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6개국의 춤이 한 자리에, '2022 대구국제무용제' 1일차, 팔공홀
- 지역 무용이 해외와 교류하는 대구무용협회의 대표 행사로, 올해 24회
- 국가애도기간 선포로 일정 변경, 축소 개최에도 전석 매진
제24회 DIDF 대구국제무용제
2022년 11월 06일, 08일 /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비슬홀
- 글 : 서경혜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022 대구국제무용제가 지난 11월 6일과 8일, 양일에 걸쳐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사)대한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 주최로 열린 무용제는 세계 각지 무용가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지역 무용예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고자 개최되어 온 행사로, 올해 24회를 맞이했다.
금년 무용제는 "열린 마음, 열린 예술, 열린 협회, 파워풀 대구춤"이라는 기치 아래, 이스라엘,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중국, 일본 등 5개국에서 활동 중인 세계 안무가들의 작품과, 해외로 수출된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 등이 초청되어 각국의 민속적 색채가 두드러진 개성 있는 작품들이 선보였으며, 지역 무용예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Square House Creations '"My Vimana, Godspeed!"'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My Vimana, Godspeed!" / Square House Creations - 이탈리아, 이스라엘 (안무 Marco Russo Volpe, Larissa Dorella)
남녀 무용수가 제자리에서 천천히 뛰는 움직임을 보인다. 발가락은 거의 바닥에 붙인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렇게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상공을 우러러보며 뛰고, 또 앉아서도 뛴다. 울리는 종소리에 까마귀 한 마리 고즈넉이 울어 대니 마치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듯한 분위기다.
남자 무용수는 검은 바지에 상의를 탈의했고, 여자 무용수는 검은 셔츠에 짧은 쇼츠 차림으로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남녀가 하나로 겹쳐졌을 때 온전한 나신(裸身)이 되거나 상하의(上下衣) 깔맞춤이 완성되는 옷차림이 된다.
타이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상당히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이 작품 "My Vimana, Godspeed!"에서는, 전반적으로 어딘가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주류를 이룬다. 황량한 얼음산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가 연상시키는 고난을 마주하면 하늘을 우러러 간청을 한다. 무언가를 온몸으로 잡아 보려고도 하고, 하늘에서 무언가를 훔쳐오듯 따오기도 하지만, 자주 상공을 바라며 양손과 팔을 뻗어 갈구한다.
후반부, 소음이 들려오고 두 무용수는 느린 몸짓으로 어슬렁거리다 바닥에 드러눕는다. 여자는 곧장 일어서서 돌아다니지만, 남자는 겨우 몸을 일으키고 주먹으로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몸을 지탱하다 겨우 일어나 하늘을 향해 양팔을 뻗는다. 남녀가 유독 느린 움직임을 보인 이 장면은 마치 시끄럽고 복잡다단한 세상의 소리에 유린되고 유혹되는 인간들의 처절한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갖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왜 사는지를 알고, 삶의 목표성을 갖게 되는 좋은 몫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작품은 말하는 듯하다.
Good luck's dance company '대당성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대당성세 / Good luck's dance company - 중국 (안무 왕솽)
1막. 상투처럼 머리를 틀어 올리고 간소한 중국 전통의상을 하얗게 차려입은 남자 무용수가, 흰 부채를 들고 나타나 마치 무예를 즐기듯이 과감한 동작으로 춤을 춘다. 그 모습은 마치 세상사엔 관심이 없는 듯한 한량의 몸놀림 같다.
음악이 느려지자 한량은 역동적인 춤을 멈추고 바닥에 앉더니 들고 있던 부채를 새삼스러이 들여다본다. 접었다 펼쳤다 하면서 이리저리 뜯어보는 눈빛에는 무언가 허전함 허무함이 엿보인다. 그에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일까?
2막. 궁중의 무희처럼 아름다운 여섯 여인이 저마다 선녀 같은 포즈로 무대를 밝힌다. 그중 한 여인은 새하얀 얼굴과 자태가 유독 아름답고, 머리 장식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다섯이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동안 여인은 아주 천천히 제자리에서 몸을 360도 회전하며 우아한 나만(懶慢)함을 과시한다.
따뜻한 봄날의 경치를 즐기는 귀족 여인들의 유희 같은 몸짓은, 축 늘어진 소맷자락과 겹겹이 에워싼 옷자락의 과장된 출렁임에 힘입어 무대를 한껏 휘젓는다. 고풍스러운 유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는 여인의 몸짓은, 너풀거리는 의상 아래에서도 곱고 유연한 몸의 실루엣이 슬쩍 슬쩍 드러날 만큼 예술적이다.
중국 무용단의 '대당성세', 자칫 민족주의적 정치적 뉘앙스로 이해되기 쉬운 타이틀. 그러나 작품은 도가(道家) 철학자인 장자(莊子)를 춤춘 한량과, '려인행(麗人行)' 서두를 묘사한 여인들의 유춘(遊春)을 나란히 춤추어 보이면서, 세상 부귀영화의 한낱 부질없음과 만물의 본성을 져버린 과욕의 부덕함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춤으로 풍자해냈다.
춘추전국시대 철학자인 장자(莊子)는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의미한 '소요유(逍遙遊)'를 가르쳤고, 당나라 시인 두보의 작품 '려인행(麗人行)'은 당 현종이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국사를 멀리하고, 양귀비 오누이가 세도를 휘두르게 된 시국을 한탄하여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김용걸댄스씨어터 'La Stravaganza'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La Stravaganza / 김용걸댄스씨어터 - 한국 (안무 김용걸)
어두운 무대, 조명 없이 막이 오르면서 바닥에 엎드린 듯이 몸을 굽히고 있던 발레리나가 기지개를 켜듯 몸을 일으킨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백조가 긴 목을 들어 잠을 깨며 우아한 날개를 활짝 펼쳐 드는 모습처럼 고혹적인 실루엣을 연출해낸다. 조명이 밝아오자 온몸을 빨갛게 치장한 한 마리 백조처럼, 온통 붉은색의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가 비추인다.
쓸쓸함이 묻어 나는 오페라 곡조에 맞추어, 발레리나는 뒤에 있던 바르(barre)를 짚고 춤을 춘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어딘가 기이한 움직임의 연속으로 백조의 일상을 빗댄 듯한 발레리나의 춤은,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고픈 몸부림 같다. 이따금씩은 한 다리를 들어 떨기도 한다. 분주하게 허우적거리는 팔의 동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소의 성가심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것은, 그저 날개를 접고 한가로이 물 위를 떠다니는 일상에, 아무 일 없음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백조의 안절부절하는 모습 같다.
같은 모습으로 붉은색 튜튜를 입은 발레리나들이 한 명씩 등장하고, 그저 음악에 내맡긴 듯한 그녀들의 춤에는 어딘가 평온치가 않아 분주하고 성가심이 서려 있다.
비발디의 '라 스트라바간자(La Stravaganza)' 협주곡 2번이 흘러나오자 알레그로(Allegro)의 빠른 음악에 맞추어 붉은 백조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마음껏 날갯짓을 하고 찰랑찰랑 물장구도 치며 즐겁게 춤을 춘다. 비발디의 아름다운 음악 만큼이나 강렬한 열정을 입은 듯한 붉은 백조 무리의 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넷이 손을 잡고 팔을 안팎으로 교차시키며 하나의 원을 그리는 멋스러운 대형은 마치 우리 민속춤인 부채춤의 무궁화 대형을 떠올리게 한다.
2악장 라르고(Largo)가 흐르자 느린 음악에 맞추어 다시 독무가 시작된다. 양팔이 허공을 마구 휘저으며 무언가를 휘감아 잡으려는 듯한 상체의 동작, 잡을 듯이 잡히지 않는 아련함을 품고 있다.
3악장 격정의 알레그로(Allegro)가 시작되자 독무를 추던 백조는 한 발만을 바닥에 짚고 한 발을 높이 들어 올린 채로 제자리에서 천천히 90도 회전을 한다. 빠른 음악에 맞춘 군무는 때론 둘이서, 셋이서, 삼삼오오 모여 이제까지의 모든 무료함과 시름을 떨쳐버리려는 듯한 몸짓이다. 일시에 번쩍이는 무대조명은 백조들의 몸부림에 격정을 불어넣고, 음악의 기묘한 세련미를 배가시킨다.
온몸을 붉게 물들인 백조들의 일탈과도 같았던 춤은, 'La Stravaganza' 협주곡 2번의 화려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현란한 바이올린 선율을 그렇게 그려냈다.
Mizuki Taka 'Doldrums'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Doldrums / Mizuki Taka - 일본 (안무 Mizuki Taka)
머리를 단정하게 아래로 묶고 평상복 같은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가 측면으로 서있다. 제자리에서 왼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걸음을 걷는 자세를 취해본다. 그녀의 움직임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산해내는 듯이 느릿느릿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결괏값이 도출된 듯 빨리도 뛰어본다.
걸음을 위한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지금 걸어도 되는지, 움직여도 되는지가 고민스러운 듯이 사이사이에 간극이 느껴진다. 생각에 간극이 있다는 것은 즉흥성을 의미하는 것일 터, 그녀는 순간순간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면의 소용돌이를 춤추는 듯하다.
조명은 더 어두워져 어느 순간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무대 위에는 그저 한 존재와 움직임만이 느껴지고,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 같다.
그림자, 실상(實相)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허상(虛像)인 그림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은 실체로서 이 땅 위에 존재하지만, 땅 위에 그 어떠한 것도 존재를 규정할 수 없고, 땅 위에 그 어떠한 것도 존재가 소유할 수 없는 그런 허상.
어느 순간 그런 허상이 돼버리는 인간 존재의 내면은, 그녀의 움직임과 같이 끊임없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쉼 없이 나아간다. 바닥에 앉은 그녀가 비로소 정신이 든 듯이 고개를 돌려 객석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도 말이다.
신창호×KARTS 'No Comment'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No Comment / 신창호×KARTS - 한국 (안무 신창호)
허리춤 밖으로 빼어입은 셔츠 위에 재킷을 걸친 남자 무용수가 서있다. 한 손을 셔츠 안으로 넣어 가슴을 친다. 손바닥과 피부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 언뜻 느린 손뼉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 '착', '착' 소리는 심장을 싸고 있는 가슴이 내는 힘겨운 소리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곡 'Babylon'이 흐르고, 재킷을 입은 남자 무용수들이 한 명씩 바닥으로 슬라이딩하듯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가슴이 내는 소리는, 리드미컬한 타악이 가미된 음악과 결합되어 마치 심장의 박동 소리처럼 들린다. 물구나무 동작으로 무대를 가로지르고, 이따금씩 심장의 박동 소리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십여 명의 무용수들이 단체로 발을 굴리며 저마다 어지러운 몸짓으로 군무를 펼친다. 집단은 도전적인 기세로 성큼성큼 나아가기도 하고, 무대를 전복시킬 듯이 달려와 끝에서 엎어진다. 주술적인 기운으로 알리 물라(Ali Mullah)를 계속해서 외치는 음악에서는 무언가를 갈구한다. 양손으로 리드미컬하게 가슴을 치며 허공으로 팔을 뻗는다.
타이틀에서 '노 코멘트(No Comment)'라고는 했지만, 음악으로 왕국을 건설해내는 브레고비치의 작품 중에서도 'Babylon'으로 무대를 엶으로써, 작품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바빌론, 무려 1500년간 세계 최대 도시로 번영했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도시.
60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12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인체의 혈관에 피를 순환시킨다는 심장의 박동은, 유구한 역사의 바빌론 흥망성쇠가 상기시키는 역동성과 오버랩되면서, 수천 년의 시대를 이끌어 왔고, 21세기를 이어가고 있는 인간들의 아우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재킷을 벗어던지고 저마다 색색의 셔츠를 입은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추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세상을 요동시키는 심장의 박동처럼 무용수들의 한결같은 움직임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급기야 객석을 점령하고 관객들의 심장까지도 요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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