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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진=무록

춤으로 명상을 보다, 정진우무용단의 뉴모던피플
질주하는 감정은 지혜를 안내하는 손님

 

제33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정진우무용단의 New Modern People'

2022년 12월 19일 / 퍼팩토리소극장

 

- 글 : 김리윤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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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ms.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952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 기쁨, 절망, 슬픔 /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 그 모두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라 /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 그렇다고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 그들은 어떤 새로운 경험을 주기 위해 /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 모든 손님은 저 멀리서 보낸 / 안내자들이니까

 

아랍이 낳은 천재적인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여인숙’을 명상이 담긴 춤으로 목격했다. 지난 12월 19일 오후 7시 30분 대구문화창작소 퍼팩토리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제33회 퍼펙토리2030예술극장 – 정진우무용단의 뉴모던피플(New Modern People)’이 보여줬다. 

 

사는 동안 내내 끝없이 휘둘리는, 휘둘리게 하는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그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그려냈다. 그것이 내면 어디에서 오는지, 깊은 곳에 똬리 튼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은 물론 연계된 타인과 또 다른 타인의 모습을 진정 알지 못하면 존중이 허울이고 사치임을 시사했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21세기의 파도 위에 서서 주어진 과제를 안고 사는 신인류의 내적 갈등을 알아차리고, 머물러 지켜보면서 거기에서 곰삭은 삶의 지혜를 찾는 과정을 풀어냈다. 심리적인 고통과 복잡함을 명상적인 접근으로 덜어내는 인간의 현주소를 경험케 했다.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어렵사리 준비한 공연을 보다 많은 사람이 장기적으로 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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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 안무 조동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힘들 땐 표류하며 바라봐도 좋겠지
‘질주’ 안무 조동혁

 

캄캄한 무대 위로 작은 조명이 잇따라 켜진다. 매캐한 냄새를 앞세우며 안개가 좌우에서 점진적으로 깔린다. 잠재된 불안이 슬며시 올라올 즈음 무용수들이 하얀 옷을 입고 등장한다. 한 손은 펴고 한 손은 주먹을 쥔 채 엎드려 앉은 등 위로 라이트가 비추어진다. 무의식을 깨우듯 음악이 잘게 쪼개져 흐르는 가운데 주먹 쥔 팔이 아주 부드럽고 느리게 앞뒤로 움직인다. 상체를 들어 뒤로 한껏 젖히고 앞으로 다시 엎드린 다음 기어 다니는 행위가 이어진다. 곧추앉아 목을 돌려 뒤로 보는 동작이 반복되고 일자로 엎드려 팔과 다리를 붙인 상태에서 바닥을 기고 통째 좌우로 들었다 놓는다. 

 

예고된 격한 감정의 분출에 맞춰 동작은 점점 다양해지고 커진다. 다섯 무용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 앞에서 한 명의 무용수가 역동적으로 춤을 춘다. 깊숙이 포박된 감정이 부풀려져 공처럼 순식간에 튀어 올라 질주하는 모습이다. 아무리 이성으로 무장해도 양이 차면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진동과 정지를 되풀이하는 동작으로 대신한다. 

 

한국어에서 쓰이는 감정 단어는 400여 개다. 문제는 부정적인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72%나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 삶이 그만큼 힘겹게 돌아간다는 것일 게다. 

 

안무에 나선 조동혁은 ‘내면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배이며, 특정 감정이 강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그 감정을 표류하게 된다’고 했다. 강한 감정이 무엇이든 소모적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거부하지 않고 오롯이 느끼고 바라보면서 정처 없이 흘러가 보는 것, 괜찮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손님처럼 떠나게 되고 고요해질 테니까.

 

감정은 말로도 잘 표현되지 않는 어려운 부분이다. 이를 몸으로 나타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현지, 김동우, 오미나, 김민서, 윤가빈, 조동혁 등 2030 예술가들은 해냈다. 특정 감정을 꿋꿋하고 능란하게 다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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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가는 길' 안무 백선화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내 속에서 진정 솟아나는 걸 찾아야 해
‘나에게로 가는 길’ 안무 백선화

 

검은색 바지와 갈색 상의를 입은 무용수가 네발로 기어 나온다. 발로 손을 밟고 밟힌 손을 강하게 빼내며 어렵게 걸음을 디디면서 전진한다. 양손을 공중에서 잡고 잡힌 손은 마치 다른 사람의 손에서 빠져나오려는 양 힘껏 떨쳐낸다. 잡고 잡히고, 떨치고 떨쳐내지는 움직임은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하는 혼돈의 연속을 깨뜨리겠다는 의지로 전해진다. 

 

종소리와 더불어 동작이 전환된다. 다리를 교차하고 둥근 원을 그리다 바닥을 휘저으며 몸부림치는 무용수. 나다움을 찾겠다는 간절함인지 턱을 몇 번이고 치켜세운다. 열망과 달리 진도는 원활하지 않다. 마음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치는 연속이다. 하여 멈추지 않는다. 번득이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직면해야 할 나를, 소중한 자아를 찾겠다는 심사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내가, 내가 되어 살지 못하는 분열의 욕계에 있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내 몸속에 내가 쪼그라들어 스스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형국에 놓이기 일쑤다. 종내에는 잘 알아야 할 자신을 가장 잘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형편에 따르느라 때때로, 아니면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살아서 본래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도 없지 않다. 

 

온전한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무용수의 노력은 가상하다. 몸을 마구 뒤틀며 무대를 아프게 누빈다. 다음, 기필코 진단하려는 듯 조명 아래 처연하게 선다. 그림자가 드리운다. 위치와 밝기에 따라 길이와 농도가 달라진다. 길고 짧은가 하면 희미하거나 선명하다. 돌아보지 않아 그림자를 파악할 재간은 없다. 답답하여 손바닥으로 온몸을 비빈다. 이때 북소리가 고정된 속도로 둥둥 울린다. 무용수의 손은 질문의 발아래 다시 놓인다. 벗어나려 안달하지만 해답의 끈을 잡기 위해 애쓴다.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내가 나의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에게로 가는 길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백선화는 ‘난 진정,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을 안무로 빚었다. 내면 깊숙이 잠겨버린 진정한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질문이다. 참으로 다가갈 심장을 깨우면 어디에도 없던 내가 어디에도 있음을, 무엇도 아닌 내가 무엇도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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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 침묵' 안무 남희경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내면의 자신과 담대하게 이야기하라
‘더 깊은 곳, 침묵’ 안무 남희경

 

두 무용수가 나란히 사선으로 앉아 쌍둥이처럼 움직인다. 팔과 다리를 똑같이 펴고 접는가 하면 머리를 감싸고 풀면서 침묵이라는 대화의 시동을 건다. 연달아 왼손등으로 이마를 눌러 무심히 머리를 젖힌다. 가벼운 힘에도 몸이 뒤로 사뿐히 넘어지고 반동의 힘은 오뚝이처럼 일어나 앉게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그것도 지루하고 공허한 반복을 얘기하는 듯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서리치던 그들은 내면과 외면, 나와 상대로 분리되는 모양으로 바뀐다. 한 명은 아래에 웅크리고 다른 한 명은 그 위에 포개어 온몸을 활과 같이 길게 뻗는다. 새로운 발견을 향해 날고 싶은 욕망이다. 실현이 쉽진 않다. 이를 알기에 서로에게서 떨어져 각각 웅크리고 펴면서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튼다. 뒹굴기도 하고 사지를 꼬기도 한다. 또한 상대의 입을 틀어막고, 목을 팔로 홀친다. 마침내 손을 잡아채면서 소음 가득한 삶이 괴로워 견디기 어렵다고 항변한다. 

 

중반에 이르러 배경 음악이 사라진다. 숨이 멎는 느낌이다. 공간은 무용수들의 호흡으로 헐떡인다. 점차 안정되며 시야는 고요로 물든다. 그리고 침묵. 내면과 만날 대화의 창이 열린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소리를 기꺼이 듣고 살피며 자성을 토대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바닥을 치는 동시에 침묵이 깨진다. 경고음과 타악이 섞인 거칠고 빠른 선율이 무대 전반에 꽂힌다. 둘은 반 만세 자세로 서서 서로를 응시한다.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부둥켜안는다. 얼굴을 감싸고 전율하면서도 이면은 단단해 보인다. 현대사회에 난무하는 죽은 소리에 내몰려도 침묵의 전기를 서로에게 흘려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춤을 짓고 구성한 남희경은 소음을 인지하고 침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내면의 자신과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되돌아보기를 조언한다. 삶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소음을 해독할 깊은 침묵으로 자신과 담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이번 공연에서 몸짓의 합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 퍼부은 최효빈, 남희경 청년 예술가의 지루하고 힘든 노력이 감지됐다. 같은 표현은 같이 채우고 다른 표현은 홀로 메우면서 조화를 이루기까지 보낸 숱한 시간들이 유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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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ing abuse episode' 안무 박수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몸으로 외친 사랑 아닌 사랑
‘dating abuse episode’ 안무 박수열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만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서로에게 적정한 관계의 거리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물리적 정신적 강제력이 불법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다름없는 친밀한 파트너에 대한 폭력은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 

 

안무를 맡은 박수열은 이 같은 심각한 재료를 몸의 언어로 조명한다. 의도를 가지고 움직임을 만들며 결과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이 행해지는 지금 이 순간 무용수의 자의적 의지로 일어나는 즉흥적 반응의 움직임을 과정의 중심에 둔다. 

 

분명 존재하지만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비언어적인 영역을 몸의 반응과 형태에 따라 ‘몸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그것의 표출을 돕는 것, 더 나아가 그러한 표출을 도구 삼아 비언어적인 표현의 구체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지향한다.

 

재료가 남다른 만큼 공연은 무겁고 어둡다. 충격적인 가운데 신랄함이 있다. 움직임은 격렬하지만 대단히 느린 슬로우모션으로 전개된다. 요소요소에 멈춤을 끼워 넣어 춤선이 더욱 강렬하다. 

 

여자는 바닥에 누운 남자의 배 위에 등지고 걸터앉아 폭력에 맞선다. 거기에 가만히 있을 남자가 아니다. 여자를 완강하게 끌어당겨 폭력의 서사로 들게 한다. 남자의 몸에 감긴 여자는 빠져나오려 버둥거린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빈틈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공중에서 헛발길질만 할 뿐 결코 헤어나질 못한다. 환장할 몸부림으로 남자의 품에서 겨우 풀려난 여자는 사지가 굴절되어 흐느적거린다. 남자는 놓친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좀비의 기이한 몸짓으로 엎드린 채 여자를 쫓는다.

 

여자는 남자의 집요함에 또 걸려든다. 가혹한 굴레를 다시 뒤집어쓴 여자는 포효하며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폭력은 사랑이 아님을 성토하는 피맺힌 대항에도 역부족이다. 남자의 거친 행동은 배가 된다. 제 다리를 제가 펴지도 못할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여자는 급기야 제 손목을 물어뜯고 바닥을 치며 절규한다. 사람답게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을 자해하며 비관한다. 

 

엎치락뒤치락하며 폭력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남녀는 애초에 그들이 떠올렸던 사랑과 한없이 멀어진다. 상처투성이를 넘어 죽음으로 치닫는 관계의 끝을 보여준다. 무용수의 얼굴이 슬픔으로 얼룩지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대미는 여자가 남자를 깔고 앉아 거친 숨을 쉬는 장면으로 돌아간다. 풀이는 관객의 몫이다. 

 

조동혁, 이현지 예술가가 보인 몸의 언어는 연극적인 색채를 담아 현실감 있게 다뤄졌다. 분명 쓰라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무대였지만 연마된 신체가 엮어낸 테크닉은 놀라웠다. 접근이 지극히 타당하여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데이트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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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및 관계자 단체사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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