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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로다, 멋이로다, 춤이로다, 2022 '대구 전통춤의 밤'

 

2022 대구 전통춤의 밤 '흥, 멋에 스미다'

2022년 12월 3일 /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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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ms.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587

 

 

2022 '대구 전통춤의 밤'이 지난 12월 3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에서 개최되었다. '흥, 멋에 스미다'라는 주제로, (사)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가 주최한 이번 무대는, 우리 전통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경북 출신의, 혹은 대구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중견 무용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동시대 전통춤의 결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팬데믹의 시대를 지나고,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찬 새해를 앞두고 있을 2022년의 말미에, 우리의 춤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하면서 전통과 춤의 가치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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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희 '한영숙-이애주류 승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승무 한영숙-이애주류 / 주연희

 

승무 하면 떠오르는 싯구가 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새하얀 비단 고깔을 쓴 무희의 모습을 나비에 비유한 절묘한 아름다움, 조지훈 시인의 '승무' 첫 구절이다.

 

싯구에서 풍겨나는 예술적 심상에 어우러지도록, 흰 한삼 아래 합장을 한 손이 하늘을 향하며, 승복 차림의 무용수가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절드림으로 춤이 시작된다. 하늘에 제의를 지내고, 수렵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인류가 살아온 삶의 행태가 그대로 녹아난 몸짓이 집대성 되었다고 전해지는 춤 승무. 

 

그래서일까, 광활한 우주 가운데 그저 한 종(種)의 생명체에 불과한 인간의 겸손함이 시종일관 수그러진 상체에서 다소곳이 전해진다. 그러나 고깔 아래 드리운 주연희의 표정없는 단호함에는 생명의 숭고함과, 타협없는 예술의 존엄함을 읽을 수 있다. 욕심을 머금은 양 손은 한삼 아래 조심히 감추어지고, 청색 치마에서 이글거리는 삶에의 열정은 하얀 장삼에 덮히어 이따금씩만 그 야무진 매무새를 드러낸다. 

 

키보다 긴 한삼의 펄럭임은 곧장 팔에 몸에 칭칭 감길 것만 같지만, 휘휘 돌리고 둘둘 말아 다시금 흩뿌려진다. 앉을 듯 일어서며 터는듯 휘젓는듯, 무심코 휘두르는 팔사위에서 그려지는 한삼의 태극선, 그 안에 깃든 우리 민족의 얼과 염원이 하늘을 그리고도 남아 땅을 보듬으며, 대지에서 기초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 모습을 시인은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라고 표현했음을 기억한다. 

 

법고과장에서는 북을 종이 삼아 북과 북채를 그려내는 듯한 소리가 상당히 회화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반주가 빨라지고 고수의 추임새가 마구 쏟아진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시름까지도 떨쳐버릴 듯이 격정으로 법고를 두드리는 춤사위.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했던 구절은 바로 이 당악과장을 노래한 것이리라. 속세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떨쳐버리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 둥둥 탁탁 북소리와 함께 비워내고 털어내던 몸짓은, 다시금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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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민 '박제홍제-최희선류 달구벌입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달구벌입춤 박지홍제-최희선류 / 이준민

 

구슬픈 듯 멋드러진 태평소 가락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가운데, 초록저고리에 한껏 부풀린 노란치마, 단정히 쪽을 진 여인이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올려잡고, 익은 자태를 뽐낸다. 딱히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지정거리고 지숫는 움직임, 절도있게 치키는 어깨에서 이어지는 손사위, 마치 만조를 기다리듯 느리게 출렁이는 팔사위에서는 예스런 미가 느껴진다. 

 

즉흥성의 기조로 춤추는 사람의 정서와 기교에 따라 다양성을 지닌다는 입춤이 옛 대구의 힘차고 흥겨운 덧배기 가락을 만나 투박한 감칠맛을 자아내는 춤. 순간적으로 맥을 놓거나, 포기한 듯 양 팔을 떨어뜨리는 동작은 이 춤에서 만나게 되는 서프라이즈 타임이다. 

 

맨손춤 후에는 민속춤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흰 수건을 꺼내 들고, 그 안에 담긴 민중의 희로애락을 풀어낸다. 수건을 허리춤에 묶고 돌아설 때에는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장단에 신명이 넘쳐난다. 발로 고갯짓으로 장단에 호흡하는 춤사위는 교태스럽지 않고 투박하면서도 개성있는 여성미를 드러낸다. 이준민을 위한 달구벌입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이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절정을 노래하듯 한바탕 신명을 풀어낸 여인의 얼굴에는 무언가 모를 한스러움이 가득하다. 이전의 수건춤에서 보여주었던 담담한 춤의 여정과는 달리, 수건을 들고 흐느끼다가 입으로 물어 올린다. 여운이 남는 이준민의 미소로 마무리된 달구벌입춤은 맨손춤, 수건춤, 소고춤에서 다시 수건춤으로 마무리 되면서, 마치 여인의 파란한 생에 감정의 여백을 흥건히 담아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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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재 '장유경류 선살풀이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선살풀이춤 장유경류 / 서상재

 

하늘로 치솟는 모양새의 긴 깃털을 꽂은 흰 모자, 흰 수건이 달린 흰 부채, 온통 흰 의상에 검은 부챗살만이 강한 대비를 이루는 차림새가 담백한 듯 강렬하다. 뒷모습을 보이며 무대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본다. 돌아서는 서상재의 얼굴에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다.

 

살풀이 장단이 차라리 흥겨울 요량으로, 부채를 앞세워 한 걸음 한 걸음 힘이 쥐어진 발디딤새는 걸걸한 멋을 자아낸다. 호흡에 강약(强弱)과 장단(長短)을 두는 춤사위와 춤 태가 참으로 시원스럽고 아름답다. 수건과 몸이 그리는 아치곡선의 조화도 멋드러진다. 끝을 치켜세우는 섬세한 발놀림은 날렵한 버선코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겹겹이 펄럭이는 길고 하얀 옷자락은 흰색이 이렇게 화려한 색상인 줄을 새삼스러이 한다. 

 

바닥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살품이춤에서는, 으어아 살을 푸는 느낌의 구음이 스며들고, 이어지는 뒷걸음질에 수건사위, 부채사위는 마치 그 모질고 독한 기운과 한바탕 씨름을 하는 모양새다. 

 

살풀이춤의 옛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한(恨)을 바라보는 시각과, 맞서는 흥취가 한결 능동적이고 자유로워 보인다. 장유경류 선살풀이춤을 보니, 후일에 돌아보는 한(恨)이란 차라리 반어적으로 승화된 흥이며 미(美)로써 이제 새로운 가지를 뻗어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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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현주 '권명화류 대구검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대구검무 권명화류 / 추현주

 

검은 전복과 전대, 화려하게 장식된 전립을 쓰고 삼색의 한삼으로 손을 감쌌다. 무대를 밝히는 것은 동과 서로 마주 선 측면의 무리가 아니라, 정면에서 고개를 드는 한 사람의 무원(舞員)이다. 이번 무대, 추현주의 대구검무는 1인무로 짜여져 군무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함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 전통춤에 매진해 온 중견 무용가의 춤을 통해, 검무의 춤사위를 정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검무의 중심이라면 응당 칼을 들고 추는 춤이겠지만, 아무런 도구도 없이 칼춤 못지않은 특색을 뿜어내는 맨손춤이 돋보였다. 무예를 연마하는 듯한 손과 팔의 사위는 참으로 호기롭고 날렵하다. 

 

측면으로 서서 몸을 숙였다 들면서 기(氣)를 실은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동작, 바닥에 놓인 검 앞에서 몸을 숙이고 팔을 뻗어 어르며 검을 쥔 듯 아닌 듯 뜸을 들이는 모양. 확실히 정면에서 보는 검무는 시야를 넓혀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겨루기의 상대가 된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서걱서걱 칼날 부딪히는 소리는 날카로운 추임새가 되고, 번득이는 칼날의 빛은 섬섬옥수에 숨겨진 고수(高手)의 무도(武道)와도 같다. 장단에 맞추어 칼을 돌리는 단련된 손목의 스냅, 그 안에 깃든 애국의 정신이 파릇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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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우 '사풍정감'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풍정감士風情感 / 백경우

 

구김살 하나 없이 매끈한 도포 위에 쑥색 쾌자를 차려 입고 갓을 쓴 선비가 그윽한 피리소리를 따라 거닌다. 정처 없는 발걸음에는 이런저런 생각꺼리들이 가득 담긴 듯하다. 외딴 곳에 양반다리를 틀더니 들고 있던 흰 부채를 종이 삼아 한 수 적는다. 

 

사풍정감(士風情感)은 제 아무리 학덕(學德)이 높은 고고한 선비라도 정에 겹고 흥에 취함을 느린 풍류로 그려낸다. 

 

점잖디 점잖은 선비가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흥이란 치렁한 도포자락이나 흠칫 걷어 보이는 것일 터이나, 동서로 뻗은 양 팔 아래로, 땅에 닿일 듯 늘어진 넓은 소맷자락과 쾌잣자락의 맵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춤선이 된다. 

 

백경우의 사풍정감은 질펀하게 한바탕 놀아보는 젊은 선비의 기운찬 풍류에, 전통의상이 그려내는 대찬 선을 한껏 부각시켜 조화로이 그려낸다. 각이 진 소맷자락 위에 맞물린 부채의 선 또한 호방하다. 발목에서 가늘게 추스린 펑퍼짐한 속바지, 하늘로 치솟는 버선코와 버선바닥의 아치선이 조심스럽게 디디는 걸음은 사뭇 유연하다. 

 

5척 남짓할 양 팔의 길이 안에서, 즉흥적으로 돋아나는 선비의 마음 속 운치가 이 밤의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펄럭인다. 도포자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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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박병천류 진도북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진도북춤 박병천류 / 김진희

 

왁자지껄한 쇠 소리가 신명을 돋우는 가운데, 어깨띠에 북을 메고 쌍북채를 든 여인이 다부진 한 몸 가득 흥을 머금고 등장한다. 옹골진 태(態)로, 긁는 듯 치는 듯 북을 두드리는 춤사위가 참으로 서늘하다. 

 

양 손에 북채를 쥐고 있는데도 섬세한 손사위가 눈에 들어온다. 농악인듯 무예인듯 넌지시 그려 보이는 팔사위도 아름답다. 풍만한 다홍치마 아래서 분주히 움직이는 발은 경쾌하지만 거볍지 않은 즉흥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이따금씩은 빠른 장단에 쉬어가는 호흡도 잊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허술한 동작이 없다. 

 

돌고, 뛰고, 뒷걸음질에, 날아갈 듯, 발장단을 맞추며 추는 김진희의 묵은 춤이 2022 '대구 전통춤의 밤'에 불꽃놀이같은 신명을 불태운다. 그이의 북장단에 객석에서 추임새가 쏟아진다. '춤 잘 춘다'는 말이 진정 어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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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권명화류 소고춤'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소고춤 권명화류 / 김용철

 

시작부터 다르다. 얼굴높이만큼 소고를 치켜 들고 들어오는 모습이 아니라, 뒤로 선 채 춤판을 연다. 장단에 맞추어 포즈를 취해 보이는 춤사위도 차라리 현대적이다.

 

오금을 숙이는 느낌이 덜하고, 손 안에서 팽그르르 회전하거나 발짓에 튕기는 소고사위도 볼 수 없었지만, 탄력이 붙은 발디딤새는 사뿐하여 허공에서 계단을 뛰어내리듯 하고, 소고와 채를 쥔 채 너울거리고 지수는 양 팔은 장단의 완급을 타며 어정거리다가도 힘차게 몰아친다.

 

한(恨)을 품은 구음을 타고 자신만의 신명으로 손상된 자아를 치유하고자 하는 소탈한 춤의 정서가 세련되었다. 장단에 반동 하듯 쭈뼛 세우는 몸, 개구지게 손으로 이마를 치고, 넓적다리를 옆으로 벌려 떨고, 희화(戲化)된 소고치배의 몸짓에 김용철표를 달았다. 몸을 회전 하면서 동시에 소고를 치고, 그렇게 크게 한 바퀴를 돌고 나서는 막걸리 한 잔을 걸쭉이 마시고 취해 쓰러진다. 한(恨)이란 놀리고 즐기는 것이라 말하는 소고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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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및 관계자 기념촬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기 쉽고 소외되기 마련인 옛것이라는 지혜. 시대를 살아가는 흥을 우리는 자꾸 남의 것에서 어렵사리 찾으려 하지만, 이따금씩이라도 연륜 무용가의 전통춤을 조우하게 되면, 내 안에서 스며나는 흥에 못 이기는 나를 보면서, 나는 역시 한국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옛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는 법. 저마다의 신명으로 한(恨)과 풍류(風流)의 결에 시대성을 더하고, 그로써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전통춤꾼들의 기지와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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