각자의 로맨스를 펼친다. 남녀가 밀당을 하는 모습, 아름답게 한 쌍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 때로는 상대를 두고 방황하는 모습, 싸우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혼자서는 불안정한 남녀의 로맨스가 짧은 상황극처럼 한눈에 쏙쏙 들어온다.


하늘에 수놓인 놀이공원의 관람차가 백스크린에 그려지고, 그 앞에서 배회하는 젊은 여자의 작은 손짓에도 의미를 두고 동요하는 다섯 남자의 연기는 상당히 코믹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닿을 듯 닿지 않는 남녀의 소심한 연정이, 잔상효과와 함께 백스크린에 투영되는 장면은, 꿈인 듯 회상인 듯 상당히 인상적인 필름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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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댄스프로젝트 '로망스' 안무 노진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그러나 우리들의 로맨스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한껏 매혹적인 플라멩코 춤으로 이성을 유혹해놓고는, 다가오면 밀어내고 피하면서 상대의 애간장만 녹인다.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구속을 포장하고, 불일치를 확인하면서도 서로의 끈을 놓지 못하는 로맨스도 있다. 온통 붉은 조명 아래 뜨겁게 이글거리던 남녀의 어긋난 사랑은, 차갑게 푸른 빛으로 전환되면서 과거의 미련함을 마음껏 한탄한다.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는지. 


이제는 늙은 남자와, 과거를 후회하는 여자와, 그 둘의 열정적인 한 때가 막을 사이에 두고 한 무대에서 펼쳐진다. 한편에서는 젊은 연인의 격정의 정사신이 펼쳐지고, 그 주변에서는 심연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남녀 각자의 몸부림이 연기(smoke)의 춤과 함께 작품의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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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댄스프로젝트 '로망스' 안무 노진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목발이라는 소재로 남녀지간 장애물을 표현한 것도 읽기가 쉽다. 한 개의 목발에 몸을 겨우 지탱한 남자를 여자는 살포시 보듬어 안는 듯하다가도 매몰차게 밀어 넘어뜨리고,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 그들 사이의 애증과 갈등은, 연극적인 사실감과 춤에 스민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 춤추는 재연극처럼 펼쳐진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위해, 노란 우산들이 음악에 맞춰 추는 군무는 노래 없는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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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환댄스프로젝트 '로망스' 안무 노진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노진환댄스프로젝트의 '로망스(ROMANCE)'. 단순히 춤이 보여주는 로맨스라기보다, 스토리텔링이 깃든 스펙터클한 무대공연예술을 경험한 기분이다. 작품 속 영화적 장치, 연극 뮤지컬적 요소, 화려한 무대장치와 음악의 기술적 융합은, 그들의 춤을 쉽게 보여주면서 춤이 가진 찰나의 심상을 극적으로 각인시켜낸다. 발레컬이라는 장르처럼 새로운 춤의 장르가, 아니 예술의 장르가 열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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